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두 번째 귀신

by 바다숲

3개월간의 합숙이 끝나고 라인과 직무를 배정받았다. 라일락 동이라는 이름마저도 밝고 환한 신축 기숙사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마침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동기도 같은 기숙사에 배정이 되었다. 학교 땐 친하지 않아 데면데면했는데 합숙하면서 피를 나눈 자매보다 돈독해졌다. 지금도 둘도 없는 영혼의 단짝인,애와 한 방을 쓰고 싶었지만, 나는 박막을 입히고 최종 검사를 하는 CVD로, 친구는 포토샵으로 배정되어 바로 옆방을 쓰게 되었다. 4인실을 쓰다가 널찍한 2인실을 쓰게 되어 행복했다.


여름밤, 침대에서 자다가 더워서 바닥에 내려와 잔 적이 있다. 자다가 잠깐 눈을 떴는데, 거울 앞에 방 언니가 머리를 빗고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언니는 머리가 허리까지 길었는데 그날은 왠지 더 길어 보였다.

“언니 밤중에 왜 그렇게 머리를 빗어?”

언니는 고개를 완전히 돌리지 않고, 옆으로 살짝 돌려서 옆 눈으로 나를 살짝 보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잠결에도 뭔가 옆얼굴이 계란 흰자처럼 투명하고 비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졸려서 잘 못 봤겠지 하고 그냥 잤다.


아침에 친구와 신나게 구내식당에 들어가 배식을 받다가 방 언니와 마주쳤다. 나는 쾌활하게 말을 걸었다.

“언니! 어젯밤에 계속 머리만 빗고. 왜 말 시켜도 대꾸도 안 ~”

“어? 나 어제 야간 근무였는데?”




소문에, 수천만 원짜리 반도체 칩을 떨어트려 깬 직원이 괴롭힘 당하다가 자살했고 라인 구석에 하얀색으로 그어진 선이 그 흔적이라고도 했다. 비가 오면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기숙사를 돌아다니는데 CCTV에 동시에 다른 층 복도에서 찍혔다는 괴담도 돌았다.


힘들다고 정평이 난 라인의 직무에 배정된 동기 한 명은, 왕따 당하는 사수를 만나 똑같이 왕따를 당했다. 내 방에 와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고 말하는 모습이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여기서 못 버티면 분명 다른 데 가서도 못 버틸 거야.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면 어디서 날 받아주겠어? 그럼 앞으로 인생도 계속 꼬일 거야."

"음... 네가 보기엔 나 어때 보여?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 근데 나 예전에 아주 심하게 왕따 당한 적 있어. 교회에서 몇 년을 따당하다가 엄마한테 울면서 빌고 겨우 빠져나왔어. 지금 나 봐봐. 어딜 가든 잘 어울리고 재밌게 지내. 그니까 네가 문제가 아니라, 왕따 시키는 그 사람들이 이상한 거고 이곳이 너와 안 맞는 것뿐이야."


3개월 후 퇴사한 동기는, 지금 회사에서 20년 넘게 근속하며 두 사람 몫의 임금을 받는 중요하고 높은 자리에 올랐다.

세월을 거슬러 지금도, 여기가 세상의 전부이고 자신이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오해하고 맘 졸이는 사회초년생들이 있을까 걱정된다.

뭐 하나 실패했다고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다. 이곳은 내가 거쳐간 열 군데도 넘는 직장 중 하나일 뿐이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여름엔 귀신 이야기가 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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