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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Aug 17. 2022

지렁이

아침부터 땡볕이 내리쬐는 7월 초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초심자의 의욕이 샘솟았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고 그늘이 많아 애용하는 길이다. 길에 제법 큰 지렁이가 꿈틀거려 놀래 켰다. 며칠 전 비가 와서인지 제법 많다. 찬찬히 바닥을 보니, 살아 있는 것보다 아직 연어 속살 같은 색을 간직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징그러워서 팔에 솜털이 일어섰다. 개미, 파리도 많이 꼬였다. 차마 밟을 수가 없어 겅중겅중 피해 발을 디뎠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피하자니 귀찮고 밟자니 찜찜했다. 다른 길은 그늘이 없어 너무 뜨겁고 신호가 잦아 운동에도 지장을 줄 터였다. 다른 길 찾기를 포기하고 며칠을 그렇게 조심조심 징검다리 건너듯 땅만 보고 다녔다. ‘여긴 청소하시는 분이 안 계시나?’ 불평이 나왔다. 날마다 지렁이 사체를 보는 건 고역이었다. 왠지 썩은 내가 뜨거운 공기 중에도 배인 것 같다.    

 

테마공원에는 한국정원이 조성되어있다. 은은한 연보랏빛 꽃을 머금은 작은 키의 풀들이 정겹다. 야트막한 정자와  다듬지 않은 소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인 사이로 분홍 무궁화꽃이 만발하고 소박한 풀들이 무성하여 고즈넉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라 지날 때마다 힐링이 된다. 인공적으로 위로 내뿜어내는 서양의 분수와 대비되어 자연의 순리대로 아래로 떨어지는 한국정원의 상징인 폭포도 있다. 작동이 멈춘 날 보고서야 인공폭포인 줄을 알았다. 그 밑에 작은 연못이 있었나 보다. 한국정원을 끼고 왼쪽으로 난 작은 등산로에 오리 세 마리가 있었다. 소풍 나온 오리가족 같았다. 진귀한 광경이기도 하고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다. 시선을 따라가니, 오리들이 마실 나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기오리들이 먼저 입에 지렁이 하나씩을 물자 곧이어 엄마 오리도 통통한 지렁이를 채서 물고 유유히 연못으로 줄지어 돌아갔다.     


 ‘지렁이를 치우지 않고 둔 이유가 저거였구나.’

오리뿐이 아니었다. 개미, 파리들이 모여 있는 곳엔 어김없이 지렁이가 있었다. 지렁이는 몸을 내주고 벌레들은 그 몸을 먹은 만큼 삶을 연장하다 흙으로 돌아가고, 나무는 비옥한 흙을 먹고 점점 더 무성해졌다. 그렇게 생명이 순환되고 있었다. 1주일쯤 후였다. 그 많던 지렁이들이 다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이무기같이 두껍고 길었던 위용은 간데없고, 종이처럼 얇아져선 에스(S) 자 모양이 되었다. 나는 왠지 미안하면서도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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