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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Sep 19. 2022

관포지교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사귐.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비유.

이전 직장에서 퇴사하는 나에게  '잘 가라. 나의 포숙아'라는 롤링페이퍼 글귀를 적어준 이가 있다.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처럼 언어가 사고를 규정하는 것인지 정말로 '관포지교' 같이 끈끈한 인연이 되어가고 있다.



그녀가 처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뭔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내 앞에 앉아 매고 온 백팩을 벗어 무릎에 얹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잠시 쑥스러워했지만 특유의 느릿하면서 야무진 음성으로 얘기했다.

"저, 여기 직업상담사 공고 보고 서류 내러 왔어요."

접수창구는 바로 옆이었고 그쪽으로 안내하면 끝인데도, 뭔가가 나를 붙잡았다.

"혹시 괜찮다면, 제가 자소서 한번 봐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보조개를 깊게 파며 가방에서 파일을 꺼내 내밀었다.

"음... 개성 있게 잘 쓰셨네요. 경력을 좀 더 부각하는 게 좋겠어요, 두괄식으로 쓰시고 근거를 에피소드로 제시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기 직전에 말했다.

"저도 직업상담사가 되면, 꼭 선생님처럼 자소서 봐주겠다고 먼저 말할 거예요."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합격한 그녀와 같이 1년을 일하고 내가 먼저 퇴사했다. 





그녀는 퇴사 후 강릉에서 5일 살기를 했다고 한다. '제주 한 달 살기'와 비슷하게 가정집 아파트에서 숙박할 수 있다고 한다. 종일 바닷가를 거닐고 동네 북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미뤄둔 책을 다 봤다며 행복해했다. 다음 여행지는 군산이라 하여서 잠시 들르겠다 말했다.

그녀가 보내 온 강릉

단골 막걸릿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우산을 폈음에도 그녀가 선물해준 레인부츠 안쪽까지 침투한 빗물이 기어이 양말까지 적셨다.

"앗, 집에 문 열어두고 왔는데~베란다에 빨래가..." 다행히 근처라 그녀와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해서 창문을 닫았다. 헌데 그 잠깐 사이 개어 베란다 너머로 파란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보인다. 뭔가 참 비현실적인 날이다.


처음 글을 써서 보여준 사람이 그녀였다.

"매생이국처럼 글이 술술 읽혀요. 글이 마치 이미지처럼 떠올라요."

아무리 뜯어봐도 그런 글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서 그렇게 되고자 애썼나.


글쓰기 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감사하게도 이런 말을 해주셨다. 영화처럼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그때 깨달았다. 그녀가 내 등을 밀어주기 위해 현재의 내가 아닌 먼 미래에 있을 나를 칭찬했던 거였다. 나를 알아봐 준 친구, 나의 관중아.




후에 관중은 포숙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일찍이 곤궁할 적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몫을 더 많이 가지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포숙을 위해 일을 꾀하다가 실패하여 더 곤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포숙은 나를 우매하다고 하지 않았다. 시운에 따라 이롭고 이롭지 않은 것이 있는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여러 차례 벼슬길에 나갔다가 매번 임금에게 쫓겨났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시운을 만나지 못한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나는 여러 차례 싸웠다가 모두 패해서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였을 때 동료이던 소홀은 죽고 나는 잡히어 욕된 몸이 되었지만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ㅡ 출처, Daum 백과 '관포지교'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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