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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트리오의 <홀로 된 사랑>

작사/작곡 안현진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여운트리오'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X9 ubJi6 ezYQ? si=i_U8 JUcW2 ekM7 e7 t

빙빙빙 맴돌다 떠난 님

잊혀질 넌 그 빗 속으로


빙빙빙 맴돌다 떠난 님

미련만을 던졌어도


그대 그 비 속으로

그대 그 비 속으로


- 여운트리오의 <홀로 된 사랑> 가사 중 -




여운트리오는 1987년 데뷔했습니다. 경성대학교 통키다 음악서클 선후배인 안현진, 고상후 그리고 홍일점인 박순화로 구성된 혼성 3인조입니다. 여운은 동아리 이름으로 전유나 씨도 이 동아리 소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변가요제 은상을 수상했죠. 문희경 씨가 대상을 받았으나 노래는 여운트리오가 더 인기를 끌었죠. 전문가 평가와 일반인 평가 사이의 갭이 발생한 듯합니다.

이 노래는 멤버인 안현진이 이 노래를 작사 작곡했습니다. 가요톱텐에서 2주에 걸쳐 1위를 차지하기도 했죠. 이때 경쟁 가수가 조하문 씨로 '이 밤을 다시 한번'이라는 노래였죠. 대단하죠? 쉽게 사랑하고 쉽게 잊히는 젊은이들의 물질적인 사랑이 안타까워 이 곡을 썼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금의 세상을 봤다면 경기를 일으켰을 것 같네요. 하하하.

1998년 1집을 발매했고 후속곡은 <사랑이 떠나버리고>라는 발라드곡이었습니다. 하지만 멤버였던 안현진이 군입대를 하면서 활동이 갑자기 중단되었고요. 1집을 끝으로 팀은 자취를 감춥니다. 안타깝죠?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고 전해집니다. 이론.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제목이 '홀로 된 사랑'입니다. 단박에 이별 노래임을 알 수 있는 제목입니다. 홀로 된 것은 알겠는데 그 뒤에 사랑을 붙인 걸 봐서는 아직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 있다는 뜻일까요? 화자가 홀로 된 사랑을 어찌 다루는지 가사를 함께 톺아 보시죠.

'홀로인 듯한 외로움 달랠 길 없어/ 달랠 길 없어/ 눈물에 젖은 하늘을 보니/ 어차피 떠난 홀로 된 사랑이기에/ 사랑이기에/ 빗줄기처럼 미련도 그 비 속으로' 부분입니다. 첫 가사부터가 다소 싱숭생숭합니다. 화자는 홀로 된 상황인데 '홀로인 듯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해해 보자면 사랑이 떠나자 모든 것이 떠난 것으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눈물 바가지를 흘리며 하늘을 봅니다. 이미 임은 가버렸기에 임에 대한 그리움도 내리는 빗줄기에 담아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시죠. '잊혀진 듯한 서글픔 지울 길 없어/ 지울 길 없어/ 눈물에 고인 하늘을 보니/ 어차피 떠난 홀로 된 사랑이기에/ 사랑이기에/ 빗줄기처럼 미련도 그 비 속으로' 부분입니다. 약간씩 1절의 가사를 변형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홀로인 듯한 외로움이 잊혀진 듯한 서글픔으로 바뀌어 있죠.

'난 믿었어 우리 사랑이 영원하길/ 그 많았던 아름다웠던 날/ 영원히 잊지 못해' 부분입니다. 잘못된 믿음이기에 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영원이라는 단어를 꿈꾸다니요. 그래도 포기를 못 하겠는지 추억이라도 영원히 간직하려 합니다. 이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빙빙빙 맴돌다 떠난 님/ 잊혀질 넌 그 빗 속으로/ 빙빙빙 맴돌다 떠난 님/ 미련만을 던졌어도/ 그대 그 비 속으로/ 그대 그 비 속으로(2절 모래성을 만들자*3)' 부분입니다. 가사가 참 재미있습니다. '빙빙빙 맴돌다 떠났다'는 표현 말이죠. 건성으로 만났다가 헤어졌다는 표현 같기도 하고요. 이별의 아픔을 머리가 빙빙빙 도는 것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2절 가사인 '모래성을 만들자'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이루어지지 힘든 연약한 사랑의 탑을 은유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모래성'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다를 가면 시키지 않아도 하는 놀이가 몇 개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엄청 크게 쓴다든지 하는 것들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모래사장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를 이용한 행위들입니다. 모래로 온몸을 덮었다가 몸이 데워지면 이내 바다로 풍덩 빠지곤 하죠. 한 번쯤 해 보셨죠?

모래성도 그중 하나죠. 모래가 그냥은 안 뭉쳐지니 물기를 조금 묻혀서 어떤 형체를 만들어 봅니다. 가장 흔 한 게 성이죠. 그런데 이 모래성은 특징이 있죠. 바닷물에 의해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한순간의 추억이려니 하며 열심히 모래성을 만들죠.

이 노래는 이별 노래인데요. 이별과 모래성은 그런 측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모래성을 만들어갈 때는 참 좋죠. 그런데 사랑이 썰물이 되고 이별이 밀물이 되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공들여 쌓은 성이 일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죠. 다시 지을래도 그곳은 한동안 물이 주인 행세를 하죠.

저는 이 노래의 마지막 가사가 좋습니다. 사랑은 어차피 헤어짐이라는 속성을 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을 또 쌓아 올리자고 말합니다. 이별을 했다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사랑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모래성을 생각하면 철학이라는 학문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쌩뚱맞죠? 언젠가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철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그 연유가 하나의 학설이 계속해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나온 누군가가 그걸 완전히 부스는 180도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죠.

마치 성선설에 설득이 되어서 수긍을 했는데 반대편에서 성악설을 떠드는 격이랄까요. 일명 천재들이 한 말들이라 누가 더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고 말이죠.

어찌 보면 우리 인류가 쌓은 많은 지식이 이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천동설과 지동설이 대표적이죠.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 사람들은 천동설이 맞고 믿고 살았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지동설이 맞다고 살고 있습니다. 그 이전의 사람들이 쌓은 것이 마치 모래성을 연상시키지 않나요?

그렇다고 해서 그 시대 사람들이 천동설을 믿고 산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우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까요. 미래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보면 천동설을 믿었던 그들처럼 우리를 보며 혀를 찰 겁니다.

그럼 우린 모래성을 쌓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우린 살아가면서 지동설이든 천동설이든 어느 곳에 방점을 찍고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오히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애매하게 행동하면 이 세상은 혼란만 가중될 겁니다. 틀리더라도 지금의 정답을 상정하고 가는 수밖에요.

저는 철학을 좋아합니다. 이유는 지인이 말한 것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어서죠.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말한 것이라도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어떤 철학자의 말을 뒤집은 채로 잘 살면 자신의 철학이 철학자의 철학보다 훌륭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개똥철학일지라도요. 하지만 그들의 철옹성 같은 사상의 성을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죠.

그 정도의 반열에 오르려면 우리는 무너지는 모래성을 계속 쌓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무너질 확률이 훨씬 높은 비생산적인 일을 보란 듯이 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철학이 밥을 먹여주는 것도 떡을 내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해야 하는 것이죠. 왜?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요.

유명한 철학자의 생각을 베끼던 변형하던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서 삶을 단단히 하는 과정. 저는 그것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무너질 가능성이 꽤나 높은, 아니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모래성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도 지식도 우리가 하는 많은 행위,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 결말이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지만 우린 그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것들을 벌립니다. 산다는 건 죽음의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죠.

여러분들은 어떤 모래성을 열심히 쌓고 계신가요? 지치시진 않았나요? 무너지는 것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린 진실의 삶을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전장에서 나가면 죽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가는 장수를 떠올려 봅니다. 마치 모래성을 쌓는 모습이죠. 효율과 효과로만 택도 없는 행위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돈 말고 사랑이니 존경이니 이런 감정 활동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처럼 효율과 효과로 측정할 수 없는, 극히 확률이 희박한 것에 눈길을 주거나 매달려 보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겁니다. 모래성을 만듭시다.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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