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이유 없이 생기지 않는다. 계속 쌓이다가 한 순간에 봇물이 터져 확 쏟아지는 것처럼, 어느 순간 문제들이 한꺼번에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땐 당황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짐짓 차분해지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노래를 듣기도 한다.
삶의 본질은 고통일진대, 너무 편하게 살았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내내 불편했다. 마주하기 싫어 잠깐 눈 감았더니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귀찮다는 핑계로 짜고 달고 맵고 기름진 일품요리나 인스턴트 간편식만 해줬다. 빈속에 진한 커피를 때려 붓고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배달음식을 시켰다. 온갖 스트레스를 오직 과식으로 해소하는 습관은 당연스럽게 병으로 돌아왔다. 아픈 건 남편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속 쓰림과 소화불량, 두통에 불면증, 치통, 알레르기, 10년 전 앓던 허리디스크까지 도졌다.
집안일을 너무 대충 했다. 둘러보니 먼지투성이 거실에 시든 화분, 얼룩진 싱크대, 실밥이 뜯어지고 갈라진 소파, 정신없는 냉장고가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제야.
이곳에 삶과 죽음이 있음을 몰랐다. 생활에 온 정성을 다할 때가 온 것 같다. 콩나물 대가리를 따서 무치고 쌀을 씻어 쌀뜨물로 된장찌개를 안치고 계란을 예쁘게 마는 것. 이불을 탁탁 털어 햇볕에 말리고 저 뒤에 베란다부터 테이블 위 잡동사니를 치운 후 TV 선반 먼지까지 쓸고 닦는 것. 아침이면 이불을 정리하고 스트레칭 후 아침운동을 하는 것. 그렇게 공을 들여야겠다. 티가 나지 않는다고 두었다가는 큰 탈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