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삽입된 관 때문에 극심한통증과 불편감에 시달릴 때였다. 와중에 영문을 전혀 모르시는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전화를 계속 거셨나 보다. 평소 전화를 자주 드리던 남편이었다. 수술 후에도 가장 먼저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꾸며냈을 것이다. 남편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시어머니에게 둘러대 달라고 부탁했다.
시어머닌 눈치가 빠른 편이다. 어떻게 하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 궁리하다 총각 때 출장 갔던 체코가 떠올랐다. 지금은 공장이 돌아가지 않지만, 자주 갔던 곳이니 이상할 것 없다. 전화 전에, 체코의 지역별 코로나 상황과 출입국시 필요서류, 격리일 수 등을 검색해보았다. 간단히 메모하고 긴장된 심호흡을 후후 몇 차례 한 후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글쎄 남편이 오늘 체코로 출장을 갔어요. 아니요. 갑자기요. 원래 가기로 했던 직원이 글쎄 아침에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대요. 네~그래서 갑자기 짐 챙기고 뭐 영문 접종확인서 그런 거 발급하고 여권 챙기고 어쩌고 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어머니한테 전화 못 드리고 간다고 전해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어머니는 아무리 그래도 전화 한 통을 못 할 만큼 바쁠 수가 있나 잠깐 의심했지만, 자세하게 술술 읊어드리니 믿으시고 걱정으로 넘어가셨다.
“아니, 거기도 코로나 심각할 텐데 어쩌냐. 무슨 출장을 이런 때에 보낸다냐?"
“그래도 그 지역이 완전 시골이라서 주변에 아무것도 없이 공장만 있다고 하더라고요. 외부 사람도 안 만나고 일만 한다니까 코로나는 걱정 없어요. 한 2~3주 걸린다고 하니까요. 그동안 전화 없어도 걱정 마세요. 왜냐면 시차 때문에 밤낮이 완전히 바뀌어서 전화 못할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 그렇구나~~ 그래도 사람 없는 시골이라서 다행이네. 네가 혼자 외롭겠구나.”
“아니에요~어머니. 남편 대신 제가 자주 전화드릴게요.”
어머니는 20여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줄곧 집에 계셨다. 지근거리에 친구분들이 많아 몸은 아파도 외롭진 않으셨는데, 코로나 이후에 부쩍 우울해하셨다.
최근엔 누가 자꾸 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려고 한다고 불안해하셔서 CCTV를 설치했는데 아무것도 찍힌 게 없었다. 어머니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정신과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서울 큰 병원에 예약을 잡고 각종 검사를 받으니, 파킨슨병 진단이 나왔다.
남편은 심약한 어머니가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으로 쓰러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앞으로 몇 번의 출장 카드를 더 꺼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큰 산 하나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