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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작사/작곡 정중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황가람'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9 XFGRri2 ivs? si=jOoDpC2 MhSxIs7 vh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 가사 중 -




황가람은 2011년 데뷔했습니다. 어린 시절 태권도 선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크나큰 부상을 당해서 더 이상 태권도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그 후 교회에서 음악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을 해서 가수가 되기를 꿈꾸며 공원에서 5달가량 노숙까지 했으나 기회는 오지 않았죠.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도 물도 안 나오는 공장 창고를 빌려 못 다 이룬 가수의 꿈을 이어갑니다. 그 후로도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알바를 하며 버스킹 하며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의 방향은 맞았으나 에너지가 부족했던 때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룹 피노키노의 보컬로 발탁됩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죠. 그동안 굴곡진 삶을 겪어서인지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그룹에 들어간 게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다행히도 그동안의 고생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곡을 만나게 되죠.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밴드그룹 중식이가 발표한 곡을 2024년에 황가람이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벌레'라는 단어가 리스너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기도 했죠. 뭔가 힘든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묘한 위로를 전해주는 곡이 아닐까 합니다. 황가람이 이 노래로 뜨기까지는 정확히 2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는데요. 앞으로는 자신의 노래로 제2의 반딧불로 리스너들을 눈부시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나는 반딧불'입니다. 반딧불은 개똥벌레를 말하는데요. 엉덩이에서 빛을 내는 것이 특징이죠. 왜 화자는 본인을 반딧불로 은유했을까요? 다들 아실 테지만 태어난 한계 혹은 기구한 운명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현했다고 봐야겠죠.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부분입니다. 자신이 고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살았던 화자가 하지만 현실의 모습은 벌레였죠. 실망할 법도 한데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봅니다. 반딧불을 만들 수 있는 자신의 최대 장점을 살려 자신의 삶에 빛을 선사하려 하죠. 이 부분이 노래의 주제절이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부분입니다. 주제절과 비슷한 가사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황가람이 말한 대로 개똥벌레가 아니라 개, 똥, 벌레라고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도 시무룩하게 잇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네요.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 하늘로 올라가 초승달 돼 버렸지/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너무 멀리 갔죠/ 누가 저기 걸어놨어 누가 저기 걸어놨어' 부분입니다. 갑자기 웬 손톱? 하하하. 땅에 있던 내 손톱이 하늘로 올라가자 비슷한 모양의 초승달이 되었습니다. 화자가 원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다음 가사를 보시죠.

'우주에서 무주로 날아온/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돼 버렸지/ 내가 널 만난 것처럼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다시 태어났지' 부분입니다. 무주는 반딧불 축제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밤하늘의 별이 무주의 반딧불이 된 것이죠. 곧 별은 자신 몸 안의 반딧불이 되어 재탄생한 것이죠.

그렇다면 손톱은 어찌 해석해야 할까요? 자신의 몸의 일부가 초승달이 되어버렸고 그 대신 별을 얻어 반딧불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어렵네요. 하하하. 제 개인적인 해석은 개똥벌레가 되기 위해선 애벌레가 6번의 탈피를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피부를 손톱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재탄생을 위한 예비 행동의 관점에서요. 아닌가? 하하하.


음. 오늘은 '벌레'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그레고리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하며 겪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인공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사람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벌레는 징그러운 이미지이고 사람을 벌레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람 이하를 뜻하죠. 그런데 이 노래에서 화자는 자신을 벌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별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말이죠. 소설에서는 주인공 그레고리는 벌레로 변한 후 가족들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 실망하여 죽는 것으로 결론을 맺지만 이 노래에서는 그래도 자신이 눈부시다, 빛날 거다라며 희망을 말하고 있죠. 같은 벌레인데도 한쪽은 절망을 한쪽은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 대조를 이룹니다.

황가람이 출연한 뉴키즈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부분이 있었습니다. 방송 진행하는 유재석과 조재호 씨 그리고 황가람까지 다 눈물바다였다는 점이 하나였고요. 다른 하나는 고생하던 20대의 황가람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이라는 질문과 답변이었습니다.

황가람은 이 질문에 울음을 터트려며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소중한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하죠. 이 답변을 보면서 그는 성공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하루빨리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싶어 하는 시대에 사람들에게 울리는 경종 같은 말로 들렸거든요.

그는 한 마디로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는 것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죠. 아마 그 중간 어디쯤에 서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벌레 같다거나 벌레보다도 못하다는 비관의 늪에 빠지기도 했을 겁니다. 그 지난한 세월 속에서도 노래를 포기하지 않으며 근 20년을 버텼으니 이제는 빛을 볼 때도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아마 추측건대 주변에서 그의 성공을 시샘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군요.

인생을 살다 보면 고난의 행군이 장시간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 그것이 끝날지도 알지 못한 채 현실에 닥친 문제를 풀기에 바쁜 시절 말이죠. 그때 누군가는 법을 어겨서라도 지름길을 가고 싶은 충동도 생기고 또 누군가는 더 이상 걸어가는 일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죠. 벌레 같은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면서요.

사실 우리는 하늘의 별처럼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죠. 하지만 모두가 소중하다는 것은 동시에 누구도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지구의 중심에 놓고 살다가 점점 지구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나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렇고 그런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그 고귀한 존재가 먹을 게 없으면 인육을 먹기도 하고 전쟁통에 놓이면 서로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기도 하죠. 모두가 벌레와 같은 마인드를 원초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을 벌레라고 생각해 봅시다. 남들보다 뭐 하나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다 뒤처지는 상황이 되겠죠. 그때도 삶을 포기하기 않고 긍정의 힘을 발휘해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노래에서 힌트를 얻게 되는데요. 바로 생각의 힘이 아닐까 싶네요.

자신을 벌레로 만드는 것도 생각이고, 그 벌레에 우주의 별을 몸에 담아 재탄생시킬 수 있는 힘도 생각에서부터 나오죠. 상상력일 수도 있고요. 이 노래에서의 벌레는 그냥 벌레가 아니라 생각하는 벌레이기에 그런 생각을 통해 희망을 품고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벌레는 우리 각자의 결함을 은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누군가에는 외모가, 누군가에는 빈곤이, 누군가에는 애인 없음이, 누군가에서는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장애가, 누군가에는 사회성이 결함일 수 있고 그걸 벌레 같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외부의 벌레가 아니라 우리의 몸에 있는 벌레라는 상징 말이죠.

이 노래에서 화자는 벌레의 결함이 아니라 벌레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에 포커스를 두었습니다. 바로 몸으로 빛을 내는 자신의 강점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죠. 선진국의 좋은 교육은 못하는 과목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잘하는 과목을 더 잘하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는데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자. 여러분들의 몸 안에 있는 벌레를 찾아봅시다. 하하하. 그리고 그 벌레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생각해 봅시다. 키가 작으나 몸의 중심이 아래에 있어서 잘 넘어지지 않지 뭐 이런 것들요. 그런 사고방식이 인생 전반으로 확대된다면 슬기로운 벌레 생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지난번에 이 노래를 꼭 다루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오늘에서야 터치를 하네요. 벌레라는 주제가 워낙 신선해서 어찌 다뤄야 할지 그동안 조금 망설였거든요. 글의 품질 여부를 떠나서 그동안 다뤘던 주제와 완전히 결이 다른 주제여서 신박했습니다. 하하하. 유독 힘든 이들을 위로하는 곡들이 있는데 이 노래 역시 일시적인 인기가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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