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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May 15. 2024

김현정의 <멍>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현정'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N7 VBSaZ-jKQ? si=nPPGjD40 ck9 gPruw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


바랄게

다음번에 너 누굴 사랑한다면

너 같은 사람 꼭 만나기를


- 김현정의 <멍> 가사 중 -




13579

띄엄띄엄 본 거야

사랑을 제대로 알긴 한 거야


올 때도 니 맘대로 오더니

갈 때도 니 맘대로 간다고

이건 아니지


이제 알겠네

내 잘못이었네


넌 사랑 그딴 거 모르고

네 위주로만 생각한 거네

네 뜻에 따라 행동하는

장난감이 필요했던 거고


근데 난 그걸 덥석 믿었네

그 말장난에 놀아났네

날 기만한 것도 모자라

주변사람이랑 비교나 당하고


다 돌려놔

널 만나기 전 그 상태로

추억으로 덮고 가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


꼭 바랄게

너도 너랑 똑같은 사람 만나

내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껴봐




김현정은 <그녀와의 이별>이라는 노래로 1997년 데뷔했습니다. 2000년대를 수놓은 시원한 가창력의 소유자죠. 1세대 아이돌과의 경쟁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레전드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여자 솔로 가수 중 가장 많은 음반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다네요.

데뷔전 고등학교 시절 헤비메탈 밴드부에서 베이스 기타와 기타를 담당한 경력이 있습니다. 졸업 후에도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했고요. 그러다 1995년 연예기획사에서 개최하는 오디션에 합격한 후 2년간의 연습 기간을 거쳐 1집을 내놨죠. 하지만 소속사 사정으로 이후 활동이 원활치 않았습니다. 1년 6개월이 지나고 나서 길거리에서 그녀의 노래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며 역주행을 했죠.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3집에 실린 타이틀곡이죠. 김현정 풍의 노래에 정점을 찍은 곡입니다. '다 돌려놔'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죠. 저도 몰랐는데 '에이미 킴'이라는 예명으로 대만과 홍콩 음반 시장 공략에 나서 일본가수에 이어 아시아권 가수로는 두 번째로 타임지 아시아판을 장식했다고 하네요. 왜 몰랐지? 하하하.

2007년 청바지 브랜드를 론칭하며 사업가로 변신도 하고, 2010년에는 애견용품 브랜드 사업도 하며 한 눈을 팔다가 2011년 다시 본업인 가수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뮤지컬과 연기자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롱다리 가수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죠. 실제 키는 174cm라네요. 샤넬 패션쇼 메인 모델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전성기 시절 춤까지 춰가며 노래를 생으로 소화할 정도로 엄청난 가창력을 가진 그녀였습니다. 한 마디로 라이브를 잘하는 가수였죠. 목을 막 쓴 탓에 성대결절로 고생하면서 판소리를 배우고 꾸준하게 보컬코칭을 받고 있다고 하네요. 남다른 성량을 그녀의 노래를 <가사실종사건> 아카이브에서 빠뜨리면 안 되겠죠?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심상치 않습니다. '멍'이죠. 사랑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뜻하는데요. 이 노래는 고분고분 그 상처를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여자가 울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연상될 만큼 자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가사입니다. 여자분들 입장에서는 다소 대리만족이 느껴지기도 할 거란 생각입니다.

'너 나를 쉽게 봤어 그렇지 않니/ 너는 몰라 너무 몰라 사랑을/ 안돼 니 맘대로 나를 떠날 수 없어/ 끝낸다면 내가 끝내 기억해'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상대를 향해 따집니다. 날 쉽게 본 게 아니냐고요.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상대가 화자에게 이별을 통보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화자는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이별의 주도권이 상대에게 있는 것을 영 탐탐치가 않아하죠.

'잘못이었어 너를 만난 건/ 너는 사랑 따윈 관심도 없던 거야/ 다만 넌 니 뜻대로 모두 맞춰줄/ 너 하나 밖에 모르는 내가 필요했을 뿐' 부분입니다. 어떤 만남의 결론이 맺어지는 이별 상황에서는 그 만남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지곤 하죠. 화자는 이 만남을 한 마디로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동안 상대의 모습은 이기주의자의 전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한 게 아니라 마치 자신에게 맞춰주는 그럴싸한 대상이 필요했다고 말하고 있죠. 상당히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죠?

2절에서는 '잘못이었어 너를 믿은 건/ 우린 하나라던 그건 다 말 뿐이야/ 여러 번 나를 속인 것도 모자라/ 니 주변의 사람들과 나를 비교했었지' 부분이 나오는데요. 알량한 말로 사랑하는 척 연기를 했던 상대였나 봅니다. 화자 입장에서 더 분한 건 비교까지 당했다는 사실이네요. 이 정도면 정말 쓰레기 아닙니까. 하하하. 처음엔 너무 센 거 아닌가 싶었는데 화자가 이리도 들고 날뛰는 이유에 수긍이 가네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 바랄게/ 다음번에 너 누굴 사랑한다면/ 너 같은 사람 꼭 만나기를' 부분입니다. 한 마디로 없던 일이 되길 바라는 거죠. 상대를 만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추억 운운하기엔 너무 비참한 심정인 것이죠. 이런 감정을 '다 돌려놔'라는 가사에 담았네요. 그리고 저주를 퍼붓죠. 상대도 자신과 똑같은 상황을 겪어보라고요. 그럼 화자의 심장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면서요.

신체적 상처로 생긴 멍은 시간이 흐르면 회복이 되지만 정신적 상처로 생긴 마음의 멍은 쉽게 지워질 리 없습니다. 때론 평생을 가기도 하죠. 멍은 맺힌 응어리가 풀리면서 검은색에서 살색으로 변화하는데 마음의 멍은 좀처럼 풀리지가 않으면서 배신감, 복수심 등으로 똘똘 뭉치는 상황을 노래로 표현한 듯하네요.


음. 오늘은 '너 하나밖에 모르는'이라는 가사에 대해서 썰을 좀 풀어볼까요. 이 가사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이기심'이겠죠. 우린 누구나 많든 적든 어느 정도의 이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마음 말이죠. 이기심은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쁨이 없는 중의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기심이라고 말할 때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으로 여겨 좋지 않은 의미로 주로 쓰죠. '넌 너무 이기적이야' 이렇게요.

이렇게 생각을 해 보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대부분이 그렇죠. 이 사람은 이기적인 건가요? 아니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왜냐고요? 주변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으로 생산된 상품을 소비할 수도 있고 자동차라도 운행했다면 그만큼 자연환경에 피해를 주는 셈이 될 테니까요.

이처럼 우린 부지불식간에 이기적인 살고 있는데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이기심과 맞닿아 있는 것이죠. 그걸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 따라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격입니다. 좀 더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하거나 동물들을 키우면 좋겠지만 비싸지니까 당장의 효율성을 따져 그 제품에는 손을 뻗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래서 지구의 온도는 매년 임계점을 향해 올라가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는 기후 위기 시나리오 따위가 그런 점을 잘 보여주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이기심 위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이기심이 자식의 생존을 보장하듯이요. 내일 아침에 빵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돈이 있어서가 아니라 빵가게 주인의 돈을 벌고 싶은 탐욕 때문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기심 위에서 이기심을 깃발을 꽂고 또 꽂고 그렇게 진행되어 온 역사라면 과연 지금 이 자리까지 우리가 제대로 올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기심 위에서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이타심을 냈기 때문에 이기심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꿔 온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늘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성찰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꿈꾸는 과정에서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 되는데, 그 지향점은 늘 행동이고 실천이라는 단어와 만나거든요. 앎만 추구해서는 오히려 알지 못하는 것보다도 못한 상태가 되기도 하니까요.

우리가 이 기적 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타심'으로 나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불교에서도 내가 깨닫는 것은 '소승'이고 내 깨달음을 주변에 전파하는 것이 '대승'이라 말하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세워야 거기서 '타인을 사랑하는 시도'를 해 볼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거겠죠?

나만 생각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 즉 이타심이 발동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기심의 영역에 머물러 있으면 본의 아니게 '나를 생각하는 사람'에서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한 상태의 이기심이 아니라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는 이타심의 영역으로 나아가길 꿈꿔야 하죠.

하물며 이타심의 끝판왕을 자청하는 사랑의 영역에서 보여주는 이기심은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나 자신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 상대에게 주어도 아깝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자신에게만 이로운 행동을 한다면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사랑을 우리가 지닌 이기심 위에서 이타심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역동적인 무대'라고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와우. 어렵네요. 오래간만에 가장 어렵게 브런치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의도하는 바가 브런처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는지 하는 우려가 들 정도입니다. 하하하. 여러분들은 이기적인 편이신가요? 제 주변에 보면 너무 타인을 배려하느냐고 정녕 본인은 잘 못 챙기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이라면 지금보다는 좀 더 이기적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계속 그 길로 가다가는 이 노래 가사처럼 추억으로도 삼을 수 없는 인생의 '멍'이 남을 같아서요. 부디. 하하하.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시와요. See you. Coming Soon-(NO.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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