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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Jun 10. 2022

'나의 해방일지'의 엄마

 우울한 드라마는 보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의 해방일지’를 단 몇 분 시청하고는 보지 않았다. 끝없는 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쳐도 지체 없이 넘겨 버렸다. 드라마 속 남배우가 대세라고 해서 한번 볼까 싶다가도, 아기자기한 세트의 드라마들과 달리 지겨운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화면과, ‘추앙’이란 생소한 단어가 거부감이 들었다. 어떤 인물은 아예 말을 못하는 역인가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아마도 그 장면에서 멈췄던 것 같다. 짝사랑하는 남자가 멀리 주차를 하고 술집으로 뛰어 들어와 땀을 뻘뻘 흘리는데, 큰 딸이 잠깐만 1분만 쉬세요. 라고 말할 때 둘의 표정, 순간 도 쉬어가는 듯했다. 요즘 쉼을 주는 드라마가 없다. 처음부터 보기 시작했다. 답답하게만 느꼈던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내 마음을 그대로 옮긴 듯해 적잖이 놀랐다. 남들은 밥 먹듯 쉬운 게, 나는 왜 매일 버겁고 이해 안 가는 것투성이일까 생각했었다. 다른 이들은 뭐 그리 사는게 즐거워 저리 웃고 떠드는 거지.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결국 어색함을 참지 못해  아무말 대잔치가 돼버리거나 입을 닫고 겉돌아버리는 나 같은 사람이  이 드라마에 공감하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건가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잠깐만 봐야지 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봤다.



주인공의 엄마는 다섯 식구의 살림을 도맡아 하시고, 밭일에 가게 일에 쉴 새 없이 일하시지만 수다스럽고 소녀 같으시다. 큰 딸이 애 딸린 이혼남을 만나는 게 못마땅했지만 몰래 가서 쓱 보고는 남자가 맘에 쏙 들어 말을 걸고 밥도 사주신다. 좋은 기분으로 간 시장에서 둘째딸이 개를 잃어버렸다고 울면서 가더라는 말을 전해 듣는다. 늘 묵묵히 부모를 도왔던 딸이 사랑을 잃고 아파했다는 것을 그제야 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면서 집에 가는 엄마의 뒷모습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방에 쉬러 들어가서는 다시 눈뜨지 못한다. 임성한표 드라마급의 충격적인 전개였지만, 죽음 이후를 다루는 방식은 하늘과 땅이었다. 임성한은 단순 흥밋거리로 죽음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알게 된다. 엄마가 너무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은하계가 돌아가듯, 엄마를 중심축으로 지금껏 한데 모여 잘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에게 죽음이 해방이었던 것 같다는 댓글에 눈물이 계속 쏟아졌다.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요양원에서 코로나에 걸리셨다. 그 연세에 밤낮없는 교대 근무에 코로나까지. 드라마 속 정 많고 순박하고 모든 걸 받아들이는 그 엄마가 꼭 내 엄마 같았다. 평생을 과로하다 잠깐 쉬러 들어가 급사한 그 엄마를 보고 갑자기 두려워졌다. 엄마에게도 죽음이 해방이면 어쩌나.



사람들이 멀어졌거나 늙고 아프다. 멀어질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멀어지는 것이지만, 거절 잘 못하고 맘 약한 나같은 사람은 이기적이어야 산다며 가족조차 거리두기를 하고 살아왔. 내 영역을 침범 당할까봐 자주 전화하지 않았고, 한번 주면 계속 기대할 것 같아 주지 않았고, 자주 집에 오시면 피곤할 것 같아서 핑계를 댔다. 가끔 만날 때도 어떻게든 몸이 더 편한 쪽으로 머리를 굴렸다. 다른 집처럼 해준 것이 없다며 엄마를 원망한 적도 있다. 새벽이슬이 맺힐때부터 밤이슬 맞을 때까지 일해온 엄마를 말이다.  그렇게 살아서 나는 작은 평안이라도 얻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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