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박의 <내일이 찾아오면>

작사 김성호 작곡 오석준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오장박(오석준, 장필순, 박정운)'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UOro_PcEKzA? si=AUrR1 Cfp62 VQ1 fMP

너의 고운 두 손 가득히

나의 꿈을 담아주고서

이대로의 너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기 멀리 보일 것 같은

우리만의 희망 찾아서

사랑스러운 너의 꿈속에

언제나 달려가리


- 오장박의 <내일이 찾아오면> 가사 중 -




오장박은 1989년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오석준, 장필순, 박정운이 그 주인공입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이상은, 허준호, 김세준 주연의 영화 <굿모닝 대통령>의 OST로 삽입되었던 곡입니다. 정작 영화는 흥해에 참패했는데 OST는 인기를 구가했죠.

파도 소리와 활기찬 분위기 때문에 여름휴가철 여행 테마송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2002년 H.O.T의 문희준이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고요. 최근에는 경서예지가 커버를 하기도 했습니다. 감성 곡이어서인지 <응답하라 1988에도 OST로 삽입되었죠.

장필순과 박정운은 잘 아실 테니까 오석준에 대해 잠깐 이력을 읊어 봅니다. 이 노래의 작곡자이기도 하고요. 손무현, 김현철, 김상진, 박상민 등과 함께 <광복절 밴드>로 활동하며 <분홍 립스틱>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정규음반도 6집까지 냈었고요. <웃어요> 등 히트곡도 냈습니다.

가수, 작곡가 그리고 음악감독까지 맹활약했죠. 리아의 <눈물>, 박기영의 <시작>, 배기성의 <오늘도 참는다> 등을 작곡한 장본인입니다. 일본에서 다양한 작곡 활동과 한류 스타 음반작업도 했습니다. 한양여자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출강도 했고 늦깎이 결혼도 하셨고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내일이 찾아오면'입니다. 네.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의 태양이 뜨기에 우리는 반전을 꿈꿀 수 있습니다. 내일은 그만큼 희망과 기대가 담겨 있는 시간이죠. 내일이라는 시간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화자를 만나러 가 보시죠.

'푸른 바다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너의 모습이/ 메마른 나의 마음속에/ 살며시 다가오면/ 잃어버린 시간 속에 나의 꿈들이/ 하나둘씩 기억 속에 되살아나고/ 새로운 부푼 희망 속에/ 가슴은 설레이네'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파도처럼 화자에게 다가옵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일이죠. 그래서일까요. 잃어버린 시간 속에 담긴 화자의 꿈이 되살아납니다. 가슴이 설레죠.

2절을 보시죠. '내 가슴에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이름 모를 물새들의 날갯짓 소리/ 눈부신 여름 바닷가에/ 아침이 밝아오네/ 그림자만 남아있는 모습들 위로/ 먼 하늘의 달빛 하나 걸려 갈 때면/ 노을 진 바다 가운데선/ 마음은 꿈을 꾸네' 부분입니다. 여름 바닷가의 아침 풍경과 노을 지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죠. 뻥 뚫린 바다가에서 너른 마음을 담아 자신의 꿈을 열어봅니다.

'행복이란 멀게만 느껴지지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걸/ (2절) 사랑이란 낯설게 느껴지지만/ 마주 보면 눈 속에 있어/ 언젠가는 너에게 말해 줄 거야/ 내일이 찾아오면' 부분입니다. 행복과 사랑이 멀고 낯설게 느껴지지지만 바로 우리 마음에 상대의 눈 속에, 바로 우리 발밑에 있다 말합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너의 고운 두 손 가득히/ 나의 꿈을 담아주고서/ 이대로의 너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다고/ 저기 멀리 보일 것 같은/ 우리만의 희망 찾아서/ 사랑스러운 너의 꿈속에/ 언제나 달려가리' 부분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사랑하는 일은 사랑 속에 희망을 담는 일이라 말합니다.


음. 오늘은 가사 중 '행복이란 멀게만 느껴지지만'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하는데 잘 찾으셨나요? <가사실종사건>에서도 행복에 대해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행복 그래도 아직은 어렵죠.

지금까지의 행복론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과거엔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따지고 묻고 그러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행복학이라는 학문이 나온 게 아마 100년도 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행복학에서 나온 의미 있는 몇 가지 말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감수성이 다르다'거나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다'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저마다 행복에 대한 정의가 다르니 행복감도 다르겠죠. 누군가는 자신보다 타인의 행복에 더 기뻐하기도 하니까요.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행복 그리도 가까이 있는데 우리는 왜 행복을 그리도 못 찾는 걸까요? 경제학에서 한계효용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죠. 배고플 땐 그리도 맛있던 밥이 어느 정도 배가 차는 순간부터는 전혀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 배속에 들어가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래서 효용도 거기서 그칩니다.

우린 사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한 상태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행복한 줄 모르고 사는 것이죠. 지금 가진 환경이나 자산 같은 것을 누군가에게 강제로 빼앗겨 보면 뺏기기 전이 행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지금은 행복할 줄 모르고 행복을 좇고 있는 형국이죠.

그래서 행복과 불행의 이분법을 다시 들여다보자고 말하곤 합니다. 이분법 자체로 세상을 보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불행하지 않은 상태를 행복으로 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우린 평상시 행복도 불행도 느끼지 않는 상태로 사는데요. 이때를 행복으로 보자는 것이죠. 끄덕끄덕.

저는 행복은 채우는 방식으로는 끝이 안 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채워야 행복감이 느껴질까요. 오히려 비우는 방식이면 어떨까요. 다시 밥 먹는 걸 생각해 보죠. 밥 먹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은 배가 차기 전까지 일 겁니다. 배가 비워지면 비워질수록 배가 차는 시간은 더 오래 걸리겠죠. 그래봐야 몇 분 차이겠지만요.

그런데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서 배가 부른 상태가 되면 밥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없을 겁니다. 채우는 쪽이 아니라 비우는 쪽을 택해야 행복감이 배가 되는 원리죠.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 같습니다. 진수성찬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의 배고픔 상태인 것이죠.

여기에 아이러니가 존재합니다. 점심을 맛있게 먹으려면 아침 먹은 것을 빨리 소화시키거나 비워야 하죠. 오래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점심은 맛이 없어집니다. 행복감이 저하되는 것이죠. 그래서 비싼 밥 먹고 운동해서 태우고 소화제도 사 먹고 그럽니다. 행복은 비움에 있기 때문이죠.

비워야 하는 게 우리의 배는 아닐 겁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죠.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우리 마음속에서 걷어내야 하는 것이죠. 소화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용량이 넘었음을 알면서도 언제 또 이런 걸 먹어보겠냐고 욕심을 부리면 배탈이 나서 몇 기를 죽으로 연명해야 하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틀리다고 말하며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는 태도도 그렇고요. 뭔가를 좀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음도 헛배를 부르게 하죠. 잘 비우고 싶으면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하고 화를 삭여야 하고 어리석음을 소멸해야 할 겁니다. 적당히 먹고 즐겁게 먹고(먹는 걸로 싸우지 않고) 좋은 음식을 가려야죠.

탐진치가 가득 쌓이면 내 앞에 진수성찬을 가져다 놓아도 잘 먹지를 못합니다. 당연하겠죠.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으나 내가 행복감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출출할 때 마침 주전부리를 선물 받는다면 기분이 좋아지죠. 100% 다 채우지 않고 20%만 남겨 놓아도 새로운 음식에 대한 대응력이 생깁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할수록 행복에 대해 잘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삶,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삶, 사회적 약자에 눈을 돌릴 줄 아는 삶.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런 것들을 애써 공부하는 까닭은 행복의 비결이 그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죠.

욕심을 내려놓아야 타인과 자신을 저울질하지 않게 되고요. 자신을 알아야 어리석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요. 자신보다 처지가 딱한 사람들을 이해해야 성을 안 낼 수 있습니다. 행복은 동남아 어느 해변에서 벤치에 누워 파란 바다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런 행복은 먹이를 먹고 배가 불러서 기분 좋은 동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죠.

무릇 인간이라면 행복은 앎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앎은 결국 자신을 비우는 기술 혹은 예술을 연마하는 과정이고요. 열악한 공간에서도 누군가는 그런대로 괜찮다 말하고 누군가는 이러면 못 산다고 하는 것은 경험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 경험조차도 인생 공부라고 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지금 여러분들의 행복은 공부를 통해 찾은 행복인가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너무 행복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을 하죠. 행복은 애를 쓰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풀이해 보면 어떨까요. 행복 다음 불행, 불행 다음 행복처럼 행불행은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그런데 공부를 통해 알게 된 행복은 그 진폭이 덜합니다. 지속적인 행복도 불행도 없겠지만 공부는 행복의 시간을 조금은 더 연장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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