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다를 때, 사랑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차권사님의 손녀 따님에게
– 믿음이 다를 때, 사랑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ㅇㅇ 야,
어제 너의 질문을 들은 뒤로 마음이 오래 머물렀단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은, 한 철학과 박사과정 학생이자 심리학 박사인 내가
너에게 보내는 조금 늦은 답장이야.
너는 이렇게 물었다지?
“엄마는 아빠의 승진을 위해 절에 불공드리러 갔어요. 그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고 했지.
그 대답 없는 장면이 계속 생각났어.
누군가는 그걸 ‘모른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사랑의 침묵이라고 느꼈단다.
사람의 생각을 말로 꺾지 않으시려는,
진심을 오해받지 않으려는,
그리고 말보다 삶으로 보여주려는 어른의 마음.
ㅇㅇ야,
사람은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선’을 행하려 한단다.
누구는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누구는 향을 피우며 절을 하고,
누구는 아무 의식 없이도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지.
그 각각의 방식에는 다 자기 나름의 사랑이 담겨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가끔 그 ‘사랑의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멀리하거나 오해하게 되곤 해.
신앙이 다르다는 건, 사실은
내가 무엇을 ‘절대적인 진리’로 믿느냐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진짜 사랑은,
내 진리가 중요하다고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깎아내리거나 억누르지 않아.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을 때
먼저 다가와 사랑해 주신 분이야.
다르다는 이유로 사랑을 멈추신 분이 아니라,
다름 가운데서도 사랑을 시작하신 분이시지.
그러니 너는 너의 엄마가 하는 방식 안에서
사랑을 느낀다면, 그 마음을 귀하게 여겨도 좋아.
그와 동시에,
너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다른 ‘질문들’도
누구에게나 열어 놓는다면,
그건 아주 귀한 마음의 태도를 가진 거란다.
ㅇㅇ야,
나는 네 할머니를 실제로 뵙고 깜짝 놀랐단다.
당근 하나를 썰 때도,
그릇 하나를 씻을 때도,
모든 것을 허투루 넘기지 않으셨어.
심지어 한참 식사를 준비하던 분주한 와중에도
조용히 다른 자리로 옮겨 가시더니
손으로 정갈하게, 정자체로..
필요한 재료들을 다시 메모하고 정리하시더라.
음식 하나를 하실 때도
정확히 맞게, 그러나 부족하지 않게.
절대로 낭비하지 않지만, 인색하지 않게.
그 모습에서 나는 알았단다.
아, 이분은 음식을 하시는 게 아니라,
삶을 아주 똑똑하게 살아내고 계시는 분이구나.
네가 놀랄 만큼, 나도 진심으로 놀랄 만큼
정말 똑똑하고 지혜로운 분이셨어.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지 않으시고,
살아내심으로 믿음을 보여주시는 분.
믿음이 다르면 흔들릴 수도 있어.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불안해할 때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먼저 말씀하지 않으셔.
대신 이렇게 말씀하시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
신앙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가의 문제야.
너는 이미 깊은 질문을 하고 있어.
그 질문은 네가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고,
하나님은 그 질문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실 거야.
너의 삶 속에서 신앙이
정답이 아니라
사랑의 모양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며.
그리고 언젠가,
네가 네 할머니처럼
사랑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날 것을 믿으며.
무럭무럭 자라나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만들길 바라며
지경선 선생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