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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고대 사람들은 어떻게 나눴을까?

중1 수학을 철학하다 2장

by 지경선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나눗셈'.

하지만 아주 먼 옛날, 그것은 살아가기 위한 지혜였고, 사회를 설계하는 원칙이었어요.

고대인들은 ‘얼마나 나눌까’를 고민하기 전에, ‘어떻게 나눠야 옳은가’를 먼저 물었습니다.


고대인들에게 나눗셈은 생존을 위한 기술이자, 질서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어떻게 나누는지가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되었지요.

그들의 계산에는, 공정함을 향한 직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 나눗셈에서 시작된 문명의 지혜


우리는 ‘나눗셈’이라고 하면

시험지에 적힌 계산식이나,

사과를 공평하게 나누는 장면부터 떠올려요.


하지만 아주 오래전 고대 사람들에게

‘나눈다’는 건 단지 수를 쪼개는 일이 아니었어요.


그건 곡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이었고,

세금을 걷는 기준이었고,

토지나 물을 나누는 정의의 문제였어요.


그러니까 나눗셈은 삶의 중심이었어요.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했던 문제였죠.


■ 바빌로니아: 60진법의 마법


기원전 1800년경,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숫자 체계,

즉 60진법을 사용했어요.


왜 하필 60일까요?

그건 60이

1, 2, 3, 4, 5, 6… 이렇게

무려 12개의 약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나누기 쉬운 수였죠.

그래서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60이라는 수로 시간을 나누고(60분, 60초),

각도를 나누고(360도),

무역의 단위를 세웠어요.


60은 바빌로니아인들에게

공존의 도구이자, 공약수의 천사 같은 존재였죠.


■ 인도: 쿠타카, 부숴서 답을 찾다


고대 인도 수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방정식을 풀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온 게

바로 쿠타카(Kuṭṭaka)라는 알고리즘이에요.


뜻은 ‘부수다’.

큰 수를 잘게 잘게 나누고 나누다 보면

그 안에서 공통된 무언가,

즉 최대공약수가 드러난다는 생각이었죠.


이들은 최대공약수를

단지 계산의 도구로 본 것이 아니라,

천문학적 문제를 푸는 실마리로도 사용했어요.


하늘의 주기, 달력의 맞물림,

이런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수들이 언제 다시 만나느냐’의 문제니까요.


■ 중국: 『구장산술』과 감산의 철학


한나라 시절, 중국에서는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쓰였어요.


여기엔 경상감손술(更相减损术)이라는 방법이 등장해요.


이름부터 멋지죠?


‘서로 번갈아가며 빼고 줄인다’는 뜻이에요.

이건 본질적으로

유클리드 호제법과 같은 원리였어요.


예를 들어, 49와 21의 최대공약수를 구하고 싶을 땐

49에서 21을 빼고(28),

다시 28에서 21을 빼고(7),

계속해서 7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요.


그 7이 바로 공통된 척도, 즉 최대공약수인 거죠.

감산(減損)의 사유,

즉 ‘불필요한 걸 하나씩 덜어내며

핵심에 다가간다’는 방식은

동양적인 철학과도 잘 어울려요.


단순함 속에서 본질을 찾는 태도랄까요?


■ 이슬람: 유클리드를 전승하고 확장하다


중세 이슬람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수학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 덕분에 유클리드의 『원론』도

잊히지 않고 이어졌죠.


이슬람 수학자들은

유클리드 호제법을 상업 계산, 분수의 통분,

유산 분할 문제 등

삶의 실제 문제에 적용했어요.


그들은 수학을

추상적인 놀이가 아니라, 정의와 실용을 위한 도구로 보았죠.

‘어떻게 나누는 것이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수학으로 답하고자 했던 거예요.


■ 유럽: 잊혔다가 다시 깨어나다


유클리드의 이름이 붙은 호제법은

사실 고대부터 여러 문명에서 쓰였던 방식이에요.


그걸 처음으로 논리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유클리드였던 거죠.

유럽에서는 중세 시기 동안

수학이 잠시 잊혔지만,

이슬람 세계를 통해 다시 불씨가 살아났어요.


그리고 근대에 들어

가우스, 라메, 베주 같은 수학자들이

이 알고리즘을 더 깊이 연구하면서

정수론의 핵심 도구가 되었어요.


이제는 컴퓨터 속에서도

유클리드 호제법이 살아 숨 쉬어요.


암호를 만들고,

서로 다른 시스템을 연결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나누고 묶을 때

이 ‘오래된 지혜’가 여전히 쓰이고 있는 거죠.


고대 사람들은 수학을

그저 계산의 도구로만 보지 않았어요.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은

사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와도 닿아 있었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들은 공약수를 발견했고,

나눗셈의 원리를 익혔고,

그리고 우리에게 물려줬어요.


서로 다른 것을, 함께할 수 있도록.

다름을 품고, 공통을 찾아가는 지혜.

그게 바로

고대 사람들의 ‘수학’이자,

우리 모두의 오래된 이야기예요.


이삭줍는여인.JPG Jean-François Millet, The Gleaners (1857)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1857년, 오르세 미술관 소장

황혼녘 들판에서 가난한 여인들이 추수를 마친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풍요의 뒤편에 놓인 나눔과 분배, 그리고 생존의 윤리를 묵묵히 응시하게 만드는 그림입니다. 이 장면은 단지 농경의 풍경을 넘어, ‘어떻게 나누는가’라는 고대의 질문을 현대적 시선으로 되새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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