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희의 <꽃밭에서>(cover.강형호)

작사 이종택, 작곡가 이봉조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정훈희'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IBXOAJYXZeU?si=MI1YaY6Nk1PsuIF_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 정훈희의 <꽃밭에서> 가사 중 -




정훈희는 1집을 발매하며 1967년 데뷔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17세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방학을 맞아 호텔 나이트클럽 밴드 마스터였던 삼촌을 따라와 연습삼아 몇 곡을 불렀는데 그때 작곡가 이봉조 씨가 그녀의 노래를 듣고 감탄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이봉조 씨는 <안개>라는 노래의 주인공을 물색중이었죠.

<안개>의 인기에 힘입어 데뷔앨범은 4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1967년과 1968년 신인가수상을 타기도 했죠. 정훈희 씨는 국제가수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1970년과 1972년에는 도쿄국제가요제에 참가했습니다. <안개>가 1회 대회 참가곡이었고 한국어 가사로 불러 국제 경영대회에서 입선한 최초의 국내 가요라는 타이트를 차지합니다. 1972년에는 <좋아서 만났지요>로 참가하여 우수가창상과 작곡가상을 수상합니다. 같은 해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 <너>라는 노래로 유일한 아시아 수상자가 되기도 합니다. 1975년에는 칠레 가요제에서 <무인도>라는 곡으로 3위와 최고 가수상을 동시 수상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79년 칠레가요제에 출전한 곡입니다. 스페인 노래인 <Un Día Hermoso Como Hoy>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를 번안한 곡이죠. 예전에는 번안곡이 우리 가요계에서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하죠. 작곡가 이봉조 씨는 훨씬 이전에 이 곡을 만들었지만 정훈희에게 주려고 기다렸다는 후문입니다. 정훈희 씨는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류되어 방송출연이 정지된 상태였죠.

작사가인 이종택은 조선시대 최한경이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지은 시 <화원>에서 가사를 따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관우, 소향, 조수미 등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기도 했죠. 목소리로는 독보적인 가수입니다. 60년을 향해 가고 있는 그녀의 음악에 경의를 표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꽃밭에서'입니다. 장소를 뜻하는 제목이라서 여기에 사랑과 이별 같은 이벤트가 이루어졌을 거라고 예상해 볼 수 있는데, 그 보다는 꽃밭이라는 장소에서 느낀 개인 감상평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보입니다. 시조에서 가사를 따와서인지 크게 보면 3개구 밖에는 없네요. 게다가 첫 번째 구와 세번째 구는 겹치죠. 해석을 하는 저로써는 대략난감합니다. 하하하.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가 첫 가사입니다. 예고해 드린대로 크게 덧댈 말이 없습니다. 화자는 지금 꽃밭에 있고 꽃잎의 자태를 보며 감탄중입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분입니다. 당시에는 꽃놀이가 지금으로 치면 여행에 해당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꽃을 본다는 것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의미일거라고 생각되네요. 그렇게 좋은 날에 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노래의 주제에 해당되죠. '나 혼자만 꽃밭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화자가 말하는 님은 어딘가로 떠났고 언젠가 돌아온다는 설정이죠.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송이'가 마지막 가사입니다. 첫 가사와 비슷하죠? '아름다운 꽃이여'가 '아름다운 꽃송이'로 가사를 바꾼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죠.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는 걸까요? 하하하.

굳이 추가해설하면 이렇습니다. 처음에 꽃을 보고 마냥 좋았던 화자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디를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 님을 떠올렸죠. 그리고 다시 꽃을 처다봅니다. 아름다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번엔 꽃이 아닌 꽃송이로 한정해서 보게 되죠. 저는 이 부분이 꽃을 100%로 즐길 수 없는 화자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꽃밭 전체를 누리기엔 아직 오지 않은 님이 맘에 걸려 꽃송이로 화자의 시야가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저만의 망상이었습니다. 하하하.


음. 오늘은 '꽃잎을 보네'에서 착안하여 '관찰'에 대해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찰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봄'입니다. 과학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첫 걸음이 관찰이죠. 여러분들은 관찰력이 좋으신 편인가요?

관찰은 질적인 것과 양적인 것으로 나뉘는데, 양적 관찰은 관측이라고 합니다. 관찰은 대상이 나를 향할 수도 나외의 것을 향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잘 들여다 보는 능력도 타인이나 사물을 잘 살피는 능력만큼 중요하죠.

주변에 보면 남들이 못 본 것을 유독 잘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나 범인을 검거하는 형사 같은 직업을 갖게 되면 여느 사람보다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리라 생각되네요. 관찰하는 힘을 뜻하는 관찰력은 호기심과 인내의 결합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외모 등을 보고 특정 부분의 변화를 유독 잘 캐치해 내는 것은 관심이 있어야 가능할 일입니다. 타인이 뭘 했든 관심이 없는 경우는 이전과의 변화점을 찾는데 애를 먹기 십상이죠. 간만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온 부인이 남편한테 '나 오늘 달라진 거 뭐 없어?'라는 질문에 한 참을 두리번 거리거나 답 찾는 것을 포기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죠.

예전에 그런 실험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사람들이 둥글게 서서 공을 주고 받습니다. 몇 번을 주고 받는지를 세어보라고 하고 영상을 플레이시키면 숫자 세는 데 정신이 팔려서 원숭이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화면을 지나쳤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례 말이죠.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에 몰입하는 폐해를 지적한 것이지요.

관찰은 눈으로만 하지 않습니다. 복면가왕이나 히든싱어처럼 외모를 가리고 목소리로만 누구인지를 알아맞춰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평상시 해당 가수의 목소리를 잘 입력했거나 그의 몸동작 등을 유심히 보았다면 정보들이 조합되면서 상대적으로 쉽게 누군인지를 알 수 있죠.

이런 오감 기관을 이용한 1차적인 관찰 외에 두뇌를 이용한 관찰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시대에 더 중요한 것은 자연 환경보다도 각종 정보가 그 관찰의 대상일 테니까요. 많은 정보를 보면서 진위 여부를 판별해 낼 수 있는지 말이죠. 정보를 제작 유포하는 메신저가 누군인지와는 별개로 최근에는 AI와 딥페이크 등 눈깜짝할 사이에 코베어갈 정도로 관련 기술 수준이 어마어마 발전했잖아요.

아마도 관찰은 대충대충 보는 방식이 아니라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생각해 보는 습관 혹은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만큼 어떤 것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려면 지치지 않아야 하니 일정한 호기심과 인내라는 세부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겠죠?

여러분들은 미술관에 가서 한 그림을 얼마의 시간동안 응시할 수 있으신가요? 저는 미술 작품을 오랫동안 응시할 수 있는 힘이 관찰력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관찰력은 으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틀어 보거나 다시금 질문하거나 본 것을 말로 해보는 방법이 특효가 있다고 하네요. 의심과 비판하기 등도 관찰력을 형성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노래에서 화자는 꽃밭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며 '와 이쁘다. 아름답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영롱한 빛깔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엄밀히 말하면 눈에 의한 관찰이라기 보다는 평상시 안하던, 당연하다고 느끼는 지점에 질문을 던진 것이죠.

글쟁이에게 관찰은 매우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일히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할 수 없으니 그들이 만든 각종 정보를 가지고 2차적 관찰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려하면 진상에 다가갈 수 없을 뿐더러 당연하다고 여겨도 새로운 생각의 확장을 도모하기 어려울 겁니다.

인간의 눈보다도 몇 배는 정확해진 과학 기술이 있기에 시력을 활용한 관찰은 그만큼 설 자리를 잃어버린 지금이지만 정보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한 2차적 관찰은 아직 유효합니다. AI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로직대로 답을 제시하는 것 뿐이니까요. 이 지점에 AI의 침범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눈이 아니라 뇌로 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탄핵 때문에 잠시 멈춰었던 주말 공연 보기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공연장이 어찌나 썰렁하던지 제가 민망할 정도였네요. 하하하. 영세 서민들이 얼마나 힘들면 국회의장이 탄핵 방망이 친 이후에 연말 송년회 꼭 하라고 당부까지 했는지 조금은 실감이 되었습니다. 저도 남은 기간 연말 공연을 촘촘히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날씨가 그사이 많이 추워졌네요.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고 즐거운 월요일 밤 되시어요.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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