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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Feb 16. 2024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

작사 강은경 작곡 정시로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뱅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iwePzJLYBwE? si=gChNauvjzQU6 gX-l

며칠사이 야윈 널달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 까지도 하지 못한 말

혼자서 되뇌였었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진 못하잖아


- 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 가사 중 -




술에 취한 니 목소리

문득 내가 생각났다던 그 말


눈물 섞인 니 목소리

불연듯 내가 필요하다던 그 말


힘든 너에게

내가 힘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기며


슬픈 예감 가누면서

네게로 달려갔던 그 밤


희미한 두 눈으로

날 반기며 넌 말했지


헤어진 그를 위해선

남아있는 네 삶도

버릴 수 있다고


붉어진 두 눈으로

나를 보며 넌 물었지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픔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며칠 사이 얼굴이 많이 상한

그런 너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까지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그 말을
혼자서 되뇌었어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지 못하는

이런 나를 좀 봐 달라고





뱅크는 1995년 1집 <The Bank>로 데뷔했습니다. 프로젝트 그룹이었고요. 뱅크라는 활동명은 여러 장르의 음악을 다양하게 시도하겠다는 의미라는데, 제가 보기엔 '음원 은행'이라는 개념이 더 적합할 듯 보이네요. 메인 보컬인 정시로 씨를 비롯해서 임치후, 박영수, 박지훈, 안영범 씨까지 5인조였습니다. 특이하게도 정시로씨는 성균관대 철학과 출신입니다. 철학가가 음악을 잘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요? 하하하.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1집 앨범에 실린 타이틀 곡으로 너무도 유명하죠. 후배 가수들이 커버하다 지친 곡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정시로 씨는 대학가요제에 입상하면서 2장을 앨범을 발매했지만 고배를 마셨죠. 그래서 새로 각오를 다지기 위해 본명인 정일영에서 정시로 로 개명을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보다는 덜하지만 1996년 발매된 2집 앨범에 수록된 <널 인정하려 해>라는 곡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이 때는 멤버가 일부 변경되었지만 대중들이 메인 보컬만 기억하는지라 딱히 언급할 만한 사항은 아닌 듯하네요. 1996년 발매한 3집에는 <야회재백야>라는 곡이 있습니다.

정시로 씨는 1996년 지난번에 소개해 드렸던 푸른 하늘의 유영석 씨와 프로젝트 그룹인 화이트뱅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에는 솔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고요. 음악 활동하는 동안 대부분의 곡들은 정시로 씨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맡고 있습니다. 이번 노래는 그 유명한 강은경 작사가가 참여한 곡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참 예술입니다. 직접적이면서도 한 방에 딱 와닿죠. <가질 수 없는 너>입니다. 좀 철학적인 냄새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바로 '소유'라는 개념을 부각한 표현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그녀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술에 취한 니 목소리/ 문득 생각났다던 그 말' 부분입니다. 평소에 잘 안 하던 전화를 한 것도 깜놀인데 그 사람이 화자가 문득 생각났다고 하니 심장이 쿵 내려앉았겠죠.

'슬픈 예감 가누면서/ 네게로 달려갔던 날 그 밤'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단순히 화자가 보고 싶어서 부른 것은 아니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슬픈 예감이 밀려왔던 게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술에 취해 화자를 찾아 준 그녀의 의도가 너무도 알고 싶었기에 한 걸음에 그곳으로 달려가게 된 것이죠. 전 이 부분에서 가라앉히다는 의미로 쓰는 '가누면서'라는 표현이 참 좋네요.

'희미한 두 눈으로/ 날 반기며 넌 말했지/ 헤어진 그를 위해선/ 남아있는 니 삶도/ 버릴 수 있다고' 부분입니다. 2절 가사인 '붉어진 두 눈으로 나를 보며 넌 물었지/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픔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부분과 결을 같이 하고 있죠.

화자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일로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화자에게 떠난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걸겠다, 지금의 아픔조차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화자가 조금이라도 가졌던 마지막 희망마저 뿌리째 뽑히고 있는 것 같죠?


그리고 하이라이트 가사로 이어집니다. '며칠사이 야윈 널 달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지막까지도 하지 못한 말/ 혼자서 되뇌였었지/ 사랑한다는 마음으로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어/  나를 봐 이렇게 곁에 있어도/ 널 갖진 못하잖아' 부분입니다.

이별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다독이며 그 자리를 떠나온 화자. 자신이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화자. 곁에 있지만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선 것 같은 화자는 그래서 목 놓아 외칩니다. 이런 나를 제발 봐 달라고 말이죠.


음. 오늘은 '사랑과 소유'에 대한 썰을 좀 풀어볼게요. '니꺼 내꺼'라는 가사나 표현은 우리에게 익숙하죠? 우린 사랑을 소유와 동일시해서 보곤 합니다. 내가 소유한 사랑이니 다른 사람은 눈독 들이면 안 된다고 하고요. (으르렁 가사가 생각나네요) 반대로 누군가와 이별했을 때는 '버림받았다'라고 말합니다. 과연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사이인 줄 알겠는데 그렇다고 너는 내꺼고 나는 내꺼가 될 수 있냐 말이죠.

소유는 물건에 주로 쓰는 단어입니다. 원칙적으로 사람에 쓰면 안 되죠. 비유적 표현이라고 봐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갖는다''가질 수 없다'는 표현도 사람을 대상으로는 부적절하죠. 그런데도 우린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아챕니다. 너무 보편화되어서 그런 쓰임을 막을 수도 없게 되어 버렸죠.

그런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떠날 자유 혹은 이별할 자유까지 보장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요. 말인지 방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누군가 역시 나를 떠날 자유가 같은 무게로 있다는 말이죠. 이 저울질을 화자는 꽤나 못 하고 있는 듯합니다.

화자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을 알아줘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와 헤어지고 남은 빈자리에 화자를 앉혀야 하는 이유도 없죠. 어떤 것을 선택하던 그것은 누군가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화자는 목 놓아 외칩니다. 이제 나를 봐야 한다고요.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생각나는데요. 모든 만물은 늘 변화하니까 집착을 놓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만물이 변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집착을 놓지 못하는 욕심이 결국 무소유에서 '무'자를 떼고 소유라는 길로 우리를 몰아넣죠. 네. 변하는 모든 것을 잡으려고 하면 번뇌가 따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불변일가요? 아닙니다. 사랑 역시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에서 불변할 것이라고 호기를 부리는 객기 1번이죠. 그러니 우린 사랑하는 자리에서 무소유가 아니라 소유를 쉽게 선택하게 되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과 마음이 조금이라도 통하면 영원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우를 범하곤 하죠.

'너'라는 존재는 가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해서 극 중 화자는 번뇌 중입니다. 그녀의 사랑이 헤어짐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현장에서, 그 어떤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목도하고도, 자신만은 예외일 거라 항변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사랑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할 것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원래부터 사랑은 가질 수 없는 거라고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브런치 하면서 어제 처음으로 3,000원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대학생이라고 밝히시면서 많이 후원하지 못한 것을 겸연쩍어하셨죠. 제가 드려도 모자랄 판에 말이죠. 제 마음에는 3,000만 원 같았습니다. 이런 일이 내게도 라는 반응이 튀어나왔거든요. 기대를 1도 안 하고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제가 작성한 브런치가 누군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안 같은 걸 줄 수도 있는 거구나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되었네요. 쪼금의 책임감 같은 것도 들여다보게 되었고요. 댓글이나 후원이 살림살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천 원씩 서로 가짜 응원이라도 해야 할까 봐요. 하하하. 편안한 밤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D-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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