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식욕이 의욕이다

들판의 허수아비

by 바다숲

첫 번째 알람을 끄고 일어나 어제 끓여둔 죽을 데워 저염간장과 같이 내었다. 위가 4분의 1밖에 안 남아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을 수 없다. 세 끼 식사와 번의 간식을 세 시간 간격으로 총 6번 섭취해야 한다. 약 먹는 시간까지 알람을 맞추자, 하루 종일 울려대는 게 알람인지 전화인지 헷갈려서 벨소리를 아이유와 폴킴으로 바꾸니 놀라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잠시 쉬었다가 산책을 나갔다. 남편이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건강한 모습을 처가 식구들에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팔을 딱 벌리고 서 있는데, 누가 지나가다 안쓰러워 패딩을 걸쳐 준, 겨울 논에 허수아비 같다. 10분 남짓 걸었는데 숨차 하면서 돌아가자고 한다. 걷는 게 이렇게나 어렵고 숨 가쁜 일인지 몰랐다 한다.


전엔 말라깽이, 면봉이라고 많이 놀렸는데, 이젠 놀릴 수도 없게끔 말라서 어떻게 살찌울까 고민이 된다.

아침, 점심은 죽을 주고 간식으로는 환자 영양식 음료나 수란이나 계란찜을 준다. 부드러운 과일을 찾아 바나나를 두부, 요구르트랑 몇 번 갈아줬는데, 암 관련 서적을 정독하고는 실수했음을 알았다. 바나나의 탄닌 성분이 소화를 방해한다고 한다. 지금은 마치 신생아의 위와 같아서 키위같이 아주 작은 씨가 있는 과일조차 걸릴 수 있다고 한다.


며칠 죽을 먹더니 질려한다. 입맛이 없으니 영 의욕도 없어 보인다.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바지런한 성격에 누워만 있으니 답답해 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아직 날이 춥고 코로나라 어디 나가기는 겁이 난다. 며칠 지나면 부드러운 빵을 조금씩 시도할 수 있지만, 단 음식은 덤핑현상을 일으킬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단백질 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니 두부, 계란, 생선 그리고 단백질 음료와 분말도 구매해야겠다.




2주가 더 지났다. 간식으로 모닝빵, 식빵도 먹고 이제 잣죽, 단호박죽, 야채참치죽, 소고기 버섯죽 등 가리지 않고 먹는다. 집죽은 맛없다며 입맛엔 좀 짜다 싶은 본죽에서 사달라고 자꾸 떼를 쓴다.

작은 그릇은 남편 거, 밑에 사발은 내 거

항상 "바로 그 점이 우리 병원만의 자랑인데요~~." 로 말을 꺼내시며 분위기를 풀어주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조정석 같은 의사 선생님이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실밥을 뽑아주셨다.

남편이 자꾸 짠 걸 먹으려 한다고 일렀더니, 간은 크게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내친김에 김치, 홍삼, 한약, 족발 같은 것을 먹어도 되냐고 질문을 마구 쏟아내자 한 마디로 정리해 주셨다.

"잘 먹는 게 제일 중요해요. 딱딱하고 질긴 것만 빼고 검증된 건 다 드셔도 돼요."

남편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엄청 좋아라 한다. 얼굴에 못 보던 생기가 돌고 반쯤 떴던 눈이 커지고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걸 보니 식욕이 곧 삶의 의욕이자 원동력인 것 같다.


"우리 뭐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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