잰걸음으로 공원 가는 길에 맞은편에서 오고 계신 어르신을 보았다. 한쪽 다리를 조금 절면서 아주 천천히 걷고 계셨다. 남편도 처음엔 그분처럼 천천히 걸었다. 하천변 다리 중 2교도 못 가 숨이 차다며 그만 돌아가자 했다. 아쉬운 맘을 안고 번번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남편이 나도 여태껏 가보지 못한 7교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남편은 참 성실한 사람이다.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헬스장에 등록해서 매일같이 운동을 하고 아침산책을 빼먹지 않더니 회복속도가 눈에 띄게 빨랐다.
2년 전, 통 움직이지 않다가 갑자기 무리해서 걸은 후 발바닥 인대가 늘어난 적이 있다. 그 해 내내, 운동은 꿈도 못 꿨고, 설거지하려고 잠깐 서 있어도 발바닥이 아파 왔다. 7교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통증이 재발할까 두려워 도전하지 못했다.
남편은 내가 보지 못한 그곳의 풍경을 얘기해줬다. 하천도 그 옆의 길도 크고 울창한 수풀로 온통 뒤덮인 막다른 길이라 우회해서 빙 돌아 나가야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올라가면 전신주와 전선이 굉장히 많고 차가 쌩쌩 다니는, 앞의 다리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고 넓은 다리가 있다고 했다. 궁금증이 더 커졌다. 매일 걷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가 볼 수 있겠지.
퇴원 3개월 남짓. 초심을 잃었다. 내가 먹는 일반식을 고대로 차려주고 심지어 라면을 끓여 줄 때도 있다. 간식은 알아서 챙기도록 했고, 아픈 것을 까맣게 잊은 듯 예전처럼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매일 장을 보고 과일을 갈아주고 채소, 생선을 찌거나 삶아 영양소를 골고루 챙겨서 종류별로 식판에 정량을 덜어주던 때가 있었다. 하루 알람을 6개씩 맞춰대며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식후에는 소화를 위해 늘 함께 걷던 그런 때가 있었다.
남편이 후에 말했다. 내가 그렇게 잘해줄지 몰랐다고, "와이프는 좀 이기적이고 철이 없어서 신경도 안 쓸 줄 알았어." 그런다. 대체 날 어떻게 본거야.
처음 조기 판정을 받고 매일 큰 소리로 같이 읽던 감사일기를 다시 써보자고 다짐해본다.
복귀를 앞둔 남편은 걱정이 많아 보였다. 살이 너무 빠져서 기운이 없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좀 더 쉬는 건 어떠냐는 얘길 나누며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걸린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찍은 웨딩촬영 사진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이 사진 보면 볼수록 좋아."
"맞아. 그땐 진짜 걱정이 하나도 없었어."
"난 지금도 걱정 하나도 없는데?"
남편 말에 ‘아이고 쿨병에 걸린 거야? 걱정이 없긴 왜 없어.’
생각했지만, 요즘 자다가 숨이 안 쉬어져 깨는 일이 거의 없다.
감사하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보다도 더, 그야말로 억세게 운이 좋았다. 항암치료도 필요 없는 조기 위암이었다. 로또가 안된 이유가 있었다. 이번 생에 가진 모든 운은 여기에 다 썼다.
잊지 말자. 죽고 사는 일 아니면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고, 죽고 사는 일조차도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애태우며 살 것 없다는 것을.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내 비록 남들처럼은 못하더라도 그저 성실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기를. 마흔셋에 비로소 성실한 오늘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