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은 1996년 데뷔했습니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했고요. 싱어송 라이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데뷔 때부터 전곡을 프로듀성해 왔죠. 이런 가수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1999년 캔커피 레쓰비 광고에 실린 '첫사랑'이라는 곡이 유명하죠. ‘햇살처럼 눈부시게 다가와 나를 깨우던 그대는~'으로 시작하는 노래 기억나시나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2003년 발매한 4집 앨범의 타이틀 곡입니다. 곡 자체가 워낙 좋아서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하는 곡입니다.
이 노래가 나오고 반응이 폭발적이었지만 그녀는 온몸에 멍이 드는 희귀병인 혈액염 진단을 받고 활동을 도중에 중단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1년 만에 건강을 회복하고 2006년 5집 '사랑의 향기는 설레임을 타고 온다'를 발표하죠. 그리고 2008년 디지털 싱글 발표 후 몸이 다시 안 좋아지면서 음악활동이 멈췄습니다.
다행히도 10년만인2018년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2019년 싱글 <청춘>을 발표한 것이 마지막 공식 활동으로 보이는데요. 건강은 괜찮으신지 궁금하네요. 히트한 노래들은 부드러운 곡들이지만 그녀는 록을 기반으로 재즈, 펑크, 뉴웨이브 등 다양한 장르를 믹스하는 음악적인 시도를 해 왔습니다.
끊이지 않는 병과의 사투를 이겨내며 곡 작업을 해내는 모습에서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 유서를 쓴 후 명작을 남긴 사례를 떠올려 봅니다. 그의 음악 인생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날개를 달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떠나 보실까요. 제목이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입니다. 봄비는 좋은 의미로, 겨울비는 슬픈 의미를 나타내는 것 같죠? 화자가 생각하는 계절에 담긴 비의 모습일 텐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가사 속에서 찾아보시죠.
'묻지 않을게 네가 떠나는 이유/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야윈 너의 맘 어디에도/ 내 사랑 머물 수 없음을 알기에'가 첫 가사입니다. '체념'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떠나는 사람을 잡으려는 의사도 없고요.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길 기대하는 마음도 느껴지지 않네요. 그런 상대의 마음을 야위었다고 표현한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이해해 볼게 혼자 남겨진 이유/ 이젠 나의 눈물 닦아줄 너는 없기에/ 지금 나의 곁에 있는 건/ 그림자뿐임을 난 알기에' 부분입니다. 이별의 원인을 상대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는 듯해 보입니다. 이제 홀로 서야 하는 화자의 입장을 '곁에 실체는 없고 그림자만 남았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2절을 볼까요. '기도해 볼게 니가 잊혀지기를/ 슬픈 사랑이 다신 내게 오지 않기를/ 세월 가는 데로 그대로/ 무뎌진 가슴만 남아있기를' 부분입니다. 화자는 지금의 상처가 먼 훗날 잘 아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슬픈 사랑을 하고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피력하고요.
'왜 행복한 순간도 사랑의 고백도/ 날 설레게 한 그 향기도/ 왜 머물 순 없는지 떠나야 하는지/ 무너져야만 하는지' 부분입니다. 끝내 이어지지 못한 지난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전해지는 가사인데요. 사랑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어디론가 흐르는 것 그리고 좌초되는 속성을 언급하고 있네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이제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이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부분입니다.
가사가 참 아름답죠? 봄비나 겨울비 모두 화자를 적시는 것은 똑같으나 그 의미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봄비는 사랑을 뜻하고 추억으로 이어지는데 반해 겨울비는 이별을 뜻하고 상처로 기억되죠. 마음을 적셨던 촉촉한 비가 두 눈을 적시는 비가 되는 전개도 참 좋네요. 이별을 알리는 한 마디 말로 잊음과 떠남이 각각 제시됩니다. 그리고 이젠 상대가 '나와 상관없는 꿈을 꾸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네요.
음. 오늘은 '계절별로 내리는 비'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요. 비와 관련된 노래가 적지 않습니다. 박중훈의 <비와 당신>,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 김현철의 <비처럼 음악처럼> 등 이후 셀 수 없이 많죠. 보통 명사인 비를 언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노래처럼 계절별로 내리는 비를 언급한 경우도 있습니다. 김종서의 <겨울비> 노래가 대표적이죠.
보통명사 비에 계절을 더하면 그 뜻이 사뭇 다르게 변하죠. 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 여러분들은 계절별로 내리는 비를 보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봄비는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읽힙니다. 파종을 하는 농사에서 봄에 내리는 비는 단비에 해당되죠. 봄은 움츠렸던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시기라서 출발이라는 의미가 제일 먼저 언급되고요. 아마 이 노래에서 '사랑이 봄비처럼'가사는 사랑의 시작한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봄처녀 같은 단어와도 궤를 같이 하고요.
여름비를 볼까요. 여름에 내리는 비로 '장마'가 가장 먼저 생각나지 않나요? 언제 그칠지 모르고 하염없이 내리는 장마는 다소 부정적으로 언급되죠. 정인의 <장마>라는 곡도 있는데요. 장맛비는 멈추지 않는 눈물이 나 끝없는 기다림 등을 비유됩니다. 굳이 긍정적인 의미를 찾자면 후덥지근한 여름의 온도를 잠시나마도 낮춰주는 시원한 이미지를 들 수 있겠네요. 샘김의 <여름비>라는 제목의 곡이 검색되네요.
가을비를 볼까요. 요즘 가을비가 계속 내리고 있죠.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가을비가 내린 후에는 기온이 뚝뚝 떨어진다고 하는데요. 가을비는 쓸데없는 비라는 의미를 가진 '객수'라고도 한다네요.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가을철에 내리는 비라서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불명예를 지니게 된 것 같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가을 하면 가장 잘 떠오르는 것이 낙엽이죠. 낙엽이 떨어진 상황에서 비가 오면 좀처럼 쓸려나가지 않고 땅과 하나가 되어 난처함을 선사하죠. 낙엽을 상대에게 던지며 '가, 가란 말이야'라고 말했던 CF의 한 장면도 가을과 연관이 있죠. 글을 적다 보니 여름비보다 홀대받는 가을비가 아닌가 싶네요.
마지막으로 겨울비를 보죠. 겨울에 비가 내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눈이 와야 하는 상황에서 기온이 충분히 내리지 못해 비가 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일까요? 겨울비는 비보다 계절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가진 쓸쓸함, 앙상함, 을씨년스러움 뭐 이런 이미지들을 대거 불러들이죠. 감정적으로도 슬픔이나 아픔을 드러내고요. 봄-가을, 여름-겨울로 짝이 맺어져야 하는데 뒤에 비라는 단어가 붙으면 이 노래처럼 봄비-겨울비만 성립하고 여름비-가을비는 성립하지 않네요.
똑같은 비가 계절과 만나 의미의 변주를 꾀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같은 행위라도 어떤 계절에 하느냐에 따라 품은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봄의 산책은 꽃을 보기 위함이고 여름의 산책은 해가 떨어진 늦은 저녁 시원한 밤바람을 쐬기 위함이죠. 가을 산책은 낙엽을 밟으며 사색에 잠기기 좋고요. 겨울 산책은 딱히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오래간만에 따뜻한 날씨여서 하는 일광욕 정도라고 볼 수 있죠.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는 별 차이를 못 느끼지만 계절의 변화는 누구나 쉽게 느끼죠. 계절이 변한 만큼 거기에 담는 것이 똑같아도 다른 의미가 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4계절을 만나봐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일한 사람이지만 계절에 따라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이죠.
유독 더위를 싫어하시는 분도 있고 추위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계절별로 호불호가 있죠. 여러분들은 어떤 계절을 선호하시나요? 전 추위가 더위보다 나아과 입니다. 하하하. 살면서 똑같은 행위를 하지만 계절이라는 시점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개인적으로 겨울은 따뜻한 방 안에서 집필하기 좋은 시즌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들에게 지금 가을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번 겨울에는 어떤 의미를 담아보실 생각인가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지금 식탁에 앉아 한 눈으로는 코리안시리즈를 보고 중간중간 짬이 날 때 브런치를 하고 있습니다. 제게 가을은 '야구의 계절'이고, 가을비는 야구의 계절을 방해하는 원흉 정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올해 가을은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겨울로 직행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움이 남네요.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짧디 짧은 가을의 묘미를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