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

작사/작곡 최성원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들국화'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Aomt_cCNXO0? si=ovb2 qz-OmbpvkUZ5

하지만 후횐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 들국화의 <그것만의 내 세상> 가사 중 -




들국화는 1985년 데뷔했습니다. 1980년대를 수놓은 국내 최고의 록밴드로 꼽힙니다. 출발은 보컬 전인권, 키보드 허성욱과 베이스 최성원으로 이루어진 3인조였습니다. 1984년 기타 조덕환이 합류하며 4인조가 되었고 드럼 주찬권, 기타 최구희가 세션맨으로 참여하며 1집 앨범을 발매합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타이틀 곡입니다. <행진>과 함께 들국화의 명곡이죠. 이 노래가 나왔던 1985년의 시대 상황은 전두환 독재정권의 철권통치가 이어졌죠.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록이라는 장르와 함께 가사 내용도 저항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2집은 세션맨으로 참여했던 두 사람이 정식 멤버가 되면서 6인조로 나섭니다. 하지만 파격적인 1집과는 달리 2집은 부진했죠. 그래서 팀이 해체됩니다. 1990년 전인권 외에 모든 멤버가 교체되어 3집을 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2012년 재결성이 되었지만 드러머인 김주찬 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2013년 4집 앨범을 발매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죠.

활동 기간도 짧았고 히트를 친 곡도 많지 않았지만 그들이 가요계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습니다. 한국 록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나 할까요. 록=저항이라는 공식을 음악으로 잘 보여준 그룹이죠. 지금도 간혹 전인권 씨의 얼굴을 볼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곤 하는데요. 그만의 스타일을 이어가는 모습은 여전하시더라고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그것만이 내 세상'입니다. 곡의 가사에 대해 해설이 있더라고요. '전반적으로 세상과의 마찰 및 충돌과 친구로 보이는 지인과의 반대와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이루려는 화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부분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화자를 향해 치기 어린 생각과 행동이라고 저어합니다. 인생을 조금 산 사람들은 걱정 어린 눈빛도 보내고 좋은 이야기를 못 해줘서 미안함도 함께 전달하죠.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부분입니다. 이런 소크라테스가 따로 있나. 화자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모른다고 인정해 버립니다. 다른 사람이 호응하지 않는 길을 그동안 홀로 걸어온 사람이라서였을까요?

2절에도 비슷한 가사가 나옵니다.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 봐' 부분입니다. 세상을 아는 자들은 잘 살기 위한 길을 찾아 모두 떠났습니다. 화자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돈이 안 되는 길을 걸어오고 있는 듯하죠. 이 우둔한 사람을 향해 주변에서는 혀를 찼을 겁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하지만 후횐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하지만 후횐없어/ 가꿔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부분입니다. 화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는 없다 말합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걸었던 사람들과는 가는 길이 달랐다고 말이죠. 화자가 꿈꾸는 세상은 생계에 휘둘려 남들의 입김에 휘둘려 꿈을 내려놓지 않는 세상이 아니었을까요?


음. 오늘은 가사 중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어나서 우리는 비스므레한 삶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어린이집을 가고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교에 가고 그리고 사회에 풍덩. 단체 생활을 하다 보니 밥도 같은 시간에 먹고 화장실도 쉬는 시간에 함께 가고 그러죠. 이름만 유일하게 아무개 정도로 불린다고 할까요.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을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만나게 되면 겉모습에서는 어렴풋이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순 있는데, 말을 섞어보면 정신세계가 안드로메다로 간 사람들이 왕왕 있죠. 같이 생활할 때는 몰랐는데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시간 사건이 그런 일을 만들곤 합니다.

그래서 우린 동창회 때 그런 친구들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코찔찔이가 너무 버젓한 사장님이 되었거나 숫기가 없는 친구가 사고를 쳐서 결혼을 일찍 한 탓에 장성한 아이의 학부모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완전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삶이 전개되어 있는 장면이죠.

학창 시절에는 좀 변화를 준다고 해 봐야 국내에서는 외고나 특수목적고 정도 그것도 아니면 대안 학교 따위로 진학하는 걸 겁니다. 외국으로 유학을 하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사회와 맞닿는 순간 그 진폭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사는 곳도 사귀는 사람도 뭐든 결정할 수 있으니 그 결괏값의 차이는 시간이라는 함수가 더해져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죠.

오히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 들어가는 것이 너무도 흔해 빠진, 기대가 덜 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로망일 수 있겠지만요. 얼마 전 방영했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라는 드라마 보셨는지요? 청춘을 회사에서 불사르고 임원이 되니 마니 하다가 쫓겨나서 방황하다가 삶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는 내용이죠. 상당수가 이런 삶의 궤적을 그려갑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희로애락이 있었을 겁니다. 엄밀히 말해 김 부장과 그 가족, 조금 넓게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 하는 지인 정도의 희로애락이죠. 요즘 대기업에 들어간 신입 사원들은 1년도 되기 전에 관두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요. 누군가는 끈기가 없다 개념이 없다 말하지만 저는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사실 사회에 나오기 전 우리 사회가 만든 시스템은 고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학생들의 개별 특성보다는 평균값이나 대다수에 맞춰진 시스템이기 때문이죠. 대다수가 어떤 대학을 가는지에 대한 열띤 경쟁만 있지 정작자신의 주특기를 살리기 위한 이야기는 묻혀 버립니다.

그런 사회적 족쇄가 풀려 가장 많은 자유도를 보이는 시점이 바로 '사회'라는 공간이죠. 지금까지 지원을 아낌없이 주신 부모님의 시선이 가장 걸리적거리긴 하지만 이 순간이 가장 자유도가 높은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것을 맘껏 시도하려고 하죠.

그런데 빌런이 등장합니다. '너 그렇게 살면 나중에 힘들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게 되죠. 자신들이 살아온 세상의 경험으로 내뱉는 저 말에 반항을 때리기도 하고 '나는 다를 거야'라고 호기를 부려보기도 합니다. 사춘기가 자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제2의 사춘기는 사회나 주변의 시선과 싸우는 시기죠.

제2의 사춘기를 겪으며 우리 대부분은 거대한 사회의 시선에 백기투항합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 괜히 그러는 건 아닐 거야. 나도 이제 정신 차려야지' 이런 말들로 변심하는 자신을 위로합니다. 하나 둘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기득권이 짠 판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배겨내기가 그리 쉽진 않죠.

그중에 한, 두 사람은 철이 없는 것이지 진심인 것인지 한 길을 쭉 갑니다. 다른 사람이 어찌 살든 아랑곳하지 않고, 설사 자신의 삶이 예전과 비교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데도 길을 바꾸려 하지 않죠. 누군가가 보면 참 비생산적이라거나 세상을 모른다는 핀잔을 듣기 딱 좋은 상황이죠.

우리는 집단에서 이탈한 한 개인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줄에서 삐죽 나와 이탈을 하면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죠. 줄에 가지런히 서 있는 것이 선이고 삐죽 나오면 악이라는 프레임을 던집니다. 하지만 너와 나의 개별성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 똑같은 줄에 선 채로 한번뿐인 인생을 살 순 없죠.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탈출하는 사람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몰두하며 꿈을 운운하는 사람들처럼 일반인의 눈에는 인생 실패를 넘어 기이한 행동으로 평가받을지 몰라도 저는 그게 인간다워지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기보다 자기 길을 개척하는 정신을 높이 삽니다.

그런 길을 가는 사람들의 삶은 순탄치 않습니다. 길이 그려지지 않은 자갈밭을 수도 없이 걸어야 하니까요. 거기에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까지 더해져 그 고충을 배가시키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사람들은 아니죠. 우리에겐 우리 각자의 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가 걸어가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지 여기다 하고 우리 앞에서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길의 속성인데, 보통 나이 많은 분들은 본인들 세대가 만들어 놓은 길을 걸으라는 조언을 자주 하시죠. AI 시대는 어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혼자만의 길을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보며 이 노래의 가사처럼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걷다가 묵묵히 걷다가 문득 뒤돌아 보니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짜릿함'을 느껴보시길 강권하면서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록은 저항 정신과 맞닿아 있죠. 이보다 더 센 메탈이라는 장르는 '확고한 자기 세계'와 '돈 터치미'라는 이미지고요. 그런 점에서 록은 철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기존 것들의 권위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거든요. 고음을 내면서 아니라고 아닐 수 있다고 내지는 소리가 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현대 철학자들은 록 음악을 좋아할까요? 심히 궁금해지네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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