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범의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알았어요>
작사/작곡 홍서범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홍서범'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오~~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
단지 내 곁에 머물러 달라고 말했을 뿐인데
오~~ 올 때 그냥 그렇게 오셨던 것처럼
갈 때도 그렇게 오~그렇게
가셔야 하나요
- 홍서범의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 가사 중 -
홍서범은 싱어송라이터로 1980년 데뷔했습니다. 대학 시절 '옥슨 79'라는 그룹에서 기타리스트였습니다. 캠퍼스 그룹 '옥슨 80'을 만든 후 TBC 젊은이의 가요제어서 <불놀이야>라는 곡으로 금상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입문했죠. 전역 후 2집을 발표하며 KBS 음악대상 '가사 대상'에서 그룹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아쉽게도 1985년 3집은 공안 정국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고 1987년 밴드는 해체 수순을 밟습니다. 옥슨 밴드는 매년 기수가 생기는 구조인데 옥슨 89가 1989년 MBC 대학가요제 금상을 수상했는데 이때 밴드를 이끈 사람이 <마지막 승부>라는 노래를 부른 김민교 씨라고 하네요.
홍서범 씨는 1989년 솔로로 전향합니다. 한국 최초의 랩송으로 평가받는 <김삿갓>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당시로는 매우 생소했던 스타일의 곡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90년 지금의 아내인 가수 조갑경 씨와 <내 사랑 투유>라는 명곡을 발표하죠. 원래는 장필순 씨가 입을 맞추기로 되어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고요. 석사 논문이 '<7080>의 의미구조와 신화연구 : 문화의 소비유형 패턴을 중심으로' 였다고 하네요. 재미난 것은 발기부전 홍보대사와 암예방 홍보 대사를 맡은 적이 있네요. 충북보건과학대학교 실용음악공연과 겸임교수 타이틀로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89년 발매한 솔로 데뷔 앨범이자 1집 앨범에 실린 곡입니다. 1번 트랙이 이 노래였고 7번 트랙이 위에서 소개드린 <김삿갓>이었죠. 서정적인 노래도 리스너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불후의 명곡에 나와서 부른 영상을 올려 들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더 깊이가 있게 들리네요.
만능엔터테이너라고 할 만큼 한 때 방송계를 종횡무진하며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임백천, 주병진 씨가 동기라네요. 그렇게 보면 얼굴이 꽤나 동안이죠? 2010년대 중반까지 활동을 하다가 요즘은 좀 뜸한데. 앞으로도 싱어송라이터로 자주 얼굴을 비췄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따나 보실까요? 제목이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입니다. 언뜻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제목이지만 오히려 사랑을 원한다는 말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도대체 사랑을 원하지 않으면 뭘 원한다는 것일까요? 가사 무척 짧습니다. 하하하. 해석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만만치 않는 곡이죠. 도전합니다.
이 노래는 1절 한 줄, 2절 한 줄, 그리고 후렴구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은 '떠나가네 사랑이 가네/ 떨리는 내 손을 말없이 바라본 당신 음~/ 떠나가네 사랑이 가네/ 사랑의 아픔을 남기고 떠나간 당신'으로 시작합니다.
이별 상황을 표현하고 있죠. 화자는 이별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닥친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죠. 그 모습이 손을 떠는 장면으로 그려집니다. 믿을 수가 없어 다시 한번 상황을 되뇌어 봅니다. '떠나가네 사랑이 가네'라고요. 그제야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가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되죠.
2절은 '떠나갔네 사랑이 갔네/ 차가운 얼굴로 무심히 돌아선 당신 음~/ 떠나갔네 사랑이 갔네/ 이별의 슬픔도 모르고 떠나간 당신'으로 시작합니다. 1절에는 '떠나가네 사랑이 가네'라는 가사가 2절에서는 과거형으로 바뀝니다. '떠나갔네 사랑이 갔네'라고요. 당연히 등을 돌리고 떠나가는 사람은 남은 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냉담하고 차가운 얼굴을 꺼내 보이죠. 1절과 마찬가지로 믿기지 않는 현실을 또 한 번 되뇌고 있습니다. 서서히 이별이 다가오는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왠지 갑작스레 헤어짐이 발생한 상황을 예상해 볼 수 있죠. 이별의 아픔조차 제대로 느낄 시간조차 주지 않고 상대가 떠나갔다고 말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오~~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 단지 내 곁에 머물러 달라고 말했을 뿐인데/ 오~~ 올 때 그냥 그렇게 오셨던 것처럼/ 갈 때도 그렇게 오~그렇게/ 가셔야 하나요'입니다. 사랑을 바라지 않고 그냥 옆에만 있게 해 달라고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사랑이 방해가 되어서 더 이상 곁에도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생겨도 화자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뜻일까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표현이 떠오르는데요. 화자에게 상대가 올 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패턴이 떠날 때도 똑같이 나타난 것이죠. 이 구절에서는 올 때 어찌 왔더라도 갈 때만큼은 달랐어야 하지 않냐는 작은 원망 같은 것이 느껴지네요. 화자는 진짜 상대에게 사랑을 원하지 않은 걸까요? 사랑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니 상대의 존재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 아니었을까요?
음. 오늘은 '반어법'에 대한 썰을 좀 풀어볼까요? 본인의 마음과는 반대로 표현하는 경우죠. 여러분들도 이런 경우 적지 않으시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뭐든 한 번 권하는 것으로 그치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적어도 세 번은 트라이를 해 보고 그래도 아니라고 하면 그때 했던 제안을 내려놓은 미풍양속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보면 '왜 저래'라는 반응을 보일 것 같죠.
이 노래에는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라는 제목에서 반어의 느낌을 받습니다. 사랑을 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곁에 있는 존재만으로도 괜찮다는 것인지는 해석하는 사람마다 차이를 보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앞뒤가 맞진 않죠.
반어는 영어로 아이러니인데요. 스스로는 무식한 체하면서 사람들의 아는 체하는 가면을 문답법으로 폭로한 소크라테스의 에이로네이아(짓궂음·야유)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테스형은 진짜 안 걸친 곳이 없네요. 하하하. 일상생활에서는 누군가를 '비아냥'거릴 때 반어법을 쓰곤 하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비아냥'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어라고 할까요? 목이 정말 마른 상황에서 누군가가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아.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죠. 상대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목이 마른 것을 눈치챈 누군가는 사양하는 상대에게 다시금 묻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음료수도 있고 아이스도 되는데'라고요. 그때도 답변은 '아. 괜찮습니다'죠.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묻습니다. '그럼 물이라도 드릴까요?'라고요. 그럼 그때서야 너무 사양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실제로도 물을 마시고 싶은 까닭에 '예'라는 답변을 건네죠.
처음부터 그냥 예라고 답변하면 되는 상황을 너무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다 보니 필요 이상의 말을 하게 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죠. 사람의 진짜 본심이 대화로 드러나는 데는 이렇게 많은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안에는 사양하는 상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는 지혜와 권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냥 타파해야 할 나쁜 미풍양속으로 보기엔 좋은 점도 꽤나 많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진짜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은 건데, 실제는 그와는 반대로 '괜찮다. 나는 상관없다'라고 말해 보신 적 없나요? 드라마 같은 데 보면 '너 00 좋아하지?'라고 묻는 말에 화들짝 놀라서 '야. 내가 눈이 삐었냐? 00을 좋아하게'라고 말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데요. 그만큼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평상시보다 더 흥분해서 강한 부정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어떤 말로 어느 시점에 묻느냐에 따라 실제값을 실토하게 할 수도 있고 이처럼 자신의 마음과 전혀 반대인 말을 내뱉게 할 수도 있죠. 확실한 물증을 잡은 후에 '00에게 조금의 호감은 있는 것 같네'라고 말하는 것과 좋아하는 상대와 같이 있는 상황에서 '너 00 좋아하니?'라고 묻는 것은 천지차이일 겁니다.
저는 반어에서 '진실을 보는 힘'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소크라테스가 산파법으로 상대를 녹다운시킨 상황을 대입해 보면 척하는 상황을 간파해 낸 것 같거든요. 이 노래에서 화자는 사랑을 원하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이건 사랑하고 있는 상황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죠.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해서 모두가 진실되지는 않죠. 오히려 진실된 이야기가 소수이고 대부분이 거짓말이 상황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말들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반어를 대하는 자신만의 '진실을 보는 힘'이 반드시 필요하리라 생각되네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