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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Jan 22. 2024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Feat. 별사랑)

작사 양인자 작곡 김희갑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임주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BIChKGR8 v1 M? si=ejLfIovQzlU7 zSOw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 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


-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가사 중-




임주리는 1979년 TBS 인기드라마 OST <야 곰례야>로 데뷔했습니다. 노래만 뜨고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죠. 1987년 오늘 소개해 드릴 <립스틱 짙게 바르고>가 담긴 새 앨범을 내놨는데 히트가 안 돼서 돌연 미국행을 선택합니다. 1993년 김혜자 주연의 MBC <엄마의 바다>에 OST곡에 실리면서 역주행을 하게 되었죠.

이 노래는 원래 허스키 보이스의 대명사였던 이은하 씨가 부를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노래의 작곡가인 김희갑 씨의 집에 놀라갔다가 우연히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노래 말고 '정말 좋겠네'라는 곡을 불렀는데, 가사 검열이 있던 시기라 뜨지 못하고 나중에 문주란 씨가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라는 곡으로 불러서 대히트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네요. 이론이론.

슬하에 자녀가 한 명 있는데요. 그분 역시 트로트 가수 경연 대회에서 얼굴을 비추었죠. <트롯 전국체전>과 <미스터트롯 2>에 출연한 재하 씨입니다.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꼭 어울릴 만큼 개성 있는 목소리를 소유한 분이더군요. 이 노래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될 만큼 많은 후배가수들이 커버를 많이 하곤 하죠.

오늘 이 노래는 별사랑 씨 버전으로 올려 드렸습니다. 제가 젊은 가수들 중에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한 분입니다. 언젠가 포텐이 한 번 터지지 않을까 하고요. 워낙 목소리가 깊숙해서 이 노래를 참 잘 소화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봤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지금까지 최고였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부터 짚어보죠. <립스틱 짙게 바르고>입니다. 여성을 상징하는 하이힐, 립스틱 이런 것들이 나오면 대부분 화자의 큰 심경 변화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나 에일리의 노래 중에 '또각또각 걸어가려 해' 같은 게 생각나네요.

이 노래 역시 립스틱은 하나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사랑하던 여인이 헤어진 상대를 잊기 위한 의식(ritual) 같은 행위로 그려지죠. 결연함이나 비장함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헤어지고 난 후 님을 잊지 못해 초췌한 모습의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행위로써 립스틱을 짙게 바르는 게 아닐까 합니다.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가 첫 가사입니다. 립스틱을 바르는 행위의 목적이 내일이 되면 님을 잊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라는 가사가 이어집니다. 사랑에 목을 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알았거나 아니면 그런 것이라고 간주해야 앞으로의 삶을 걸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 부분입니다. 나팔꽃의 이름이 'Morning Glory'라고 불리는데요. 오전에만 꽃을 피웠다가 반나절도 안 가서 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만큼 쏜살같이 빠른 시간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짧은 사랑에 대해 '속절없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단념할 수밖에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죠. 참 좋은 가사네요.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 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가 마지막 가사입니다. 마지막 선물이 뭐였을까요? 궁금해지네요. 여기서는 선물보다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더 중요한 듯한데요. 한 장의 남은 사진 같이 기억의 끝자락 마저 잘라내며 님을 잊겠다 정도로 해석이 되네요.

전체적으로 '잊힘'이라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려 하고 있죠. 그게 의지로 가능한지는 의문이네요. 오히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누군가를 잊어야 할 만큼 그 사람이 잊히기 어려운 존재라는 점을 더욱 부각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음. 오늘은 '화장'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엇비슷한 '가면'이야기로 썰을 좀 풀어볼까요. 우리는 크든 적든 모두 가면을 쓰고 삽니다. 본인의 진짜 모습을 100% 드러내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주변환경이나 시선 등을 의식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이고요. 그 습관이 몸에 배어서 혼자 있을 때조차 그 가면을 내려놓기 쉽지 않죠.

일명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 들어보셨죠.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던 가면을 말하는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Personality'라는 말이 되었죠. 배우들은 실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마스크를 쓰는 순간 맡은 역할의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을 연기하게 됩니다.

화장도 일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장을 안 할 때의 모습과 행동이 화장을 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지요. 남자들의 경우는 군복이 그런 경우입니다. 평상시에는 성품이 다르던 사람도 예비군 훈련 갈려고 군복을 입는 순간 완전 동네 양아치로 변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하니까요.

우린 살면서 한 가지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면을 비치해 놓고 때와 장소에 따라 특정 가면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죠. 팀원 앞의 팀장과 사장님과 함께 할 있을 때의 팀장은 다른 가면이 필요하고요. 회사에서의 가면과 배우자 혹은 부모로서의 가면은 또 다른 식일 겁니다.

그래서 페르소나를 언급할 때 두 가지 점에 주목해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다양한 환경에 맞게 가면을 능수 능란하게 벗고 쓸 수 있어야 하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가면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하지만 여러 가면을 쓰고 벗고를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에 두었는지 잊을 때가 많습니다. 또 가면놀이가 잘 안 돼서 정체성에 혼란을 이르키는 경우도 왕왕 생기고요.

공적 영역에서 사용하는 가면과 사적 영역에서 사용하는 성격이라는 두 가지가 한 몸에서 벌어지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을 하루에 짧게라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얽혀있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실타래를 풀어 헤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저에겐 '사적 영역을 지키고 싶은 자. 혼자 있는 고독의 무게를 즐겨라'는 말로 치환해 보고 싶네요. 여러분들의 가면놀이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 때 자신의 사적 영역과 가장 닮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나요? 그 어떤 '가면'보다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듯합니다.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MBC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 거 아시죠? 원래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가 반응이 괜찮아서 정규 편성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죠. 다양한 가면을 쓰고 출연자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면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대결하는 서바이벌 방식인데요. 출연자의 인지도나 비주얼 등에 신경 끄고 온전히 목소리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콘셉트인 점이 매력이죠. 눈에 보이는 현상 뒤에 감춰진 본질을 볼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덧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있던 가면마저도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도 편안한 밤 되시와요. See you. Coming Soon- (NO.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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