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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Mar 21. 2024

테이크의 <나비무덤>

작사 최태규 작곡 J-Style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테이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szQy_cqJKt8? si=KH3 ac90 IL7 nQ0 bt7

나는 너를 못 봐도

난 너와 아직 있는데


매일 니 생각날 때면 이렇게

난 니 앞에 앉아있어


세월 흘러가면서

나 자꾸 지워지겠지


이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너를 잊는 나를 용서해


- 테이크의 <나비무덤> 가사 중 -




물을 수도

답변을 들을 수도

아무것도 할 수도 없는 너


그래도 마지막 기대를

쉽사리 놓지 못하고

너의 집 앞을 서성이지


눈물이 마르고

깊은 한 숨만 쏟으며

하루 종일 널 찾아 헤매


이제 너를 안아도

예전과 같은

따스함과 포근함은

느껴지지 않지


더 이상 볼 수 없어도

매일 니 생각으로

니 곁을 서성이는 나

히지만 돌이킬 순 없지


이젠 버티기 힘들어

자꾸 지워지는 너

이런 나를 용서해

추억이라 부를게




테이크는 2003년 정규 1집 <Baby Baby>로 데뷔했습니다. 신승희, 장성재, 이승현, 김도완, 이민혁이 멤버입니다. 데뷔 당시에는 5명이었다가 1집 활동이 끝나고 이민혁 씨가 탈퇴하면서 4인조로 개편되었습니다. 현재는 신승희와 장성제 둘만 남아 2인조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네요. 신승희 씨는 '복면가왕'에, 장성제 씨는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2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팀명 테이크는 '음악적 열정과 끼로 대중을 사로잡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고요. 원래 수록곡이자 타이틀 곡이었던 <Ring>이라는 노래는 HOT의 문희준 씨가 작곡했는데요. 당시 가요계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며 갈아엎었다고 하네요. 나얼 씨가 멤버들의 보컬 디렉팅과 멜로디 라인을 잡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2005년 발매한 미니 앨범의 타이틀 곡입니다. 제목이 굉장히 독특한데요. 원래 제목은 '무덤 앞에서'였다고 하네요. 죽은 여자친구를 그리는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가사 해석에서 말씀드리죠. 한 때 중국 진출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2006년 <Take it all>을 발표한 뒤 사실상 활동이 중단됐죠.

엄밀하게 말하면 아카펠라 형식을 선보이는 그룹입니다. 활동 기간이 워낙 짧았기도 하고 노출이 많이 않아서 잘 모르는 시는 분도 많은 걸라 생각되는데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2015년 그룹 비투비가, 그리고 작년에는 그룹 포맨이 리메이크해서 음원을 내놓으면서 10대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 노래는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여자 친구를 모티브로 합니다. 떠난 여자친구를 '나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첫 가사는 영어로 시작합니다. 'standing beside you as sleep/ wipe my tears as l close the door/ 불러도 대답이 없어요 제발 날 불러봐요' 부분입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자는 듯이 너의 옆에 서 있을게/ 문을 닫듯이 나의 눈물을 닦을게'죠. 당연히 한 번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리 없는 거겠죠.

'아무 말도 안 할 거란 걸 알아/ 그렇게 못할 것도 알아/ 하지만 너 무슨 말을 할까 봐/ 조용히 귀를 열고서/ 아직 너의 집을 서성거리죠/ 아마도 예전처럼 날 보며/ 웃을 니 생각에/ 자꾸 잊게 되어가는 나' 부분입니다.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은 어떤 반응도 없습니다. 그가 떠난 슬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자의 몫이죠.

그런데 이 부분 가사가 좀 이상합니다. 상대의 집을 서성이는 것은 아직 잊지 못하는 감정이 남아 있다는 의미인데, 상대가 자신을 보며 웃을 생각에 자꾸 잊힌다고 말하고 있어서입니다. 굳이 전개를 해 보자면 아직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죽었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게 된다로 해석해야 옳은 걸까요?

2절에서는 '내 눈물도 말라가겠죠/ 이젠 더 이상 흐르지도 않죠/ 하지만 더 깊어가는 숨소리/ 내 곁에 멈춰 잠들어 하루종일 너를 찾게 되는 걸/ 아마도 예전처럼 너 따듯하진 않겠지만/ 그건 나의 운명이니까' 부분입니다. 슬퍼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상대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생각의 온기로 상대를 끌어안아 보지만 예전과 같은 따스함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죠.

후렴구에서는 '너를 이렇게 안아봐도 난 아무 느낌 없어/ 이젠 너 없는 건지 왜 그걸 모르지/ 넌 이미 여기엔 없는데/ 하늘이 갈라놓은 너와의 이별을/ 돌릴 순 없어 나 잊힌 추억에 널 남겨둘게' 부분이 나옵니다. 상대의 부재를 확인하는 가사죠. 이젠 그 사실을 체념하며 상대를 추억하기로 합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나는 너를 못 봐도/ 난 너와 아직(항상) 있는데/ 매일 생각날 때면 이렇게/ 앞에 앉아 있어/ 세월 흘러가면서 나 자꾸 지워지겠지/ 이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너를 잊는 나를 용서해' 부분입니다. 죽은 사람을 다시 볼 방법은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함께 했던 마음까지 일순간에 정리가 되진 않습니다. 사진을 보던가 산소를 찾아가는 방법으로 상대의 곁을 서성이죠. 하지만 세월엔 장사가 따로 없습니다. 과거를 두 손에 움켜쥐고 사는 것도 못할 짓이죠.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 화자는 상대를 잊고 다시 삶의 발걸음을 재촉해 보는 것이 아닐까요?


음. 오늘은 '무덤'이라는 주제로 썰을 좀 풀어볼까요? 하다 하다 별 주제를 다 다뤄보네요. 하하하. 혹시 <파묘>라는 영화 보셨나요? 거의 관객수 1,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던데요. 이 영화 역시 무덤에 대한 이야기죠. 이 노래의 제목이 나비무덤인데, 아마도 무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제가 이야기할 주제는 엄밀히 말해 무덤 자체가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무덤은 죽은 자와 관련된 말이겠죠.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인문학을 공부하실 때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하는 단어가 바로 죽음입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 존재지만 언제 죽을지를 모르는 존재니까요.

제 첫 책 <지구복 착용법>의 첫 챕터의 소재가 바로 '죽음'이었던 이유입니다. 책을 보신 분들이 첫 장부터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신선했다고도 하시고 책장을 넘기기가 싫어지더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응당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 같은 죽음을 인문학의 서문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풍수지리를 따졌죠. 뒷 산으로 병풍을 삼고 앞으로 개울이 흐르면 살기 좋다고도 하고 묏자리를 쓰기에도 안성맞춤이다고 했습니다. 서구의 경우는 신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구조라 비교적 간단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은 신의 자리에 돌아가신 조상님을 놓는 풍토가 있었죠. 과연 하늘나라로 가신 조상님의 묏자리를 쓰고 제사를 지내면 후대가 복을 얻는 것일까요?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과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산 자'입니다. 이 '산 자'를 구분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뇌사자를 '산 자'로 보지만 외국에서는 '죽은 자'로 봅니다. 참고로 심정지가 되어야 우리나라에서는 '죽은 자'로 인정받죠. 이런 생물학적인 구분도 있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산 자'와 '죽은 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니야'라는 표현을 말이죠.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산 자'의 상상력으로 '죽은 자'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 뿐이죠. 어찌 보면 '산자 VS 죽은 자'는 순간을 표현한 말이고 '죽어가는 자 VS 죽은 자'가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우주공간에 어둠이 주고 빛이 인 것처럼 죽음이 메인이고 삶이 서브가 아닐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제가 인문학이나 철학을 주로 공부하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좀 더 담대해지기 위함입니다. 죽어가는 자가 그 반대편에 있는 삶만을 공부하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차기도 하고요. 우린 결국 기적에 가까운 확률로 원자 배열이 모였다가 죽음을 기점으로 다시 원자 배열이 깨지며 뿔뿔이 흩어지는 존재죠. 너무 허무하죠.

그래서 묘지를 잘 써야 한다거나, 조상님을 잘 모셔야 한다거나, 특정 종교를 믿어야 한다거나 등등의 이야기를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야 위안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가 사람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유명한 말을 떠올려 보자면요.

우리 주변에 어떤 사물이 있어도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사물은 죽어 있는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생물학적인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신적인 차원의 죽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죽어가는 자가 죽은 자를 향하는 시선이 너무 삭막하고 거친 세상이 되어선 곤란하겠죠. 이 노래의 화자는 그 점에선 좀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무덤을 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마음 나아가 무관심의 영역에 놓여있는 것을 파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그동안 난다 긴다 하는 철학자나 인문학자들이 한 번쯤은 꼭 다루고 넘어가는 주제가 바로 '산 자 VS 죽은 자'였죠. '아침에 눈을 뜨면 죽음을 생각해라'라는 말처럼 여러분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시나요? 저는 무척 자주 떠올려 보는 편인데요. 죽음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최고의 가르침이 아닐까 합니다.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럼 내일 만나요.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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