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인사만 했는데도 선임들은 건방지다며 언제 한 번 밟아줘야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이 경험은 어느 직장에서든 초반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었다.
같이 가잔 소리도 없어서 혼자 식당에 가면, 선배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광활하게 넓었지만, 굳이 피할 필요 있나 싶어서 인사하고 맞은편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럼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자기들끼리 작지만 충분히 들리게 욕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썼고 보란 듯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밥을 아주 맛있게 많이 먹었다. 어이없는지 당황했는지 욕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대부분 나이트클럽 죽순이들로 음주가무에 매우 진심이었다. 첫회식에서 젝스키스의 '로드파이터'를 선곡해 파워풀한 랩과 춤 동작을 내려꽂으며 입이 떡 벌어지는 문화충격을 안겨주었다. 술도 받아먹는 척하면서 밑으로 다 버렸다. 그날 이후로 예쁨 받는 후배가 되었다.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 그런지 현장 분위기는 그다지 부드럽지 않았다. '리더걸'의 앞자를 딴 'LG언니'는 라인에서 연차가 가장 높고 능력을 인정받는 최고참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그들도 일명 SKY 대학 출신의 공정 엔지니어들과의 소통을 힘들어했다.
막 발령받은 때였다. 설비의 레시피를 바꾼 엔지니어에게, LG 언니가 “왜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언니의 손등을 손바닥으로 찰싹 치면서 말했다.
“왜요는 일본 담요지. 잔소리 말고 그냥 해.”
그리곤 언니가 충분히 들리게 다른 엔지니어에게 말했다.
“요즘은 개나 소나 말이나 다 왜냐고 물어”
몇 달 후 내가 설비를 전담하게 되었다. 매뉴얼이 바뀌었길래 그때 그 엔지니어에게 왜 바뀐 거냐고 물어봤다. 그는 탁자 위에 올려놨던 내 손을 치려고 하면서 말했다.
"왜요는 일본..."
재빨리 손을 치웠고 그는 빈 테이블을 탁하고 내리쳤다. 내가 깔깔 웃으며 그 농담 정말 재미없다고 말하자, 굉장히 민망했는지 손을 계속 쥐었다폈다거렸다.
설비 에러시, 엔지니어가 바로 와 주지 않으면 안에 있던 반도체 칩을 살리기 어렵고 그럼 위에서 엄청나게 깨지기 때문에, 작업자들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잘 보이려고 했다. 나는 ‘이건 당연히 니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부탁하지 않았다. 콜을 했는데 지체되면 몇 번이고 전화해서 '당장 안 오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거즘 반협박을 했다.
개나 소를 들먹거리던 진상 엔지니어도 “넌 다른 애들이랑 다르니까 설명해줄게.”라고 말했다.
꼼꼼하게 일 잘 하는 직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세를 일부러 낮추지 않았고 말귀가 빠르고 판단력이 좋았다. 평소 친절하고 호의적인 엔지니어들과 회식으로 돈독한 친분을 다져두었고 도저히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여유와 자신감으로 무장한 날, 뒤에서 욕할지언정 앞에선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퇴사할 때 엔지니어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는 후일담을 듣기도 했다.
그때의 패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