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투는 4인조 혼성 4인조 그룹으로 1994년 데뷔했습니다.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 황혜영이 멤버죠. 데뷔 당시 그룹 멤버들의 나이가 22살로 같아서 이렇게 팀명을 짓게 되었다고 하네요. 처음엔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 씨로 3인조 남성 밴드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1집 음반 녹음에 참여했음에도 아버지의 반대로 이윤정 씨가 방송활동을 할 수 없게 돼서 객원 멤버로 황혜영 씨가 합류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1집에는 황혜영 씨 목소리가 없고 재킷에도 빠져 있죠. 투입 전에 모든 게 세팅되었던 까닭입니다. 인기를 얻은 후에 재판을 찍을 때부터 황혜영 씨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곡인데요. 이 곡도 처음에는 앞면과 뒷면 수록곡 수를 채우기 위해 꼽사리로 들어갔던 곡인데, 당시 소속사 사장이었던 양승국 씨가 타이틀 곡으로 이곡을 밀면서 마침내 일을 내게 되죠. 안무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에어로빅 연습실을 빌렸다는 후문입니다.
투투의 멤버 중 보컬은 맡은 오지훈 씨는 작사, 작곡, 편곡과 프로듀싱까지 일인 다역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죠. 이 노래 역시 그가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발표하고 나서 가장 인기를 끈 인물은 황혜영 씨였죠. 그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던 인물은 보컬을 맡은 김지훈 씨였는데 <그대 눈물까지도>를 불렀죠. 보이지 않게 팀을 가꾸었던 오지훈 씨는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참 괜찮은 그룹이었는데 활동 기간이 너무 짧았죠. 유현재 씨가 입대하면서 그룹 해체가 결정되었다고 하고요. 남은 멤버들도 아쉬웠던지 1995년 여름부터 김지훈 씨와 황혜영 씨 그리고 새로운 멤버 두 명을 영입하여 2기 활동을 펼쳤지만 1기 활동을 뛰어넘진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게 팀을 가꾸었던 오지훈 씨가 빠진 탓이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일과 이분의 일'입니다. 1.5인분이죠. 화자가 이별을 했지만 자신의 반쪽 마음이 아직도 상대에게 남아 있는 상황이 숫자로 재미있게 푼 노래입니다. 화자 자신을 0.5라고 한다면 1은 상대방을 뜻하는 걸까요? 이 노래는 가사를 살펴보면서 1.5라는 숫자를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멀리서 널 보았을 때/ 다른 길로 갈까 생각했는데/ 변한 듯한 널 보고 싶고/ 짧은 인사 할까 하는 마음에'가 첫 가사입니다. 헤어졌던 사람과 우연히 마주하는 순간이 그려지죠. 잠깐 갈등을 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할까 아니면 그냥 지나칠까 하고요. 여러분이라면 어찌하시렵니까?
'두근대는 가슴으로 한 걸음씩 갈 때/ 네 어깨 손 올리는 다른 어떤 사람/ 화가 난 네 얼굴은 미소로 바뀌고/ 두 사람은 내 옆을 지나갔지' 부분입니다. 화자는 오래간만에 만난 상대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쾅쿵쾅 거리며 긴장이 되는 상황이죠. 그런데 아뿔싸. 상대는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죠. 사귀는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상대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지만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 상황을 벗어나게 됩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둘이 되어버린/ 날 잊은 것 같은 너의 모습에/ 하나일 때보다 난 외롭고 허전해/ 니가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그래서 넌 둘이 될 수 있었던 거야' 부분입니다. 화자는 1->0.5가 되어서 1보다도 못한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상대는 가져온 0.5에 자신이라는 1을 더하면 1.5가 되어야 하는데요. 둘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서로가 하나였다가 0.5씩이 되어서 화자 0.5+상대 0.5+상대가 사귀는 사람 1 이렇게 둘이 되었다는 것일까요? 하하하. 생각할수록 이상한 셈법이네요.
음. 오늘은 숫자를 계산하는 '셈법'이라는 것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요? 수를 사랑한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생각나는데요. 직각 삼각형에서 두 변의 제곱을 더하면 긴 변의 제곱이 되다는 피타고라스 법칙 말이죠. 지금은 1~10까지 세는 십진법을 당연히 여기지만 마야 문명에서는 20진법, 바빌로니아 문명에서는 60진법을 썼다고 하는데요. 신기방통하네요.
숫자는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과학에서 이 수의 활용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죠. 디지털 시대를 뜻하는 지금의 시대는 '0'과 '1'이라는 두 숫자의 조합이면 세상 모든 것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가 AI라는 이름으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 수치화하는 것은 문제를 선명화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A를 했을 때 100점이고 B를 했을 때 90점이면 당연히 A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겨지기 때문이죠. 물론 우리 인생이 그렇게 숫자 하나로 모든 걸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자본주의가 세계를 짚어 삼키는 요즘은 이 숫자란 놈의 위력은 예전보다 훨씬 커진 듯합니다. 이제 만질 수도 없는 디지털 숫자로 전환되어서 바다도 건너고 하늘도 날고 어디든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게 되었죠. 자신이 가진 재산이 0보다 작은 숫자가 되면 창과 칼도 아닌 숫자에 우리 삶은 위협을 느끼기도 합니다.
인간이 원활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발명한 숫자가 어느새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처럼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소외'라는 개념이죠. 이미 세상은 돈으로 전복되어서 인간이 차지해야 할 그 자리를 돈이 떡 하니 앉아서 주인 행세를 해대고 있습니다. 딱한 노릇이죠.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기이한 현상을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더 괘씸한 건 모든 것들에 가격표를 매기는 것입니다. 결혼에 실패한 정신적 고통은 10억 원을 잃는 것과 같다던가, 운동을 하면 노후에 발생하는 치료비 성격으로 35억 원을 버는 것이라던가, 사회적 관계를 잘 구축하는 것은 없는 것에 비해 얼마쯤 이득을 보고 있는 상황이라든가요. 도대체 사람의 이마에 가격표를 붙여야만 끝나는 게임이 되려나요.
이 노래에서 역시 그런 숫자를 활용한 셈법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신성한 사랑 역시 그런 개념으로 자유로울 수만은 없겠죠. 반을 주었다고 해서 이분의 일이라는 표현을 썼죠. 사랑을 할 때 아낌없이 다 주면 안 되는 걸까요?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하면 다 0.5분으로 전락하는 걸까요?
모든 것을 수로 보면 세상은 너무 단조롭습니다. '65세 이상 인구 천만명 돌파'라는 기사 제목을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구나. 활력이 떨어지겠구나' 뭐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곤 하죠. 그런데 65세인데도 왕성하게 활동도 하고 세상에 활력을 주는 분들도 많습니다. 다양한 모습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수로만 놓고 보면 그런 게 잘 안 보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수에 의지한 셈법은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100이라는 숫자가 소수점 이하의 숫자로 합산이 된 것인지 아니면 99와 1의 조합일지 그 가능성은 다양하잖아요. 어찌 보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조합된 최종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자신만의 셈법을 만들어 보자고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타임이 돌아왔습니다. 파리올림픽 이야기입니다. 전 경기를 하이라이트라도 다 보려는 노력 중입니다. 대한민국의 초반 페이스가 좋습니다.하하하. 우리나라를 북한이라고 하질 않나 다른 나라 애국가를 틀질 않나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림픽만큼 숫자 놀이에 특화된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인데요. 아름다운 무메달도 응원해 보는 첫 올림픽을 만들어 보려 애써보겠습니다.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