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의 <너의 의미>

작사 김한영 작곡 김창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산울림'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Jm7 iSKi8 BDs? si=plUME0 RmRxRZSPLx

https://youtu.be/wX_zVQA2 gbM? si=8 QufbCLcC_N2TA_B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 산울림의 <너의 의미> 가사 중 -




산울림은 1977년 데뷔했습니다. 팀이 결성된 것은 이보다 앞선 1974년이었습니다. 팀의 주축인 김창완은 보컬과 기타를, 김창익은 베이스를, 김창훈은 드럼을 맡았습니다. 세 사람 이름이 꽤나 비슷하죠. 네. 삼 형제입니다. 1977년 그들은 '무이'라는 이림의 밴드로 대학가요제에 참가합니다.

멤버 김창훈은 <나 어떻게>라는 노래를 당시 소속되어 있던 샌드페블즈라는 밴드에게 만들어주고 대학가요제에 참가합니다. 산울림의 <문 좀 열어줘>라는 곡이 1위를 차지하고 뒤를 이어 그 노래를 들고 나온 샌드페블즈가 2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이'는 김창훈이 졸업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탈락을 하며 샌드페블즈가 최종 우승하게 됩니다. 김창훈이 1,2위를 다 한 거나 마찬가지죠.

1977년 1집을 시작으로 1997년까지 정규 13집을 발매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가수 아이유가 리메이크를 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곡이죠. 원래도 유명했습니다. 그들의 노래에는 다소 동요 같은 곡들도 있는데요. <개구쟁이> <산할아버지>가 대표적이죠. 사이키델릭 록, 포크 록, 하드 록 등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음악을 했던 그룹이 이런 음악을 냈으니 그만큼 독특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멤버 김창완은 연기자로도 제법 오래 활동했습니다. 또한 후배가수 양성에도 적극 나섰죠. 삼 형제는 제법 수재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울대, 한 사람은 고려대였거든요. 2008년 막내 김창익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며 산울임이라는 밴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남은 두 사람은 김창완 밴드와 김창훈과 블랙스톤즈로 각각 활동하고 있다고 하네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너의 의미'입니다. 제목이 의미심장하죠. 가사가 한 편의 시를 연상시킵니다. 1+2+3+1 이런 식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처음 가사가 노래 말미에 다시 나오는 구성이죠. 화자는 너의 의미를 무어라 말하고 있을까요?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부분입니다. 상대의 말, 웃음, 눈빛, 뒷모습은 화자에게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상대라는 존재를 포함해서 거기서 파생된 모든 말과 행동이 화자에겐 의미라는 단어로 전달됩니다. 바로 상대가 사랑하는 누군가이기 때문이죠. 사랑은 이처럼 의미를 생산해 내는 일이기도 하죠.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부분입니다. 우린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싶어 지죠. 하지만 다른 언어 세계를 경험한 우리는 상대의 언어를 해석하기가 대략 난감합니다. 둘만의 언어 코드를 맞추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죠. 그전까지는 수수께끼가 되고 맙니다.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해석이 꽤 어렵네요. 하하하. 오래간만이네요.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간이역은 만남의 장소이자 헤어짐의 장소일 텐데요. 슬픔인 것을 봐서는 헤어짐 쪽인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 코스모스라는 다시 만날 희망이 싹트고 있죠. 상대는 바람을 타고 올 것 같만 같습니다. 그걸 상상한 화자는 뭉게구름 위해 같이 살 성을 짓는 상상을 하죠. 상대가 바람을 타고 오라고 창을 열어둡니다. 하하하.


음. 오늘은 제목 '너의 의미'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의미'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의미란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 시점에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늘 변화를 꾀한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해석이 늘 바뀌니까요. 제가 2년가량 고민해서 찾은 잠정적인 해답이죠.

김춘수의 꽃에는 이름을 불러주어야 의미가 생긴다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보면 One of them에서 Only one이라는 명명이 의미를 생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이성 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오직 한 사람이라는 내적 외침이 의미를 만든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만약 누군가가 말을 건네었거나 웃음을 보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상황 논리에 따라 도움이 필요했거나 도움을 받아서 고맙다는 뜻으로 한 행위일 수 있죠. 하지만 상대에게 마음이 있다면 그걸 달리 해석합니다. 상대도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시작되죠.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의미는 해석이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는 겁니다. 똑같은 경험을 하고도 누군가는 거기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다른 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해석을 달리 해서 생긴 일이죠. 만약 상대방이 A라고 행동한다면 누군가는 B로도 C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말에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하루 만에 완결하느냐고 바빴는데요. 하하하. 사랑도 통역이 필요하다는 콘셉트가 마음에 와닿더군요. 보통 이성을 처음 만나면 상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서 평소에 하던 대로 행동하는데도 오해를 발생시키곤 합니다. 말은 더더욱 그렇죠.

서로가 가진 단어에 대한 이미지 혹은 쓰임이 다르다 보니 감정 전달이 왜곡되는 일이 잦습니다. 오히려 사랑의 맛은 그런 우여곡절을 하나씩 풀어헤치는 과정에서 둘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더군요. 그 드라마에서도 그런 흐름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의미가 잘 찾아지시던가요? 저도 한 때 그 의미라는 놈을 무진장 찾아 헤맸던 적이 있었죠. 그걸 못 찾으면 허무주의라는 덫에 걸리기 딱 좋아서인지 간절함을 담아 오랜 기간 숨바꼭질 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우린 미래를 해석하진 않습니다. 발생된 과거의 해석만을 할 수 있죠. 자신이 겪은 일이나 보았던 일에 대한 해석 말입니다. 이미 내 안에 의미가 있는데도 그 의미란 것을 찾기 위해 외부를 그리도 돌아다녔으니 찾아질 리 없었습니다. 강아지를 잃고 나서 '네가 찾는 것이 강아지냐, 강아지를 잃은 너의 마음이냐'라고 묻는 것처럼요.

어떤 사람과 틀어지는 일이 있었다손 칩시다. 누군가는 그 사람과 절연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관계를 끊지는 않지만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죠. 틀어지는 일에 대한 해석이 달라서입니다. 전자는 상종 못할 사람이라는 해석을 남길 것이고 후자는 무릇 사람이라면 모난 것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라는 해석이 가능하죠.

그 해석에서 우리의 미래를 담겨 있습니다. 전자는 더 이상 그 사람을 만나지 않는 선택을 했기에 그로부터 파생되는 일들을 겪지 않게 되고요. 후자는 가까이 지내지는 않지만 관계는 유지하고 있으니 더 가까워질 수도 더 멀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되죠. 삶의 페이지가 바뀌는 셈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상황은 동일하나 해석과 행동이 달라지니 삶의 의미도 달라지게 되죠.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죠. 어떤 이성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천사라고 생각하죠. 그런 의미 부여였습니다. 일 년이 지나고 둘은 갈라서게 됩니다.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죠. 그때 생각합니다. 이 사람과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말 걸이라고요. 그때의 의미는 처음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죠. 그러다 다른 이성을 만납니다. 다시 의미 부여를 하죠. 내가 이러려고 이 고생을 했나 보다라고요. 그런데 또 깨졌습니다. 그때는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 이 모양이야라고 할 겁니다. 하하하.

우리 인생이 이렇습니다. 그 중간값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살죠. 그러다 보니 그 의미값이 자꾸 틀리게 됩니다. 해석에 따라 의미는 늘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놓치고 삽니다.

사람만 의미를 묻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이죠. 해석이라는 메커니즘도 작동합니다. 그런데 해석은 매번 틀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도 멈추질 않죠. 뭔가 이상하죠? 하하하. 해석의 다른 말은 판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좋았다 나빴다 뭐 이런 거죠. 그래서 철학에서는 판단중지, 유보를 말하고요. 의미 이전에 존재를 말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도 좋고 싫음을 없다고 하고요.

사랑할 때 우리는 '의미 안경'을 끼게 됩니다. 일명 콩깍지가 씌는 거죠. 그래서 상대의 모든 말과 행동이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의미값도 잔뜩 부여하죠. 심지어는 네가 곧 나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의 의미 안경과 너의 의미 안경은 같은 브랜드가 아닙니다. 각자의 의미 해석만이 작동할 뿐이죠. 다르면 달라서 좋고 같으면 달라서 좋다고 해석하니까 별 문제 없어 보일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하하.

의미에 너무 천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냥 하루하루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어제까지 슬펐는데 오늘 행복해도 되나, 어제 이별했는데 오늘 웃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이런 의미 해석 따위는 던져 버리고 지금 슬프면 울고 지금 기쁘면 울어보아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오래간만에 12시간 드라마에 올인했더니 벅차더군요. 20대에 일본 드라마에 빠져 폐인처럼 살던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습니다. 제 예상과는 많이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었다고 할까요. 요즘 넷플릭스 1위 찍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하하. 시간 되시는 분들은 한 번쯤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요. 판타지 소설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드라마의 의미 같은 거 찾는 것은 포기하시고요. 그냥 즐기시와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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