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작사 이은하 작곡 장덕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이은'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tXkU3 JVe3 tE? si=9 IOFYqa-fMrVMYTM

사랑은 이제 내게 남아있지 않아요


아무런 느낌 가질 수 없어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가사 중 -




이은하는 여자 솔로 가수로 1973년 데뷔했습니다. '님마중이라는 곡이었죠. 그녀의 나이가 12살 때였습니다. 이보다 2년 앞선 1975년 동양방송에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으로 브라운관 데뷔를 시도하였으나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노래는 떴는데 활동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1977년 MBC 10대 가수상을 했고 1985년까지 10년 연속 수상했습니다. 1976년 <최진사댁 셋째 딸>과 1977년 <밤차>, 1978년 <겨울장미>, 1979년 <아리송해> 등 내놓은 곡마다 히트를 거듭했죠. 그러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언론통폐합 여파로 활동이 급격이 위축되었습니다. 하지만 1984년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으로 가요대상을 휩쓸었죠.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1985년 발표한 곡으로 허스키한데 파워풀하고 시원한 가창력이 일품이죠. 1989년에는 <돌이키지 마>가 마지막 히트곡이 되었죠. 1992년 탈출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게 되지만 히트를 치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빚보증을 막아보려 했던 개인사 여파가 큽니다. 2020년 다 마무리되었지만요.

가수활동의 강행군으로 수술 대신 스테로이드를 계속 맞은 여파로 쿠싱증후군이 생겨서 뭄무게가 늘었고 유방암 진단과 후유증으로 생긴 인공관절 수술 등 신체적인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23년 다행히 많이 회복되어 활동을 재개했지만 데뷔 50주년 콘서트 대신 팬미팅으로 대신했습니다.

음색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녀였기에 음악 활동이 쭉 이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큽니다. 과연 이 시대에 어떤 가수가 그녀의 목소리를 소환할 수 있을까요? 건강을 잘 회복하셔서 못한 50주년 콘서트를 어떤 식으로든 꼭 하시길 바랍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꽤 깁니다.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죠. 웃는 얼굴로 화자를 떠나보냈던 상대를 묘사한 것 같은데 왠지 원망 같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헤어짐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화자에겐 어떤 사연이 감춰져 있는 걸까요?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날 위해 슬퍼 말아요/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요/ 의미를 잃어버린 그 표정'이 첫 가사입니다. 이별의 현장을 기록한 가사입니다. 화자를 위해 울지도 슬퍼하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으로 화자를 바라보지도 말라고 하죠. 왜 이런 부탁을 한 것일까요?

'날 사랑하지 말아요/ 너무 늦은 얘기잖아요/ 애타게 기다리지 말아요/ 사랑은 끝났으니까' 부분입니다. 화자는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애타게 기다리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너무 늦어버려서 이제 사랑은 끝났고 서로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죠.

'그대 왜 나를 그냥 떠나가게 했나요/ 이렇게 다시 후회할 줄 알았다면/ 아픈 시련 속에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부분입니다. 뭔가 헤어짐의 원인이 상대에게 있는 것 같죠. 상대는 화자를 잘 보듬지 못했습니다. 결국 상대는 이 상황까지 왔고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죠. 화자 역시 그동안 아픈 시련 속에서 방황을 했고요. 모두가 피해자가 돼버린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사랑은 이제 내게 남아있지 않아요/ 아무런 느낌 가질 수 없어요/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부분입니다. 화자는 벌써 마음을 깨끗이 비운 듯합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 그 무엇에도 반응이 안 되고 있죠.

화자가 상대로부터 멀어졌던 순간에 상대는 화자와는 정반대로 다른 일로 즐거웠던 상황이었던 걸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미소를 띤다는 게 제대로 분위기 파악이 안 된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노래는 화자를 배려하지 않아 혼자 힘든 시간을 겪다가 결국 상대를 차며 가시 돋친 이별 선언을 날리는 섬뜩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하하하.


음. 오늘은 '시련'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시련의 사전적 의미는 '겪기 어려운 단련이나 고비'를 뜻합니다. 시련을 철학적 주제로 삼은 사람들을 염세주의자라고 할 수 있죠. 니체, 쇼펜하우어나 비트겐슈타인 등이 대표적인 염세주의 철학자로 분류되죠. 최근 잘 팔리는 책이 이런 철학자들 중심임을 잘 아실 겁니다. 그만큼 삶이 각박해진 걸 반영하는 걸까요?

인생은 비극일까 희극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중 희극만을 떼어서 짧고 굵게 살다가는 삶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죠. 왜 우리 삶은 희극보다 비극이 우위를 차지하도록 설계에 놓았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던져 봤고요.

그러면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고대그리스 시대에 연극이 왜 비극 위주였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희극은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죠. 비극이 없는 희극은 그저 잘 먹고 잘 살다 죽었다 외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비극이 있기에 우리 삶에서는 이야기가 만들어지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역사적 위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시련을 달고 살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만 봐도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고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정보통신 혁명이라 부르는 IT 강국의 초석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첫 번째로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대통령이었죠.

이처럼 시련은 한 인물의 서사를 만들어 줍니다.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좋은 집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어부지리로 대통령까지 당선되었다면 그냥 운 좋은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수많은 시련이 있었기에 그 삶은 그저 그런 이야기에서 한 편의 서사로 남아 후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 것이죠.

우리는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속 편합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그 과정이 매우 괴롭죠. 혹자는 왜 고생을 사서 하냐며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그때 겪는 괴로움이 그래도 나은 편일 텐데요. 자발적이니까요.

반대로 외부에 의해 억압당하고 수모를 겪어야 하는 시련은 어떨까요? 언제 이 상황이 끝날 지 기약이 없는 절망적 상황과 마주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타협하지 않고 그 시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넘을지 넘을 수 없을지를 모르는 상황을 견뎌내고 급기야는 이겨낸 사람들이죠. 그래서 위대한 것일 테고요.

'군대는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낫다'는 세간의 말에는 시련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의미일 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 죽을 각오를 하고 전쟁터에 나가기를 기대하긴 힘들겠죠. 안 갈 수도 있는 군대를 굳이 가는 어느 연예인의 모습에서 저는 시련을 대하는 다른 방식을 보게 됩니다.

인생의 희극을 완성하려면 비극을 다루는 법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참혹했던 현장에 있어 보거나 무인도에 갇혀 며칠 발이 묶인다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될 겁니다. 그런 시련값이 없다면 자동차를 타면서 너 나은 자동차가 눈에 들어오고 비행기를 타게 될 날을 염원하며 비극적인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시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인물은 단연 사마천입니다. 후대에서는 역사학을 정립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는 그걸 완성하기 위해 고자가 되는 수모를 감내했죠.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시련이 없는 삶에 희극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잘 보여준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시련이 찾아오곤 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 상황도 경제 상황도 모두가 시련의 연속입니다. 개인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죠. 오히려 시련이 없이 평온한 삶이 더 위태로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브런치의 많은 글도 글쓴이가 경험한 저마다의 시련을 소재하고 있습니다.

시련은 사랑과 유사합니다. 스스로 뛰어들 수 없는 불구덩이에 자신을 던져서 그곳에 놓아두는 힘이죠. 살려고 아등바등 하며 불구덩이를 해치고 나온 뒤에 우린 한층 성장하고 단련되며 진정한 희극을 맛볼 수 있습니다. 시련의 다른 뜻은 '의지나 사람됨을 시험하여 봄'인데요. 시련을 대하는 자세가 우리 자신이자 이야기가 되는 아닐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시련만큼 뛰어난 글감은 없죠. 외부적 환경에 따른 시련이야 차치해 두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다 보면 시행착오가 그만큼 많아지면서 시련값도 늘어나게 되리라고 봅니다. 시련이 없는 삶이 그만큼 위태롭다고 말하는 것은 새로운 탐구가 없는 삶을 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 여러분들의 삶에는 어떤 시련이 얼마만큼의 강도로 진행되고 있나요?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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