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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Nov 16. 2023

서문탁의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

작사 이영준 작곡 박세준

안녕하세요?

이번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서문탁'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oAL13_YTRMs?si=O-XrqeINx7PUvihb

하지만 기억해 줘

널 사랑한 한 슬픈 영혼이

여기 있었다는 걸


이젠 너의 곁을 지킬 수 없는

죽었다고 생각해


사랑 없는 삶

그것과 같을 테니


- 서문탁의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 가사 중 -




아무렇지 않은 듯

널 잊을 순 없었어

술의 힘이라도 빌려서

너를 잊어보려 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를 지울 수 없을 것 같아

무너져 내리는 내 모습

용서해 주길 바래


언젠가 너를 잃고

살아가게 되겠지

시간이 너를

떠나가게 만들겠지


하지만 나는

널 잊는 내 모습조차

너무 아플 것만 같아


슬퍼하지 말자

혼잣말을 해봐

우리 사랑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고


만에 하나라도

하늘이 너를 다시 허락한다면

이번처럼 힘없이 너를

혼자 보내진 않을 거야


내가 죽는 순간

네가 곁에 있다면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거든


기억해 줘

널 사랑한 슬픈 영혼

여기 있었다는 걸


너의 곁을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면

나를 죽었다고 생각해 줘


시랑 없는 삶

죽은 것과 마찬가지 일 테니




서문탁은 1999년 이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1집을 발매하며 데뷔했습니다. 이 노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녹음에 앞서 가이드보컬을 맡은 사람이 빅마마의 이영현 씨였다고 하네요. 심지어 어제 소개해드린 임정희 씨와 경쟁 끝에 따냈다고 하니 얼마나 가창력을 요하는 노래인지 아시겠죠. 이 노래 말고 <사미인곡>이라는 곡이 그녀를 대표하는 노래로 꼽히죠.

본명은 이수진입니다. 워낙 강한 락을 주로 불러서 본명이 너무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게 되네요. 활동명인 서문탁이라는 이름은 흔하지도 않고 기억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성이 서가 아니라 서문이고요. 이름이 탁입니다. 서대문 안에서 으뜸가라는 뜻으로 지어졌다고 하네요.

그녀를 설명하는 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로커. 그 자체입니다.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로커 중 이 정도로 장수하는 가수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이니까요. 허스키한데 시원한 고음도 매력적인 보컬입니다. 들어보신 분들이 방송보다 라이브가 좋다고 하는데 저도 늦기 전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그녀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들어봐야겠네요.

자 그럼 본업인 가사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부터 짚어보고 가 보죠.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입니다. 참 묘한 느낌을 주죠. '...' 부분에 여러분들은 어떤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욕망'이나 '기억' 등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노래에서 작사가는 그 뒤 부분에 어떤 내용을 넣었을지 가사를 함께 곱씹어 보시죠.

 이 노래는 후렴구를 노래 초반에 배치해서 우리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듭니다. '기억해 줘/ 널 사랑한/ 한 슬픈 영혼이/ 여기 있었다는 걸/ 이젠 너를 지킬 수 없는 날/ 죽었다고 생각해/ 사람 없는 삶/ 그것과 같을 테니'부분입니다.

노래의 화자를 '한 슬픈 영혼'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여기 있었다는 걸'에서 과거 시제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네 과거에 누군가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헤어져 슬픈 영혼이 되어버린 한 사람을 이렇게 표현했네요. 헤어졌으니 당연히 곁에 없는 상태이고 지켜줄 수도 없게 되겠죠.

노래의 화자는 그 상태를 '죽음'이라는 단어와 매칭시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사라져 그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본인을 죽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죠. 전 이 부분이 이 노래의 주제절이라고 보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 죽은 자와 무엇이 다르더냐'라는 명제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여느 이별이 그렇듯이 노래의 화자는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술독에도 빠져봅니다. 그렇게 술에 찌들어 자기 자신을 무너뜨려야만 그녀를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저 술에 취해 너를 잊어버리는 것/ 내가 무너져 너를 지우는 것'이라는 부분이 이렇게 해석되네요.

제가 좋아하는 가사는 '언젠가 너를 잃고 살아가게 되겠지만/ 시간이 너를 떠나가게 만들겠지만/ 나는 그것조차 아플 것 같아/ 널 잊는 나의 모습이' 부분입니다. 이별의 아픔은 짧던 길든 간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그 기억의 강도가 옅어지게 마련입니다. 그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잊어야 하는 상대를 놓는 떠나보내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조차 아프다니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걸까요? 이별의 아픔을 표현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왠지 이별 경력자의 아픔이라고 느껴져서인지 더 아립니다. 참 잘 쓴 가사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작사가님. 훌륭하십니다요.

1절이 이별의 슬픔을 절절히 표현했다면 2절에서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통해 희망가적인 가사가 이어집니다. ' 저 하늘이 너를 되돌려 줄 그날 다시 온다면/ 두 번 다시는 이렇게 힘없이/ 너를 잃지 않겠어/ 나 없는 그곳 보낼 수가 없으니'라든가 '슬퍼하지 마/ 이별이 아냐/ 잠시 우리 사랑 쉬고 있을 뿐'이 그렇죠.

실성이라도 한 것일까요? 전 이렇게 이해해 봤습니다. 사람이 너무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면서 먼저 부정하는 자세를 취하죠. 그런데 현실은 그와 다른 모습이 펼쳐지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인지부조화를 해소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 결과 'IF'라는 절대반지를 사용하게 되는 거죠. 물론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두면서 이별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절묘함을 연출해 낼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 가사가 '나의 마지막 순간이/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으니/ 널 사랑해'로 이어지잖아요. 해어짐으로 인해 네가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라고 생각하실 텐데요. 저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다가 이리저리 짱구를 굴려 찾게 된 저만의 해석이 탄생했네요. 작사가분도 이런 의도였을까요?

와우. 이 노래 그리 안 봤는데 예상보다 훨씬 가사 난이도가 있었네요. 오늘 맺음말은 이 노래의 제목의 '...'에 뭘 넣는 것이 적절할지에 대한 제 개인의 의견을 제시해 보는 것으로 하려 합니다. 저는 '...'에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 시들지 않는 그리움' 이렇게요.

사실 제 생각이 그렇다기보다 노래 가사를 쭉 리뷰해 봤을 때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을까 해서요. 사랑했지만 이별했고 이별했지만 그리움이 시들지 않는 화자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하염없이 혹은 가정법까지 동원해서 떠난 사람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리움이란 누군가를 잊어보려고 머릿속을 하얀색으로 비워보는 거죠. 하지만 이내 햐안색 스케치북 위에 무언가가 그려지는데 바로 떠난 그 사람인 거죠. 우린 그걸 그리움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우고 비워내고 결국 또 그리게 되는 그 감정을 말이죠.

여러분들도 무엇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시나요? 아무리 지우고 비워내려고 해도 머릿속에 남아 문뜩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려지는 그림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과거에 행복했던 시절이나 사랑했던 사람 등이 떠오르실 텐데요. 오늘은 시계추를 과거로 돌려 여러분들의 아련한 그리움을 한 번씩 소환해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는 것을 보다가 브런치에 담아겠다고 결심했더랬습니다. 가창력도 가창력이었지만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서문탁 씨의 입 크기였습니다. 보통 가수들은 입모양도 신경 쓰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본 가수 중에 가장 입을 크게 벌리고 노래를 하는 것 같았거든요. 하하하. 그만큼 외모 같은 건 신경 끄고 노래에 혼신을 쏟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전 '가수는 첫 번째가 노래'라고 생각하는 주의여서 이런 부분이 많이 와닿았네요. 자 오늘도 편안한 밤 보내시고요. See you. Coming Soon- (NO.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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