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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VAYA Apr 30. 2024

듀스의 <나를 돌아봐>

작사/작곡 이현도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듀스(DEUX)'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t0 YUJf1 mAw8? si=IH6 gHV9 JRcsSuKGW

언제나 슬픔에 벽속에 나는

둘러싸여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대는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는걸


나를 돌아봐 그대 나를

너의 맘속엔 내가 없지만

나를 돌아봐 나는 지금

널 그리며 서있어


-듀스의 <나를 돌아봐> 가사 중 -





네 마음을 얻지 못한

의미 없는 하루의 반복


깊은 슬픔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대와의 거리는

자꾸만 멀어져만 가고


내가 없는

너의 마음 알지만

널 그리며

그 곁을 떠나지 못해


슬퍼하는 나를

기다림에 날을

외면하고 멀어지는 너


그런 너만을 바라보는

그런 너만을 사랑하는

나를 지나치지 마

나를 돌아봐줘




듀스는 2인조 남성 힙합 그룹으로 1993년 데뷔했습니다. 이현도와 김성재가 멤버입니다. 철이와 미애의 멤버였던 미애 씨가 합류하려다 고사했다는 후설이 있습니다. '현진영과 와와'의 백댄서 출신으로 가수로 데뷔한 경우죠. 참고로 와와 1기는 구준엽과 강원래였고요. 이현도와 김성재는 2기라고 하네요. 두 사람은 고교동창이자 절친 사이였다고 하고요. 활동명은 아는 지인이 프랑스어로 둘을 뜻하는 단어 'DEUX'를 영어식 발음(듀스)라고 발음하면서 정해졌다고 하네요.

당시 흑인음악을 한다는 콘셉트를 내세우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활동기간이 2년이 약간 넘는 수준으로 굉장히 짧지만 그들이 보여준 임팩트는 강렬했습니다. 그 사이 정규음반만 4개(1,2,2.5,3집)를 발매했고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를 포함해서 <우리는><여름 안에서> 등 히트곡도 적지 않습니다.

듀스의 음악적 가치는 무엇보다도 랩으로만 구성된 노래를 발표해 성공했다는 점이죠. 곡 초반 나오는 강력한 컴퓨터 사운드는 듀스만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속사와의 갈등 이후 두 사람은 각각 개별 활동을 했는데요. 그러다 김성재 씨가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작별을 고하고 말았죠. 안타깝습니다.

이현도 씨 관련한 영상을 보다 보니까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상황에서도 한음 한음 건반을 누르며 음악을 완성해 간 열정이 눈에 띄더군요. 그 열정이 프로듀서로 그리고 음원 부자로 그를 만들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후배가수들이 그들의 노래를 커버하고 있을 정도죠.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그들의 존재를 대중에 알린 1집 타이틀곡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나를 돌아봐'입니다. 나를 향해 돌아봐 혹은 나를 바라봐 정도가 표준어에 가깝지만 얼마나 마음이 급했던지 중간 과정 다 생략하고 '나를 돌아봐'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해결을 붙여 봅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날들/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순간순간이 나에겐 힘들어/ (왜 언제나 너는 내 맘 속에) 난 벗어나고 싶어'가 첫 가사입니다.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는 상대방으로 인해 사는 의미를 잃어버린 모습이죠. 당연히 이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슬픔의 벽 속에 나는/ 둘러싸여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대는/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는걸/ 나를 돌아봐 그대 나를/ 너의 맘속엔 내가 없지만/ 나를 돌아봐 나는 지금/ 널 그리며 서 있어' 부분입니다. 가만히 그 자리에서 서 있기만 해도 다가가기 어려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멀어져 가는 상대,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슬픔은 더해 갑니다. 상대가 쉽사리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지 않는다는 것을 화자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마음이 없죠. 그래서 외칩니다. '나를 돌아봐 그대'라고요.

이 노래는 랩 가사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는데요. 두 파트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대는 나를 슬퍼하는 나를 기다림에 날을/ 계속하고만 있는 나를 WHY 왜 자꾸만 외면하고/ 멀어져 가는 거야 (그대 나에게)/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그대는 가슴을 닫아 두고 보면 외면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넌 알 수 있을 거야 그때 너의 마음' 부분입니다. 첫 번째 파트는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상대에 대한 속사포 랩으로 들리죠.

두 번째 파트는 '그대는 나를 가슴 아파하는 나를 난 너! 너만을 얻고 싶어!/ 이런 나를 정말로 정말로 이대로 지나칠 수밖에 없는지/ 정말 난 그대와 정말 사랑할 수 없는지 나를 돌아봐줘' 부분입니다. 화자가 원하는 본심을 드러내고 있죠. 왜 자신은 안 되는 건지 따져 물으며 자신을 바라봐달라고 애원하고 있죠.


음. 오늘은 딱히 쓸 내용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하하. 쥐어짜 보죠. '외면'에 대해서 썰을 풀어보면 어떨까요? 한 번도 안 다룬 것 같은데요. 오래간만에 사전 찬스를 한 번 써보죠. 1) 마주치기를 꺼리어 피하거나 얼굴을 돌리다 2) 어떤 사상이나 이론, 현실, 사실, 진리 따위를 인정하지 않고 도외시하다라고 나와 있네요.

이 노래에서 나오는 외면은 전자겠죠. 그럼 저는 후자에 대해 말씀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위주로 보는 습성이 있죠. 사건 현장 속 많은 정보들이 존재하지만 거기서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사건을 구성합니다. 취사선택에서 탈락한 부분은 외면하고 말이죠.
흔히들 외면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관심을 끈다는 의미와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걸 등한시했다 정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정작 중요한 문제를 풀 생각은 안 하고 허튼짓을 하고 있을 때 외면한다고 말하죠. 어려운 문제,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 등이 출연할 때 많은 사람들이 외면의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내재화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 겉핧기만 하고 있는 형국이랄까요. 우린 왜 이런 외면의 태도를 취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나와 관계가 없는 일이라거나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쉽사리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아무리 다른 사람이 추파를 던져도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니면 미동도 하지 않는 상황이 되는 것과 같죠. 네. 마음 문제이고 태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외면하는 스킬이 신장되면 마음은 편할 겁니다. 이거 저거 생각 안 하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만 탐독하면 즐거움이 배가 되겠죠. 하지만 우리 인생이 그런 상황을 고분고분 지켜보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신의 관심 분야가 한 곳에 치우는 사람에게는 응당 위기라는 것을 만들어주곤 하죠.

얼마 전 홍세화 씨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요. 장발장은행장도 하셨죠. 젊은 시절 국가보안법에 엵여서 프랑스로 망명을 하셨다고 하죠. 그분 책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강조하는 말이 '똘레랑스' 우리말로 '관용'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의 시위로 지하철 타기가 어려워진 것보다 먼저 그들의 시위가 정당한지를 따져 물어보라는 의미죠. 본인이나 본인 가족 등이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네. 외면은 '나는 아닐 거야 혹은 나만 아니면 돼' 정도의 이기심이 근간에 자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개인의 문제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의 문제로 확장시킬 수 있는 상상력의 부재 속에서 싹트는 것일 테니까요.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초첨을 맞추는데 반해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까지 이 사회가 방관했다는 공동책임을 강조한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보고 싶은 곳만을 보며 사는 삶은 개인의 삶으로는 최고인데, 공동체의 삶으로서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한 개인이 사회라는 틀 안에 있는 이상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전공 분야 말고도 다양한 영역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온전한 인생이 될 테니까요.

이 노래에서 외면받는 화자는 슬픔의 벽 속에 갇혀 통곡하고 있습니다. 물론 상대가 늦게라도 그걸 알아보고 손을 뻗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주변의 친구들이라도 나서야 하는 거겠죠. 우리 사회에 외면받는 소수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파업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우 등 말이죠. 그들에게 지금보다 조금만 더 관심의 시선을 보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제가 학교 다닐 때 거의 20개가 넘는 과목을 배운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고요. 그때는 이 많은 걸 배워서 어디에서 쓰나 이런 생각을 했더랬죠. 솔직히 지금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지내보니 사는 데는 경제도, 역사도, 정치도, 문화도, 세계 지리도, 한국 지리도, 음악도, 미술도 어느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게 없더라고요. 다른 것은 다 외면해도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공부는 절대 외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네요. 하하하. 외면하지 말고 대면대면이라도 합시다.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셔요. See you. Coming Soon-(NO.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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