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by 바다숲

미음에서 죽으로 넘어가자마자 남편은 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장유착이 의심되어 다시 물 한 모금 못 마시는 금식으로 되돌아갔고, 기도에 관을 삽입해서 유독가스를 밤새 빼냈다. 삽입된 관이 목을 찌르니 잠을 잘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하필 그 시각, 피자를 시켜 먹고 있었다. 요 며칠 마음을 너무 놓았나 보다. 내 정성이 부족해서 남편이 더 아픈 것도 같았다.

'니가 지금 피자나 먹고 있을 때야? 아직 조직 검사 결과도 안 나왔잖아. 이 한심아. '

남은 피자를 그대로 싸서 다 갖다 버리고 불안과 걱정, 후회와 자책이 엉켜 긴 밤 내내 뒤척였다.


굉장히 작고 무능한, 어쩐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버린 것 같다. 남편이 없는 동안, 시계가 거꾸로 돌아갔다.




좀 괜찮다가 다시 아프다는 연락을 받으면 또 어쩔 줄 모르고 머리가 하얘진다. 언제까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일단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와 소각용 봉투 각 2장씩을 구입했다. 캐 묵은 이불, 옷가지, 책, 신발 등 안 쓰는 모든 것들을 버렸다.

엄마는 남편을 처음 본 날, '얘는 청소 머리가 아예 없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집이 돼지우리 저리 가라 하게 더럽다. 정말 괜찮냐.'라고 물으셨다. 듣고도 도망가지 않은 남편은, 청소를 도맡아했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수요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박스들을 엘리베이터로 옮겼다. 어찌어찌 1층 현관까지는 옮겼는데, 다시 쓰레기장까지 옮기는 게 큰일이다. 박스 하나를 들고 가는데, 경비아저씨가 반갑게 인사해주신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엄청 많아요. 아직도 한참 더 남았어요.”

그러자 손짓으로 리어카 있는 곳을 알려주셨다. 하나씩 옮겼다면 허리가 나갔을 것이다. 리어카에 박스 6개를 전부 쌓아 싣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힘들게 끌고 가는데 저만치 보고 계시던 아저씨께서 달려와 멋지게 끌어주셨다. 오~ 나의 히어로!


어리석게도 시험공부나 업무는 죽기 살기로 완벽하게 하려 하고, 생명과 관련된 밥은 대충 때웠다.


쉽게 할 일은 쉽게,

어렵게 할 일은 어렵게 하자.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청소를 마치고,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볼에 와 닿는 햇살과 바람이 포근해졌다. 하천변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하얀 백로를 만났다. 다가가니, 접었던 날개를 길게 펴서 펄럭이며 저 멀리 날아간다. 활짝 진 날개처럼 구겨졌던 마음도 펴지고 환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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