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미국주민으로 살아요]
햇수로 4년 전에 끄적였던 글이 운 좋게도 눈에 띄었다. 간단하게 써 내려간 나의 아침 루틴에 관한 글이다. 기가 막히게도 몇 가지 요소가 추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루틴을 지속해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몸의 리듬을 살리는 방향으로 순서화된 아침 루틴들이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감사함이 샘솟는다.
이 글을 보면서 미소 짓고 있을 미래의 그 어느 순간을 위하는 마음으로 :)
현재의 루틴을 정성스럽게 기록해 본다.
몸이 뻣뻣해지기 쉬운 겨울 아침이다. 6시 알람이 되어버린 남편의 발바닥 지압을 느끼며 말초신경이 깨어난다. 이불을 덮은 채로 몸의 방향을 180도로 고쳐 눕는다. 잠자리에서는 머리와 마주했던 침대벽이 이번에는 사선으로 올린 두 다리를 지지해 주는 고정벽이 된다. 역행하는 혈류의 흐름을 미세하게 느낀다. 조금 더 몸이 뻐근하다 싶은 날은 두 팔을 하늘 위로 뻗은 후 흔든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보기라도 한다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 기괴한 모습이다.
눈을 감고 부모님을 생각한다. 매서운 한국 겨울추위에 뻣뻣해져 가는 몸보다 서글퍼지는 마음을 더 열심히 달래고 계실 부모님을 위해 온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 마음이 조금 더 몽글해진 날은 사랑하는 누군가의 팍팍한 삶을 응원한다.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기도하면 온 우주의 기운이 한데 모여 기적처럼 그들의 염원을 실현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지난밤 곁에 두었던 양말을 잽싸게 신고 침대를 벗어난다.
부엌으로 향하는 길에 좋아하는 등 하나를 켜고, 일출보다 더 이르게 아침을 밝힌다. 죽염수를 머금고 가글을 하면서 미온수를 마시기 위해 생수를 끓인다. 손을 씻고 아들의 점심 도시락을 분주하게 준비한다. 미온수 한 잔으로 채 깨어나지 못한 나머지 세포들을 부드럽게 자극한다.
출근준비에 한창인 남편을 위해 건강식을 준비한다. 소박하지만 단정하게 아침 식사를 내어본다. 함께 앉아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은 운 좋게도 아들의 점심 도시락 난이도가 낮은 날이라 조금은 더 여유가 있다. 남편을 배웅하고 널브러진 부엌을 정리한 후에 아들에게 아침을 알린다.
어찌 됐든 아들의 점심도시락엔 빠짐없이 사랑의 편지를 끼워놓고 되도록 소소한 소란 없이 평화로운 등굣길을 도와야 한다. 여기까지가 잔잔한 아침을 시작하는 나만의 분주한 루틴이다.
남편과 아들이 각자의 생활공간으로 떠나면 비로소 나만의 시간이 열린다. 편안하고 익숙한 집을 떠나 조금은 불편하거나 번거로운 도서관을 찾는다. 식재료를 찾아 마트를 탐색한다. 날씨에 상관없이 정해진 날에는 운동을 가고 특별한 스케줄 없이 햇살이 좋은 날에는 굳이 백 야드에 나가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신다. 어디서든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과 햇살, 바람, 그날만의 특별한 공기는 내가 지금 이 순간에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감각하게 만들고 형언하기 어려운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그래서일까? 루틴이 주는 힘은 중독성이 강하다. 자신만의 루틴을 관성대로 이어가다 보면 삶이 단조로운 방식으로 체계가 생기고 단단해지며 의심을 하지 않는다. 또한 추가하거나 수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지향하는 가치들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강조된다.
도서관으로 달려오는 길에 재작년 제자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올해는 졸업을 하고 새로운 중학교 환경에 맞닥뜨릴 그 아이들과 소통하고 응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 볼까 싶다. 좋은 것을 소중한 제자들과 나누고 싶은 '먼저 산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