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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유클리드, 나눗셈에 철학을 입히다

by 지경선

‘공평하게 나눈다’는 생각은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만,

그 당연함을 처음으로 수학의 언어로 정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이제 우리는 수학의 기초를 세운 철학자, 유클리드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 유클리드와, 나눗셈의 철학자들


수학책에 나오는 개념들을 볼 때마다

우린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게 돼요.

“대체 이건 누가 처음 생각한 거지?”


30과 18을 공평하게 나누고 싶을 때,

둘 다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수, 즉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방법.


이 간단한 계산을 위해

우리는 지금도 종종 유클리드 호제법을 씁니다.


하지만 그 유서 깊은 알고리즘의 탄생은

단지 수학의 기술이 아니라,

인류 문명과 철학이 만나는 한 장면이었어요.


■ 기하학자 유클리드, 논리를 쌓다


기원전 3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여기서 활동하던 한 수학자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학책을 씁니다.


그의 이름은 유클리드(Euclid).

그가 남긴 『원론(Elements)』은

단순한 공식을 나열한 책이 아니었어요.


그건 ‘논리’라는 건축물 위에 세운 수학의 성전이었죠.


모든 정리는 정의에서 출발해,

명제와 증명을 통해 하나하나 쌓아 올렸어요.


그중 제7권,

바로 수의 세계를 다룬 부분에서

유클리드는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두 수를 같은 단위로 측정할 수 있다면,

그 단위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고대 수학자들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였어요.

그들은 모든 사물과 개념을 ‘측정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거든요.


그래서 유클리드는

큰 수와 작은 수를 서로 나누고,

그 나머지를 또 나누는 과정을 통해

가장 마지막에 남는 수가 최대공약수라는 것을 밝혀냈어요.


그게 우리가 지금도 쓰고 있는,

유클리드 호제법이에요.

즉 ‘나눗셈을 반복해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방법’이죠.


그는 수학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거예요.


“세상의 조화는, 서로를 나누며 찾아가는 공통된 기준에서 시작된다.”


■ 사막을 넘은 책 한 권


하지만 유클리드만이 이 생각을 처음 했던 건 아니에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수많은 문명들이 나눗셈을 고민해 왔거든요.


그의 『원론』은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사막과 도시를 넘나들며 상인들과 학자들, 철학자들의 손을 거쳐

유럽으로 되돌아갔어요.


그야말로 하나의 아이디어가 문명과 시대를 건너 이어진 이야기예요.


그리고 이 여정은 뜻밖의 한 사람에게도 도착합니다.


바로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링컨은 젊은 시절 법률 공부를 하며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답을 찾기 위해 유클리드의 『원론』을 꺼냈습니다.


“사람들이 ‘명백하다’고 말하는 그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그는 밤마다 촛불 아래에서 기하학의 공리와 정리를 따라 쓰며,

논증이란 무엇이며, 진정한 ‘증명’이란 어떤 것인지 탐구했습니다. 링컨은 실제로 유클리드 『원론』 1권의 정의, 공리, 정리를 손으로 필사하고, 직접 증명을 따라가며 “demonstrate”라는 단어의 철학적 의미를 사유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유클리드는 단순한 수학책이 아니었어요.


그건 사회를 세우는 논리의 뼈대였고,

정의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철학의 언어였습니다.


그렇게 유클리드의 언어는

수학자를 넘어서, 지도자와 시민에게까지 도달한 철학의 책이었습니다.


사실, 그보다 더 오래전에도

유클리드보다도 훨씬 오래전,

고대 중국, 인도, 바빌로니아에서도

비슷한 방법들이 쓰이고 있었어요.


▶ 중국의 『구장산술』에서는

“경상감손술”이라는 이름으로

두 수를 반복해서 빼면서 최대공약수를 찾는 법이 나와요.


▶ 인도의 수학자 브라흐마굽타는

“쿠타카(Kuṭṭaka)”라는 알고리즘을 사용했어요.

뜻은 “부순다”, 즉 큰 수를 쪼개고 쪼개

공통된 단위를 찾는 방식이죠.


▶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공약수가 많은 60이라는 수를 단위로 써서

분수 계산과 시간 단위를 다뤘어요.

(그래서 지금도 시계는 60초, 60분이에요.)

이 모든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무언가를 공평하게 나누고 싶다”는 인간의 바람이에요.


유클리드는 이 오래된 지혜를

처음으로 ‘논리의 언어’로 써낸 사람일 뿐이었죠.


■ 이름은 다 달라도, 질문은 같았다


“어떻게 나누는 것이 옳은가?”

“서로 다른 것을 같은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지구 곳곳에서, 시대마다 반복되었어요.


누군가는 그것을 계산으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또 누군가는 추론과 철학으로 풀었죠.


우리는 지금 ‘나눗셈을 반복하여 최대공약수 구하기(유클리드 호제법)’이라는 이름을 배우지만,

사실 그 안엔

수천 년에 걸친 수학자들과 문명들의 집단 지성이 담겨 있어요.


그리고 오늘 우리도,

그 질문을 이어받아

30과 18을 나누고,

조금 더 공정한 세상을 상상하게 되는 거예요.


5555.JPG Euclid of Megara Dressing as a Woman to Hear Socrates Teach in Athens, 작가: Domenico Marolì 1612–1676


진리를 듣고자 했던 철학자 에우클레이데스는, 여성 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아테네로 몰래 들어가기 위해 여장을 감행합니다. 그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강의를 듣기 위해 자신의 신분과 체면, 안전까지도 내려놓았죠 이 그림은 ‘앎을 향한 갈망’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비록 실제 유클리드(Euclid of Alexandria)와는 다른 인물이지만, 이 장면은 수학과 철학이 얼마나 깊은 사유에서 태어났는지를 드러냅니다. ‘계산’ 이전에 ‘사유’가 있었고, ‘공정함’은 그렇게 목숨을 걸고 찾아간 진리의 한 형태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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