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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최대공약수의 개념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중1 수학을 철학하다 2장

by 지경선

하나의 아이디어가 시간과 문명을 건너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요?

최대공약수를 찾는 방법은 단순한 계산법을 넘어,

천문학과 상속법, 알고리즘과 암호학의 심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 인도의 하늘, 이슬람의 지식, 유럽의 논리, 그리고 컴퓨터 속까지


우리는 유클리드의 호제법을

고대 그리스의 한 수학자가 만들어낸

멋진 발명처럼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그 아이디어는

유클리드를 지나, 문명을 건너,

지금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속까지 흘러왔어요.


마치 바다에 띄운 병 속 편지처럼,

한 사람의 지혜가 시대와 대륙을 지나

다른 이의 손에 전해진 거죠.


■ 인도: 별의 움직임에서 시작된 정수 계산


기원후 5세기.


인도에서는 하늘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과학적 과제였어요.


계산은 정밀해야 했고,

주기와 시간은 정확히 나누어져야 했죠.


그때 등장한 수학자가 아리아바타(Aryabhata)였어요.


그는 “쿠타카(Kuṭṭaka)“라는 계산법을 고안했는데,

이 말의 뜻은 ‘부숴서 작게 나눈다’는 뜻이에요.

큰 수에서 작은 수를 반복해서 빼고 나누면서

서로 다른 주기들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를 계산했어요.


이건 단순한 정수 계산이 아니었어요.


천문학, 역법, 종교의례까지 걸려 있었어요.


아리아바타와 후대 수학자들은

유클리드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최대공약수와 나머지 계산을 해냈고,

그 방법은 자연스럽게 이슬람 세계로 전해졌습니다.


■ 이슬람: 지식의 번역자들, 유산을 계승하다


9세기 바그다드.

지금은 사막처럼 느껴지지만,

당시는 세계 지식의 중심이었어요.


‘지혜의 집(Bayt al-Hikmah)’이라는 도서관에선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의 책들이

아랍어로 번역되고 있었고,

유클리드의 『원론』도 그중 하나였어요.


이슬람 수학자들은 유클리드 호제법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상업, 유산 분배, 분수 계산, 역학 계산에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단지 이론이 아니라, 삶의 계산기였던 거죠.


특히 알-콰리즈미, 알-카시, 오마르 하이얌 같은 학자들은

‘공통의 단위’가 왜 필요한지를

정수론, 대수학, 천문학 속에서 깊이 고민했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전해졌어요.


■ 유럽: 논리로 다듬어진 호제법


중세 유럽은 처음엔 잊고 있었어요.


유클리드도, 공약수도.

하지만 12세기경,

스페인을 통해 아랍어로 번역된 유클리드 『원론』이

라틴어로 재번역되면서

유럽 학자들의 눈이 다시 뜨이기 시작했죠.


르네상스 시대, 유클리드 호제법은

논리와 정수론의 기초로 자리잡습니다.


그리고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

가우스와 라메 같은 수학자들이

이 알고리즘을 체계화하고,

그 속에 계산 복잡도와 암호학의 단서가 숨겨져 있다는 걸 밝혀냅니다.


특히 가우스는 정수론의 체계 전체를 세우는 과정에서

공약수 개념을 필수 도구로 삼았고,

‘베주 항등식’ 같은 개념도 이 흐름 속에서 태어났어요.


■ 알고리즘의 조용한 주인공


오늘날 유클리드 호제법은

더 이상 수학책 속에만 있지 않아요.


신용카드 결제, 인터넷 암호화,

스마트폰의 보안 시스템…

이 모든 곳에

유클리드 호제법이 조용히 숨겨져 있어요.


우리가 흔히 쓰는 RSA 암호화 알고리즘도

‘두 수의 최대공약수를 아주 빨리 구하는 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죠.


이제 이 방법은

단지 수학의 도구가 아니라,

디지털 문명을 지탱하는 알고리즘이 된 거예요.


■ 한 줄의 생각이 문명이 되기까지


유클리드가 “서로를 나누어보자”고 말했을 때,

그는 상상했을까요?


그의 한 줄 논리가

인도의 천문대 위,

이슬람의 서고 안,

르네상스 학자의 손,

그리고 지금 우리 주머니 속 스마트폰까지

이어질 줄을요.


최대공약수는, 어쩌면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언어일지도 몰라요.


그 언어는 시대를 넘어,

이름을 바꾸고, 기술을 만나며

계속 진화해왔어요.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 이 순간,

수학을 배우는 당신의 손끝에서

또 다시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르죠.

11.JPG The Astronomer (1668) by Johannes Vermeer
한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별자리 지도를 들여다보며 하늘의 법칙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천문학, 시간 계산, 그리고 수학적 규칙에 대한 인류의 오랜 호기심을 섬세하게 포착한 장면입니다. 인도의 아리아바타에서 현대 알고리즘까지—이 그림은 최대공약수의 진화 여정에 대한 비유처럼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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