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윤향기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윤복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5 WCFUB5 ktDw? si=DQMEGjGXEAoLT77 o
https://youtu.be/3 KDVArZHPAw? si=S3 KmNMDU1 NufXh7 D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 윤복희의 <여러분> 가사 중 -
윤복희는 1962년 데뷔했습니다.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였죠. 1963년부터 필리핀, 홍콩, 싱가포르, 영국, 서독, 스페인, 스웨덴, 미국 등에서 활동합니다. 거의 글로벌 투어 수준이었죠. 재즈 트롬본 연주자이자 가수 루이 암스트롱의 도움을 받아 가능했다고 하고, 그의 아버지가 국내 뮤지컬을 창시자였다고 하네요. 캬~~~
1967년 가수에 데뷔합니다. 이때 한국에 미니스커트를 선보였죠. 전국적으로 그 파급력이 엄청나서 정부에서 단속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너무도 유명한 곡이죠. 가수 임재범 씨가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불러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소화하기 쉽지 않은 곡이서 그동안 원곡을 뛰어넘지 못했었거든요. 가수이자 자곡가였던 윤향기가 여동생 윤복희를 위해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3년 제3회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요. 원래는 영어 가사로 먼저 썼고, 나중에 국제가요제에 출품하면서 1절을 한국어 가사로 번역했다고 하네요. 두 번이나 이혼을 겪은 동생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신앙고백송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고요.
72년이라는 어마무시한 시간 동안 무대를 지켜온 그녀, 이번 달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가진다는 소식이네요. 뮤지컬을 100회나 소화했고 미니스커트를 창시한 분인 만큼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서 기회가 되면 의상 숍을 해 보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녀의 긴 여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여러분'입니다. 노래 속 화자인 나는 신이고 여러분은 인간을 뜻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그래서 신앙고백송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해석을 붙여봤습니다. 썰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가사를 함께 살펴보시죠.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가 첫 가사입니다. 2절에도 비슷한 가사가 나오는데요.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친구가 될게/ 네가 만약 기쁠 때면/ 내가 웃음이 되리' 부분입니다. 괴로움-위로, 서러움-눈물, 외로움-친구, 기쁨-웃음 이렇게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그에 상응하는 행위가 배치되어 있네요.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부분입니다. 여기 역시 어둡고 험한 길-등불, 허전함과 쓸쓸함-벗으로 인생의 고난에 찾아올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나는 너의/ 만약 내가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여러분'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나의 형제이자 친구이자 기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가사를 말하기 전 한참을 뜸 들이다가 내뱉는 여러분이라는 가사가 압권이죠. 마지막에 외로움을 언급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인생의 한 축이 고독이나 외로움이라는 것을 간파한 가사일까요? 하하하.
음. 오늘은 화자와 여러분의 관계와 관련해서 '또 다른 나'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무신론자니까요. 하하하. 프로이트가 언급한 이드, 에고, 슈퍼에고 같은 이야기도 떠오르고 내가 아는 나, 너만 아는 나,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나,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나로 구분을 했던 조아리의 창도 생각나네요.
무의식의 영역에서 나도 모르게 어떤 일을 벌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요. 우리 몸 안에는 나와 대화하는 또 다른 나가 있습니다. 만화 영화나 영화 같은 데서는 악마와 천사의 마음을 등장시키기도 하죠. 내적 갈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해서 다중인격이 우리 몸 안에서 활동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고요.
인문학에서 언급하는 '아모르파티'. 비루한 운명을 타고 난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명언이죠. 이 노래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 표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외부의 누군가가 혹은 신이라는 존재가 힘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말이죠.
내가 괴로울 때 또 다른 나 역시 괴로워합니다. 내가 외로울 때 또 다른 나 역시 외로워하죠. 나와 또 다른 나는 이처럼 대부분 동기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괴로움과 외로움에 계속해서 빠져있지 않고 그 자리를 떨고 일어나는 것은 '또 다른 나'가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어서죠.
'또 다른 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계속 이렇게 시무룩하게 있을 셈이야. 인생은 길잖아. 왜 이런 일로 너 자신을 괴롭혀. 그만 훌훌 털고 일어나' 뭐 이런 류의 말로 어깨가 바닥까지 떨어진 자신을 채근합니다. 험한 일을 당한 당시에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가 좀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나'가 조금씩 힘을 가지면서 이런 일들이 여지없이 발생하곤 하죠. 신기하죠?
여러분들은 평소에 '또 다른 나'와 얼마나 자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나요? 아마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많은 대회를 하고 언제나 함께 있는 존재는 바로 '또 다른 나'가 아닐까 싶네요. '또 다른 나'처럼 모든 현장에 같이 있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존재는 없을 겁니다.
좋은 삶은 나와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는 바로 '또 다른 나'를 뜻하죠. 현실의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내야 좋은 삶이라는 말입니다. 현실의 나가 꼴 보기 싫고 미워지면 자신이 자신을 미워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어 자존감이 바닥을 찍습니다.
피 터지며 싸운 적군과 화해하는 일도 어렵지만 나와 '또 다른 나'의 화해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때로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할 때도 있고 때로는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또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주기도 하죠.
최근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메타인지를 통한 자기 객관화도 '또 다른 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나를 바로 보는 '또 다른 나'의 시선이 왜곡되지 않고 과대나 과소평가를 하지 않은 상태로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죠.
부처님도 '너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라고 말한 바 있죠. 외부의 누군가에 기대지 말로 '또 다른 나'와 잘 지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때론 삐뚤어지고 나쁜 일을 하더라도 '또 다른 나'가 각성을 통해 이를 바로 잡으며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겠죠.
세상살이가 곧 나를 극복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고난, 힘듦, 고독, 외로움, 욕망 등 내 삶을 제한하는 것들과 마주하며 나와 '또 다른 나'가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장, 발전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죠. 동의하시나요?
이 노래의 여러분을 '또 다른 나'로 본다면 나의 친구이자 형제이자 기쁨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같이 공유하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보다도 절친입니다. 우리 모두의 생이 지속되는 한 운명 같은 존재로 곁에 있죠.
여러분의 여러분은 평안하신가요? '또 다른 나'와 친해져 보아요. 내가 외로울 때면 위로해 줄 처음이자 마지막 존재 '또 다른 나'였습니다.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조회수 트렌드를 보다가 조금 의아한 게 있어서 살펴봤더니 네이버 유입이 거의 잡히질 않네요. 네이버랑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저와 비슷한 경험들 다들 하시고 계시죠? 이 문제를 '또 다른 나'와 주절이 주절이 이야기했습니다. 하하하. 그런 가 보다 하라고 하네요. 그래서 끄덕끄덕 해버렸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