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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Feb 06. 2024

고한우의 <암연>

작사/작곡 고한우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고한우'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5q_dOqPLVMk? si=d9 b9 EYrYIqWxbjnj

사랑이란 것은

나에게 아픔만 주고

내 마음속에는

멍울로 다가와


우리가 잡으려 하면

이미 먼 곳에

그땐 때가

너무 늦었다는데


- 고한우의 <암연> 가사 중 -




웃었어 넌

슬프지 않은 것처럼

내가 이별을 말할 때에도


하지만 내가 가려하자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어


울음을 참았어 넌

들키지 않으려 하늘을 봤지


내 품에 와락 안겼을 때

이미 옅은 눈물이

벌써 너의 볼을 적시고 만 뒤였어


그런 널 보며

참지 못했어

그 자리에서

나 역시 그냥 울어버렸어


사랑이란 건

늘 이처럼 아픈 건가 봐

마음속 깊은 상처를 남기지


늘 이처럼 어긋나는 건가 봐

늘 한 발짝씩 늦어 버리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어려워

우린 뒤돌아서서

눈물만 흘렸어


한참이 흐른 뒤에

이제 갔겠지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너 역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




고한우는 1988년 1집 음반을 발표하면서 데뷔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홍익대학교 자작곡 연구 동아리인 '뚜라미회'에서 작곡은 물론 작사 활동을 하면서 가수로서의 실력을 다져왔다고 합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무려 7년간의 무명생활을 거쳤습니다.

영화나 TV OST에 참여하면서 목소리가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 소개해 드린 노래가 히트를 치면서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죠. 1997년 두 번째 스페셜 앨범에 수록된 곡입니다. 위에 올려드린 SBS 드라마 <여자>의 OST로도 삽입되었죠. CF에도 쓰인 것으로 확인되네요.

노래 제목이 특이한데요. 고한우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친구가 만들어줬다고 하네요. IMF 당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친구가 이혼까지 하면서 실의에 빠진 모습을 보며 노래밖에 해 줄 게 없어서 위로하기 위해서 만든 노래라고 하네요.

노랫말의 주인공은 옛 여자친구로 그녀로부터 꽃을 받은 후 말려 놓았는데 몇 번을 버렸다 다시 가져왔다를 반복했을 만큼 아픈 사연을 지닌 노래입니다. 그녀와는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파혼했다고 하네요. 흑흑. 고한우 씨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이 노래를 넘어야 할 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야겠죠? 한자사전 찬스를 좀 쓰겠습니다. 암연(黯然)은 '(시름에 겹거나 이별하거나 하여) 슬프고 침울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노래가 이별하는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으니 얼추 이해가 되시죠. 제가 궁금한 건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이 단어를 친구가 어디서 보고 제목으로 추천했는지와 그걸 덥석 받은 고한우 씨의 선택 부분입니다. 하하하.

'내겐 너무나 슬픈 이별을 말할 때/ 그댄 아니 슬픈 듯 웃음을 보이다/ 정작 내가 일어나 집으로 가려할 때는

그땐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어'가 첫 가사입니다. 기가 차서 웃은 것일까요? 슬퍼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오히려 웃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다소 안도했던 걸까요? 하지만 일어나 집에 가려하는데 그녀가 손을 잡더니 놓지를 않는 거죠. 네 한 마디로 '안 그런 척'했던 것이죠. 이별의 시간에 감정을 그냥 다 까발리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의 참을성을 보여주는 그녀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울음을 참으려고 하늘만 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내 품에 안겨와/ 마주댄 그대 볼에 눈물이 느껴질 때는/

나도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어' 부분입니다. 이미 그녀는 울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늘을 유난히도 많이 보는 것 같았지만 말이죠. 상당한 참을성을 지닌 그녀였지만 순간 무너집니다. 끝내 참지 못하고 화자를 와락 안아버리죠. 그때 화자는 알게 되었죠. 그녀의 볼에서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화자는 결국 눈물이 터져 꺼이꺼이 울어버리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사랑이란 것은 나에게 아픔만 주고/ 내 마음속에는 멍울로 다가와/ 우리가 잡으려 하면 이미 먼 곳에/ 그땐 때가 너무 늦었다는데' 부분입니다. 이별 상황에선 사랑이 좋게 보일리 만무합니다. 아픔과 상처만 주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결정적으로 두 사람간 이별의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가사가 나오는데, 타이밍이 안 맞은 듯 하죠. '한 사람은 지금 결혼하자. 다른 사람은 몇 년만 기다려줘. 그러다 지금 아니면 우린 헤어져' 이런 사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제목 '암연'과 함께 '멍울'이라는 단어 역시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마지막 가사는 '차마 어서 가라는 그 말은 못 하고/ 나도 뒤돌아서서 눈물만 흘리다/ 이젠 갔겠지 하고 뒤를 돌아보면/ 아직도 그대는 그 자리에'입니다. 저는 이 가사가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헤어지는 이유는 있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의 마음을 잘 보여준 가사라는 생각입니다. 서로 뒤돌아서 엉엉 울다가 한참 후에 뒤돌아보니 상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모습 말이죠. 두 사람은 정말 많이 사랑했나 봅니다. 가슴이 아리네요.


음. 오늘은 우리가 '누군가에서 등을 돌릴 때'에 관해서 썰을 좀 풀어봐야겠네요.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에게 등을 돌리신 적이 있나요? 어떤 이유로 등을 돌리셨나요? 네. 살다 보면 한 두 번쯤 더 이상 상종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경우 다시는 안 볼 생각으로 등을 돌린다고 표현을 합니다.

강아지는 등을 돌리면 보호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행위라고 하던데요. '이 사람이 나를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와 같은 의미라네요. 우리가 사람을 배척하거나 관계를 끊는다는 의미로 쓰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죠. 아마도 사람은 마주 봐야 하는 사인데 한 사람이 등을 돌린 순간 관계가 단절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겠죠.

자. 그럼 우리는 어떤 때 등을 돌릴까요? 네. 딱히 대안이 없거나 감정상 끝까지 갔을 때가 아닐까 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의 이별도 마찬가지죠. 한 사람이 바뀐다고 어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감정이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꿰매거나 기워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이별의 단계가 되는 것 아닐까요?

예전에 방송인 이경규 씨가 한 말인데요. '자기 등 뒤에 업고 있는 짐을 함부로 내려놓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에서 1일 강사역을 할 때로 기억하는데요. 우리 인생길에서 생긴 짐을 함부로 놓았다가는 그 보람도 느낄 수 없고 계속에서 힘들면 버리는 삶이 고착화된다는 의미였습니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하하하.

또 광고장이였던 분이 책을 내면서 방송에 출연해서 한 말도 생각나는데요. '자신이라는 촛불을 완전하게 연소시켜 본 적이 있는가?'라는 주제였어요. 이경규 씨와 비슷한 말인데요.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열정이든 노력이든 불살라 본 사람되어보자는 내용이었죠.

우리가 어떤 일에 혹은 사람에 등을 돌릴 때는 바로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대충 사귀다 대충 끝나고 대충 하다 대충 그만두고 그럴 게 아니라 목숨 걸고 사랑하다 이별해서 죽을 만큼 아파보고 좋아하는 일에 미쳐도 보면서 그리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인생에서의 후회는 그걸 채우지 못하는 빈틈에서 발생하는 것일 테니까요. 여러분의 등을 상대에게 함부로 내어주지 맙시다.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 그래야 한다고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노래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보니 대충 어떤 노래가 인기가 있고 없는지 이제 감을 좀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기 위주로 노래를 선별하진 않을 생각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게 맞는데 중장기적으로 보면 언젠가는 한 번쯤 다뤄야 하는 노래들이라서 크게 상관이 없거든요. 그리고 의외로 새로운 아이디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제가 <가사실종사건>하면서 가장 염두하는 부분이 '확장성'과 '지속성' 이거든요. 좀 모르는 곡이나 관심이 떨어지는 곡이 있으시면 이번 기회에 접해보셔도 좋고 정 싫으시면 스킵하면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My Way를 갈 생각이라서요. 하하하. 편안한 밤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 (NO.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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