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돈규의 <나만의 슬픔>
작사 강은경 작곡 Papertonic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돈규'입니다.
그녀를 만나서 내 얘기를 묻거든
그저 난 잘 있다고 대답해 줘
이제야 알겠어
그녀가 내게는 얼마나 소중했는지
가슴이 메어와
- 김돈규의 <나만의 슬픔> 가사 중 -
김돈규는 그룹 O15B의 객원보컬로 참여하며 1993년 데뷔했습니다. 4집이었는데 여기 '신인류의 사랑'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담겨 있죠. 5집에도 참여했는데 나미 씨의 곡을 리메이크한 '슬픈 인연'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96년 솔로로 데뷔를 하죠.
오늘 소개할 노래가 바로 그의 첫 솔로 앨범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가사 해석에서 말씀드리겠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이 부른 노래처럼 들립니다. 항간에는 사형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가사를 썼다는 말도 들리는데요. 상황이 딱 들어맞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노래는 인순이 씨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를 했고 커버도 꽤 많이 됐던 곡입니다.
1998년 2집을 내고 2001년 3집 앨범을 냈지만 제작자가 내빼는 바람에 활동을 못했다고 하네요. 이후 가요계를 홀연히 떠났죠. 요식업을 했다고 합니다. 1~3집까지 얀의 앨범 준비를 도와주었다고도 하고요. 뭘 어떻게 도와줬는지 모르겠으나 음역대가 높아서 성대 결절을 겪었다고 합니다.
최근 근황을 살펴보니 2019년 아버지와 어머니가 4개월 사이로 다 돌아가시고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뇌출혈이 오고 대상포진까지 설상가상의 한 해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론이론. 당시 강원도 산골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내비쳤는데요. 현재는 다행히도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사연을 알고 나서 이 노래를 들어보니 왠지 더 슬픔이 배가 되는 듯합니다. 노래를 좋아하던 사람이 성대결절로 목젖을 잘랐으니 얼마나 좌절이 컸을까요. 거기다 파란만장한 개인사까지.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지난 세월의 슬픔을 가라앉히시길 바라고 응원해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이 노래의 제목은 '나만의 슬픔'입니다. 나만 아는 슬픔이라는 뜻이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말해도 안 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죠. 바로 자신이 얼마 안 있으면 저 세상으로 간다는 들어선 안 될 법한 Bad news가 그 배경입니다.
'내 소식 그녀가 들을 때쯤엔/ 난 아마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 친구야 내게 허락된 시간이/ 이젠 다 되어가나 봐'가 첫 가사입니다. 친구가 먼 곳으로 가 있는 상황일까요? 아니면 긴박하게 오늘내일하는 상황이었던 걸까요?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다 되어간다는 가사가 절망감을 느끼게 하죠.
'알리진 말아줘/ 차라리 그녀가 모르게/ 아무런 슬픔도 남기기 싫어/ 연락이 닿아도 올 수가 없을 거야/ 이제는 다른 세상에서' 부분입니다. 마지막 소원쯤 되는 내용인데요. 화자는 남자고 상대는 여자인데요. 연락이 되어도 다른 세상에 있을 것이기에 닿지가 않는 이유로 자신의 신변에 관한 사항을 상대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죠. 저는 이 부분에서 '아무런 슬픔도 남기기 싫어'라는 가사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상대가 이 사실을 알고 슬퍼하는 것이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만큼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2절을 볼까요. '나 훗날 재 되면 그녀가 다니는 길목에/ 아무도 모르게 흩어놓아 줘/ 가끔씩 오가는 그 모습만이라도/ 그 길에 남아 볼 수 있게' 부분이 나오는데요. 섬뜩한 표현이죠? 그리고 범죄입니다. 하하하. 그만큼 저 세상에 가지만 상대와 떨어지지 싫다는 표현인데요. 상대도 바라는 모습인지는 미지수네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그녀를 만나서 내 얘기를 묻거든/ 그저 난 잘 있다고 대답해 줘/ 이제야 알겠어/
그녀가 내게는 얼마나 소중했는지/ 가슴이 메어와' 부분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화자는 상대 걱정입니다.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잘 있다고 말해달라고 하죠. 너무 늦게 상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게 된 것이 천추의 한이 되는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노래 마지막에는 '약속해 줘/ 나 없는 세상에/ 남겨진 그녀를/ 나 대신 지켜준다고/ 그녀를 부탁해' 부분이 나오는데요. 아마도 절친에게 말하는 내용인 것 같죠? 상대 걱정에 눈이라도 잘 감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 노래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형수나 불치병에 걸린 환자 등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떠올려야 이해가 되는 가사가 아닐까 합니다. 과연 죽음이라는 단어를 옆에 두고 우린 이 노래처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걱정 한 가득을 할 수 있을까요?
음. 오늘은 가사 중 '내게 허락된 시간'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볼까 합니다. 전 거꾸로 가는 시간 계산을 가끔 하는 편인데요. '거꾸로 가는 시간'이 뭐냐면요.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수명에서 제 나이를 뺀 숫자를 계산한 시간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80세고 내 나이가 60이면 20년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식이죠.
제가 거꾸로 시간을 세는 이유는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각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절반 정도를 살았다고 했을 때 40년씩이나 남았네요. 40년 밖에 안 남았네라는 두 가지 표현이 있을 텐데요. 대부분은 긍정성을 뜻하는 '씩이나' 표현을 선호하지만 시간에 관해서 만큼은 '밖에'라는 표현이 더 유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가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곁에 두고 살면 무언가를 판단할 때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 할 기회가 없다.' 이런 식의 접근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더 잘 살아보려고 애쓰게도 되고요. '내게 허락된 시간'을 거꾸로 세는 셈법 역시 누군가에게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라이프사이클까지 도입을 해 봤는데요. 보통 80년 넘으면 이유 없이 기력이 빠진다고도 말씀하시고요. 100세 넘게 사신 분들은 돌이켜 보니 65~75세가 자신의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이 기준을 적용해 보면 60세 전후로 노동이라는 것을 하고 잘해 봐야 20년 정도의 시간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셈이죠.
또 다른 하나는 하루 24시간이라는 단기 라이프사이클을 따져보면 8시간 정도는 자는 시간이니까 3분의 1은 의지가 발동하는 시간이 아니죠. 앞에서 말한 20년 중 7년가량을 빼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남는 시간은 13년 정도죠. 여기에 양치하고 세수하고 응아하고 뭐 이런 불가피한 시간을 빼면 10년도 안 되는 시간이 남아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진짜 얼마 안 되지 않나요?
제가 이런 조금은 특이한 셈법을 하는 이유는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절실함 같은 것을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다른 분들 대비해서 뭔가를 좀 꾸준히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전 지금 아니면 시간이 얼마 안 남아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오늘 안 되면 내일 하고 내일 안 되면 내일 모래 하고' 이렇게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시간이 꽤나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는 흔하디 흔한 말은 시간을 잘 쓰자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시작되죠.
여러분들에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나요? 아니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이 남아 있나요? 진짜 하고 싶은 일에 시간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 노래 가사에서처럼 물리적으로 숨이 멎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 순간을 상상하며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다루는 태도와 행동은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