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신성우, 이근상, 이근형
https://youtu.be/38 Fnl1 gZutc? si=XBsml0 O_0 vO364 DM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네가
나를 볼 수 있게
저기 저 별 위에 그릴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 신성우의 <서시> 가사 중 -
우리의 작은 꿈이 가득 담긴
이곳을 등지며
이제 길을 나서네
그동안 참 많이도 다퉜어
오해도 많이 했지
하지만 우린 얼굴을 보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멋쩍은 웃음을 짓곤 했어
서로의 마음이 통하던
그 수많은 기억들
언제든지 힘들면
다시 돌아와도 돼
내가 여기
그대로 서 있을게
방향을 잃었을 때
하늘에 그려놓은
나의 마음이
너를 안내해 줄 거야
신성우는 1992년 1집 앨범 <내일을 향해>로 데뷔했죠. 워낙 조각 미남이어서 테리우스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비주얼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다재다능한 캐릭터죠. 음악으로 작사, 작곡, 편곡을 하는 건 뭐 그럴 수 있다 쳐도 뮤지컬 배우, 드라마 배우, 라디오 DJ, 연출가, 영화음악감독, 프로듀서, 교수 직함까지, 이 정도면 신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하하하. 그나마 약점을 꼽으라면 대마초와 결혼 실패가 눈에 띄는데요. 저라면 2개 받고 나머지를 다했으면 싶네요.(농담입니다^^)
데뷔하기 10년 전인 1982년부터 밴드를 시작해서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했고요. 1987년 <부활>의 보컬로 참여했다가 견해차이로 탈퇴를 했죠. 신성우 씨는 정통락을 원한 반면 김태원 씨는 락발라드를 고수했다고 하네요. 한번 이거하고 저거하고 하면 될 텐데 그땐 이런 거 가지고 자존심 싸움을 꽤 치열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원래는 밴드로 데뷔하려고 했는데 그 마저도 여의치가 않아 솔로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1집에는 <내일을 향해>의 후속곡인 <꿈이라는 건>이라는 노래도 있었습니다. 2집은 자신의 음악 색깔을 많이 태우는 바람에 크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건>이라는 노래는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1994년 3집에 실린 타이틀 곡으로 신성우 씨 곡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에 015B 장호일, 넥스트 이동규와 함께 프로젝트 밴드 '지니'를 결성해서 락 장르인 <뭐야 이건>과 <바른생활> 등을 발표하기도 했죠. 그 당시로는 굉장히 실험적인 곡이었더랬습니다. 저는 <뭐야 이건>이란 노래를 참 좋아했고 즐겨 불렀더랬죠. 하하하.
오래간만에 이렇게 이력과 관련해 쓸 게 많은 인물이라니. 정리하면 외모가 너무 출중해서 그것에 뭍힌 감이 있지만 신성우 씨는 찐 락커 정서를 누구보다도 강렬히 원했던 가수가 아닐까 싶네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서시'입니다. 까먹으래야 까먹을 수가 없죠? 윤동주 시인의 그 유명한 시의 제목과 같으니까요. 이별을 앞둔 친구와 나눈 우정을 노래한 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엔 그 친구가 왠지 동성 친구는 아닐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죠? 하하하.
'해가 지기 전에 가려 했지/ 너와 내가 있던 그 언덕 풍경 속에/ 아주 키 작은 그 마음으로/ 세상을 꿈꾸고 그리며 말했던 곳/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소중한 내 친구여'가 첫 가사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사 해석에 가장 난항을 겪었던 구간입니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의 주어가 누군지를 두고 말이죠. 친구라고 해야 맞겠죠? 그런데 본인이 헤어진 친구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특정 장소로 가고자 했다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거든요. 암튼 해석은 각자가 마음에 드는 방식대로 하심 될 듯요.
'때론 다투기도 많이 했지/ 서로 알 수 없는 오해의 조각들로/ 하지만 멋쩍은 미소 만으로/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 부분입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 같죠. 별 것 아닌 일로 오해하고 다투고 그냥 피식 웃으며 화해하고 뭐 그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네요.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내가 된다'라는 표현에서 저는 왠지 동성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요. 여자 동성은 더 어색하고 남자 동성 간에 쓰기에도 잘 어울리지 않는 표현 같았거든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네가 나를 볼 수 있게/ 저기 저 별 위에 그릴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부분이죠. 떠나는 친구 혹은 연인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죠. 그래서 힘들 때는 다시 화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라고 하고 하늘을 보면 화자의 사랑하는 마음을 볼 수 있다고도 합니다. 이 정도면 헤어진 친구가 단순 친구가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 사이였다고 봐야겠죠.
노래 자체는 락이지만 곡 전체적으로 서정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래입니다. 특히 '너는 네가 되고' 부분에서 '킁킁'하는 기타 소리가 저는 압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지점임을 암시하는 것 같거든요. 참고로 예전에 엠씨더맥스 1집에서도 이곡을 리메이크하기도 했었죠.
음.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윤동주 시인의 서시로 시작해 볼까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캬~ 명시란 말 밖엔 안 나오는군요.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서시는 책으로 치면 서문에 해당됩니다. 원래 이 시의 제목은 없습니다. 시집의 처음을 여는 시여서 '서시'라고 부르게 된 것이죠.
학창 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면 이 시는 현실과 조금이라도 타협하려는 마음을 부끄러움으로 여기며, 순수한 마음으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고 자꾸 화자를 흔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기억나시나요? 그런데 왠지 이 시와 오늘 소개해 드린 노래가 공통점을 지닌 것 같지 않나요? 특히 마지막 가사에 '저기 저 별 위에 그릴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부분 말이죠.
이 부분에서 별은 이 세상 사람 누구든 볼 수 있는 지고지순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서시의 가사에 등장하는 '별'도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걷다가 지칠 때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하는데요. 그 별에 화자가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려져 있다면서요. 윤동주의 서시에서도 바람이 별을 흔들지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하고 있죠. 싱크로율이 어마무시 하죠? 하하하.
우리가 추구하는 꿈이나 목표 이런 것들도 마음의 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세웠다고 해서 그게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죠. 그 꿈과 목표가 실현되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좌절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어떤 때는 회유하기도 하고 타협을 하자고 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 달콤함과 손을 잡으면 그만큼 우리의 꿈과 목표는 저만치 멀어집니다. 왜 책의 서문에 이런 류의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요? 제가 생각할 땐 무엇보다도 순수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신성우의 서시에서도 힘들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그곳, '아주 키 작은 마음으로 세상을 꿈꾸고 그리며 말하던 곳'에 화자가 서 있겠다고 하는데요. 어딘가로 나아가거나 여행을 가기 전 출발지. 그걸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정서에 대입하면 바로 '초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 한마디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최대한, 가급적, 가능하면 그런 삶을 지향하면 좋겠죠. 힘들 때마다 하늘의 별을 보는 이유가 그런 게 아닐까요?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기 위해서요. 부끄러움을 남기지 말겠다고 다짐하기 위해서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예전에 기타를 배울 때 이 노래의 앞부분을 열심히 쳤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하. 시, 음악, 미술 등은 제가 요즘 제 인생의 '별'로 정한 것들입니다. 다 어렵죠. 네 저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왠지 어려우니까 더 도전해 보고 싶은 욕구가 들끓기도 합니다. 예술 작품에 대한 저만의 해석을 갖는 것이 목표인데요. 오늘은 지인이 <칸딘스키>라는 작가를 알려주어서 참 좋았습니다. 음악의 첫 부분 혹은 미술의 한 부분만 보고도 누구 작품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참 좋겠어요. 하하하. 목표는 크게 가져 봅니다. 그럼 내일 만나요.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