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동률'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 가는 나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 가사 중 -
김동률은 1993년 데뷔했습니다.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 및 특별상을 수상하면서죠. 서동욱 씨와 함께 전람회라는 2인조 듀엣 그룹을 결성했죠.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94년 전람회의 1집 앨범 <Exhibition>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가수 신해철, 작곡과 김형석 씨 등이 참여했고 전람회가 작사, 작곡을 맡았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발표한 2집 <Exhibition2>에는 '취중진담'이라는 곡이 히트를 쳤죠. 하지만 3집 앨범 <졸업>을 발표하며 전람회는 아쉽게도 막을 내립니다. 이후 김동률 씨는 이적 씨와 함께 <카니발>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죠. '그땐 그랬지'라는 곡과 '거위의 꿈'이 거기에 실린 곡입니다.
1998년 솔로 1집을 발매합니다. 이후 미국 버클리 음대 작곡과, 영화음악과에 입학, 2003년 졸업합니다. 그 사이 2000년 2집 <희망>, 2001년 3집 <귀향>을 발표하는데 3집에 실린 타이틀곡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가 많은 사랑을 받았죠. 유학을 마치고 2004년 4집 <토로>를 발표하고요.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방송활동에 주력하다가 베스트 앨범 <Thanks>를 발매하는데 여기에 '감사'라는 곡이 새롭게 수록됩니다.
2008년 5집 <Monologue>를 발표했고 2010년에는 이효리 씨의 남편 이상순 씨와 베란다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앨범을 냈고요. 2012년에는 <감사>라는 콘셉트로 전국투어 콘서트도 가졌습니다. 2014년 6집 <동행>을 내고 방송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타이틀곡 '그게 나야'는 음악방송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하죠.
현재까지 꾸준히 그리고 잔잔하게 음악 활동을 하고 있고요. 본인 노래뿐만 아니라 동료 가수인 장혜진, 이승환, 원미연, 김원준, 강수지, 신혜철, 김혜림, 정재형, 박효신, 이소은, 원티드, 알렉스, 보아, 존박, 이소라 등에 작사와 작곡으로 참여했을 만큼 노래 만드는 실력이 일품이죠. 음악성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수이죠.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기억의 습작'입니다. 기억은 몰라도 '습작'이라는 단어를 가사에서 보는 것은 참 드문 일이죠. 익힐 습과 지을 작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데요. 뭔가 완성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것에 이르기 전에 만들어진 모든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죠.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완성되지 않은 사랑, 풋풋한 첫사랑 같은 코드에 잘 맞습니다. 영화 <건축학개론> OST가 그것을 잘 보여주죠. 원래는 이 노래는 6분을 넘는 곡이었다고 하네요. 윤종신 씨의 제안으로 트럼펫 부분을 잘라냈다고 하네요. 하하하.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부분입니다. 화자는 상대를 걱정합니다. 이젠 그만했으면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곤 화자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거든요.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나에게 말해봐/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부분입니다. 화자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정법을 통해 상대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 지죠. 한편 께름칙한 부분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그리 힘들어하는 것에 자신의 지분이 조금은 있는 듯한 가사가 보이죠. 상대에게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인지를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스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부분입니다. 저는 이 노래에서 힘들고 어그러진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지를 화자 스스로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상대를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못한 상태로요.
특이한 점은 제목 '기억의 습작'은 현재에서 과거를 더듬으며 그려내는 게 적합한데, 이 노래를 보면 화자는 현재에 있는 듯 보이고 가정법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말하고 있죠. 화자는 미래를 기점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현재의 사랑을 기억의 습작화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현재 역시 기억을 생성해 내는 시간일 테니까요.
음. 오늘은 '습작'에 대해 썰을 풀어보려 합니다. 제가 첫 책 <지구복 착용법>에서 '불가지' 꼭지에 '결과보다 과정에'라는 부제를 달았었는데요. 불가지는 한자로 '알 수 없다'는 뜻이고요. 뭘 알 수 없냐면 우리가 언제 죽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과보다 과정에'로 결론을 삼았더랬습니다.
습작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하는데요. 우리는 인생에서 완성이라는 단어를 갈구합니다. 제가 요즘에 음악가들의 생애와 관련된 책을 보고 있는데. 거기서 인상적인 부분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음악가들 중 일부가 초기의 작품들을 후대의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불에 태우거나 없애는 장면이었습니다. 음악가로서 불완전한 악보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참지 못한 행동이었겠지요.
글과 관련해서도 많은 분들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물어보고 그 답으로 펜을 잡고 아무거나 쓰기 시작해라 뭐 이런 조언을 건네곤 합니다. 바로 습작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부분이죠. 저 역시 <가사실종사건>이라는 브런치가 습작의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발생하는 오타나 부족한 글쓰기에 대해 그다지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계속 뭐든 쓰고 있죠.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태어나서 죽는다는 것 자체가 미완성인 삶이라고요. 그곳에서 완성이라는 단어를 찾는 것이 타당한지를 묻게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삶 자체가 모두에게 습작일 수 있다는 말씀이죠. 일명 완벽주의자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이야기기도 하고요.
물론 수많은 습작을 거쳐 대작품을 완성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위대한 작가, 음악가, 건축가 등등 역사 속의 인물들이 그런 사람일 테죠. 하지만 저는 묻게 됩니다. 그 위대한 완성형 인간들은 그 작품이 완성품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작품을 만든 후엔 다른 작품에 도전하지 않았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래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그런 위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겪은 일들, 심적 변화, 주변의 도움 등 과정 부분입니다. 과정을 알고 그들의 작품을 대하면 그 깊이와 공감의 크기가 배가 되곤 하죠. 결과만을 보는 태도로는 절대로 이를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보통 위대한 음악가들의 경우 10살 전에 작곡을 시작하더군요. 그게 그의 마스터피스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습작들이 더해지고 더해지면서 어느 날 우연히 역사에 길이 남을 곡이 탄생되는 것이죠. 그 사이 누구의 영향을 받고 어떤 음악 활동을 하고 시대가 어떠했으며 어떤 사랑을 했는지가 반영됩니다.
글에 있어서 습작은 단순히 쓰는 행위 그 이상입니다. 뭘 쓸지 어떻게 쓸지 언제 쓸지 등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작가가 겪는 삶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기게 되기 때문이죠. 저 역시 무슨 노래를 듣고 어디서 듣고 언제 듣고 가 저의 글에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많이 쓰는 건 많이 겪은 것으로 볼 수도 있죠.
하나의 무언가가 완성되기 위해 수백, 수천번의 습작이 필요하고 그렇게 했다손 치더라도 미완성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구더기가 무더워 장 못 담근다는 표현처럼 완성품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시작조차 안 하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과정이 값진 것일 테죠. 완성되지 않더라도 완성을 향해 불태웠던 열정 그 사이 이루어진 실력 향상, 그리고 인내력 등 과정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오늘도 습작을 하는 여러분들을 응원하면서 완성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