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꽃 피어

작사/작곡 윤학준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윤학준'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z4 ur09 LIYm4? si=wer6 c8 XKhHTqFNz6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조화의 <나 하나 꽃 피어> 가사 중 -




윤학준은 2006년경 데뷔했습니다. '경'이라고 표현한 것은 확실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울산 MBC 창작가요제에서 입상을 한 것이 그의 첫출발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작곡가입니다. <마중>과 <강 건너 봄이 오듯>이 그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는 중학대학교 작곡가를 졸업했고요. 현재 충청북도교육문화원 교육연구사로 재직 중입니다. 유년 시절 교회 활동을 하면서 편곡할 일이 생겼고 그때부터 작곡에 관심을 가졌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곡에 담긴 화성에 매료되었다고 하고요. 그래서 작곡할 때 화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동요, 성악곡, 대중가요 등 음악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음악으로 감동을 받았고 듣는 이들에게 그 감동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의 노래는 성악을 전공하는 이들이 즐겨 부르는 곡들인 만큼 대중성이 강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소개드릴 곡은 1973년에 발간된 조동화의 시집 <꽃들 속에서>에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에 음악을 붙인 형태인데요. 이 노래를 부른 성악가들을 보면서 생각보다 노래 소화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네요. 쓸데없이 듣는 귀가 발달한 지라.... 하하하. 앞으로도 작곡가님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나 하나 꽃 피어'입니다. 한 사람의 작은 변화와 실천이 궁극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노래했죠. 연대의 힘을 강조한 곡이랄까요. 각개전투로 파편화된 현대인들의 삶에 경종을 울리는 곡이라는 부재를 달아도 괜찮을 듯싶네요. 유명한 시, 그리고 짧디 짠 시어를 해석한다는 게 많이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도해 보겠습니다.

'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가 첫 가사입니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타인들의 눈은 냉소적입니다. 한 사람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인해 진보해 왔습니다. 다 안 된다고 했던 일들에 대해 반기를 들고 첫 삽을 떴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게 파도가 되고 역사를 바꾸어 왔죠.

저는 '나 하나 꽃 피어'라는 가사가 두 번 반복되는데 주목합니다. 이 노래는 시가 짧아서인지 두 번씩 반복해서 가사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첫 번째 부를 때는 잔잔하게 두 번째 부를 때는 첫 번째보다는 좀 더 힘을 실어서 부르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첫 번째 가사에 보이는 타인들의 부정적 반응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 같은 것이 담긴 것이 아닐까 추정을 해 봅니다.

2절에는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부분이 나옵니다. 갖은 눈총을 받아가며 1절에서 꽃을 피웠는데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이번엔 입사귀를 물들어 색이 바래지며 산의 모습이 달라질 거라 말해 봅니다. 이 역시 믿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에 '달라지겠냐고' 뒤에 '도'라는 표현을 붙인 것이겠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부분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부분입니다.

역사의 완성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죠.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너란 존재가 있어야 하죠. 너란 존재가 나와 함께 하는 첫출발은 '한 사람이 보여주는 진정성'에 있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나 하나 꽃 피어'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해내겠다는 뜻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풀밭이 꽃밭으로 변화고 온 산이 울긎불긎 물들며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킵니다. 이 지점에서 '촛불시위' 같은 게 생각이 나죠. 한 사람 두 사람 남녀노소 관계없이 한 송이 두 송이 촛불이 모여 어느새 광화문 광장을 꽃밭으로 바꾸고 활활 타오르게 했던 기억 말이죠.


음. 오늘은 '개인'에 대해서 썰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나 하나'가 뜻하는 것이 '개인'일 뜻할 테니까요. 개인은 공동체와 대척점에 서 있는 말로 많이들 알고 있죠. 문유석 씨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기도 하네요.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를 강조한 책이죠. 이처럼 개인주의자를 공동체주의자의 반대로 인식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던 시대는 점점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개인의 힘은 작고 미약합니다. 그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체제와 법률 따위는 상대적으로 견고하죠. 하지만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그리고 역사의 흐름이 바뀐 까닭에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런 법과 제도들도 스스로 변화해야 하지만 실제론 기득권의 논리만 더 공고하는데 기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무너뜨리고 새로운 역사의 쓰는 시작점은 아니러니 하게도 다시 한 개인으로 돌아오곤 하죠.

우리가 위인전에서 보는 많은 인물들이 그런 개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뛰어난 개인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꾼 사례도 있지만 평범한 한 개인이 세상의 변화에 도화선을 형성한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부르짖던 전태일 열사 같은 분이 대표적이죠. 우리가 지금 회사를 다니며 적용받는 근로기준법의 시초가 그라는 개인에서 시작되었음을 놓쳐선 안 되겠죠.

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오면서 개인들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돈이라는 힘이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개인들을 옥죄고 괴롭히고 있는 형국이죠. 개인의 인권과 권리를 지켜야 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은 그 힘에 굴복해 많은 사람들에게 굴욕을 안기고 섣불리 도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들이 무수히 죽어나가는 전쟁이 대표적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가 떠오르고요. 저는 이런 참사를 볼 때 한 개인의 관점으로 접근을 해 보곤 합니다. 내가 만약 그 희생자의 유가족이었더라면, 아니 그 희생자였더라면 어땠을까 하고요. 집단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한 인간의 슬픔과 좌절을 개인의 관점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세상에 대해 그 울분을 터트리는 한 개인을 보는 시선이 전 그 사회의 수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세우는 시위를 할 때 그 시위로 인해 내 출근길을 염려하기에 앞서 그들의 시위가 나의 시위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더 나아가 그 시위가 정당한 것인지를 먼저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 태도를 홍세화 씨는 '똘레랑스', 우리 말로는 관용의 자세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린 과연 나 하나 꽃 피우려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 묻게 되는 대목입니다. 모두가 살기가 힘들어 작은 것 하나에도 얼굴을 붉히고 자신의 몫을 핏대 높여 말하고 있는 지금에서 이런 자세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죠.

아이가 줄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도 하고, 헬조선이라는 말도 있었고 인생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0포 세대라는 말도 유행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위기론, 롯데그룹 지라시 등 경제 전반에도 IMF를 연상키는 모습이 현현하죠. 이런 척박한 땅덩어리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말해야 하는 걸까요?

저는 '연대'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촛불 혁명에서 보듯 그 연대가 이루어지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상태로 진입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언젠가 임계점을 넘으면 개인들의 소외가 터져 나와 그동안 응집된 에너지가 분출될 것이 자명하죠.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잘못된 것들에 대해 원상복구가 가능할 때 연대의 코드가 우리 사회에 작동한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짧은 시를 기반으로 한 이 노래에서 '내가 꽃피어 네가 꽃피면' 그리고 '내가 물들고 네가 물든 면'이라는 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도 우연은 아니겠죠. 바로 이 가사는 연대의 다른 표현일 테니까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착각하는 시대에서 '연대'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합리적인 개인주의'는 요원한 일이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대학에서 교수님들이 하나둘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름의 희망을 발견하곤 합니다. 작은 연대의 단면을 보는 것 같거든요. 정치 성향을 떠나 같은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리는 것은 '너'와 '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민주주의는 늘 옳은 선택이 아니라 아니다 싶으면 고칠 수 있다는 체제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주변의 누군가가 좋은 일을 할 때 시샘의 눈빛이 아니라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길 바라면서 오늘의 브런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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