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상추, 쇼리, 라이머, 마스터키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마이티마우스'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Tc0 Cdl38 CXY? si=a53 xEZEVYDGg7 gsG
boy I like the way you talk talk
내 귓가에 쏙쏙
달콤하게 tok tok
말해줄래 love love
ma baby boo my love is true
너와 어디든지 walk walk
내 품 안에 쏙쏙
들어와 줘 꼭꼭
말해 줄게 love love
ma baby boo come on baby tell me
니 맘을 다 말해줘
- 마이티마우스의 <톡톡> 가사 중 -
마이티마우스는 2008년 데뷔했습니다. 추플렉스(전 상추 AKA 237)와 SHORRY J로 구성된 힙합 음악 그룹니다. 청량한 목소리의 여자 멤버의 피처링을 주로 사용하며 곡을 내 왔죠. 그들의 시작은 베이비복스의 멤버인 윤은혜 씨가 피처링한 <사랑해>라는 곡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원더걸스의 선예, 손담비, 한예슬, 손담비, 인순이, 소야, 백지영. 김희선 등 화려한 피처링 멤버와 함께 했는데요. 주석과 김종국의 영향력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이런 비슷한 콘셉트로 m-flo라는 그룹이 있는데, 차이점이라면 m-flo는 실력파 가수를 주로 한 데 반해 마이티마우스는 인지도나 유명세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수 아닌 분도 종종 섞이게 되었죠.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김종국의 조카로 알려진 소야가 피처링한 곡입니다. 이 곡의 반응이 좋았던 탓에 사실상 3인 체제의 혼성그룹으로 활동을 하게 되죠. 이 노래 말고도 <랄랄라>와 <나쁜 놈> 등이 리스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군대 문제 등으로 긴 공백기를 겪다가 8년 만인 2018년 컴백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큰 임팩트를 보이지 못했습니다. 쇼리는 KBS2 예능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딸과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고, 추플렉스는 올해 4월 싱글 앨범을 발매하며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이 '톡톡'입니다. 영어로 말하다는 의미의 Talk Talk이죠. 의역하면 말해줘, 말해줘 이 정도가 될 듯합니다. 화자는 상대에게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 것일까요? 가사를 함께 톱아보시죠.
'너와 처음 마주친 순간/ 마법에 홀린듯한 말로는 설명 못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 느낌/ I got my eyes on you/ why don't you come get close a girl/ 언제든 널 안아줄 남자가/ 바로 여기 나란 걸/ 너에게 난 자존심 따윈/ 아예 없는 바보지/ 사랑해라는 한마디 하나면/ 충분한 남자지/ 나를 믿어 이제 지난 얘기는 끝/ 니 얘기만 노래로 만들고 부를게/ My B.A.B.Y' 부분입니다.
첫눈에 반한 상대. 하지만 상대와는 온도 차이가 있죠. 화자는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에게 어필을 해 봅니다. 어떤 과거와 배경을 가지고 살았던 그건 지난 이야기라며 자신과 사랑을 나눌 것을 제안하죠. 한 사람만을 바라보겠다는 다짐까지 더해가면서요.
'사랑한단 말로/ 내 맘을 전부 보여주긴 너무 부족해/ 적고 적어도 세상의 단어는/ 너무나도 적어 답답할 정도지/ 적어도 니 아름다움 정돈 돼야지/ 수백 가지 글과 말 대신 내 품 입술/ 내 눈빛이 너와 내 사랑의 대화지
이젠 난 항상 그대 곁에/ 손잡고 같이 갈게/ 세상 가장 아름답게 make our future/ 모두의 낮보다 빛나는 많은 밤 속에서/ 넌 내가 꾸는 꿈이야/ 이 모든 게 너만을 향한 나의 맘' 부분입니다.
화자는 세상의 말을 뒤적거려 봐도 자신의 마음을 전할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합니다.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감각적인 입술, 눈빛이 그것보다 훨씬 훌륭하다 느끼죠.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미래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듬뿍 느껴지네요.
'보면 볼수록 너란 걸 느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느낌/ (you feel the same way)/ 외롭고 힘들 땐 언제나/ (hey, I like the way you talk)/ 내 이름을 크게 불러봐/ (hey, I like the way you walk)/ 항상 옆에 있다는 걸 잊지 마/ (hey, I like the way you move)/ 영원히 함께 할 너와 나/ (let me hear say yeah)' 부분입니다. 특별한 가사 해석이 필요해 보이진 않네요. 하하하.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boy I like the way you talk talk/ 내 귓가에 쏙쏙/ 달콤하게 tok tok/ 말해줄래 love love/ ma baby boo my love is true/ 너와 어디든지 walk walk/ 내 품 안에 쏙쏙/ 들어와 줘 꼭꼭/ 말해 줄게 love love/ ma baby boo come on baby tell me/ 니 맘을 다 말해줘' 부분입니다.
같은 음을 두 번씩 쓰면서 뭔가를 보채고 재촉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곡 초반에 상대에게 반한 것은 화자였죠. 상대의 의사는 어떤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화자는 상대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지를 마음을 말해달라고 하고 있네요.
음. 오늘은 가사 중 '세상의 단어는/ 너무나도 적어 답답할 정도지'에 대해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언어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죠. 뭔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있는데 막상 앞에 있는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적 한 두 번쯤 있으시죠?
혹자는 그 순간에 자신의 부족한 언어 능력을 탓할 수도 있고 바로바로 머릿속에서 원하는 단어를 끄집어내지 못하는 속도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이를 탓하면서 자주 깜빡이는 세월을 탓해 보기도 하죠. 어느 쪽이 되었든 결과는 적합한 단어를 쓰는 데 실패한 것이죠.
단어 하나면 제시하면 상대를 이해시키는데 매우 경제적이고 효율적일 텐데 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긴 설명을 해야 하거나 혹은 단어의 일부를 틀리게 말하면서 상대에게 뜻하지 않는 웃음을 주는 경우도 있죠. 이 밖에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상황이나 감정 따위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대장경을 보는 순간이 그렇죠. 황홀하다 뭐 이 정도 표현 밖에는 딱히 덧붙일 말이 없게 되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과연 우리는 해당되는 언어를 찾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해당 언어를 꺼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이 드네요.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너무도 빈번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하하.
사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에 가깝죠. 사과 하나를 놓고 모두가 사과라고 하자고 약속하는 거니까요. 숫자와 언어는 그런 점에서 닮은 바가 있습니다. 모두가 직관적으로 빨리 인식하도록 경제성이나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단점은 개별적인 특징이나 개성을 뭉뚱그리게 됩니다.
사람이 저마다 다르듯 사과라고 해서 품종과 크기가 같을 수 없지만 태양의 빛과 땅의 영양분을 어떻게 흡수했느냐 혹은 사과나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빨간 정도는 다 다르죠. 하지만 그런 것들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상대에게 사과라는 의미를 전달하는데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언어라는 것을 쓸 때는 바로 이런 것이 있지만 없는 것처럼 하고 쓰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이라는 것을 한다고 할 때 상대가 100% 알아들었다고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되죠. 특정 단어가 지난 공통분모를 전달했을 뿐이지 다른 부분은 빠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철학자들은 말합니다. 과연 언어가 상대에게 우리의 감정과 의사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냐라고요.
이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언어의 한계도 있습니다. 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치 신을 신이라고 말하면 신이 아닌 것이 되는 언어의 한계입니다. 주로 추상명사를 언어로 담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죠. 이 경우는 대부분 개인마다 다르게 느끼는 정도 차이를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매우 황홀했다고 표현하는 정도일 테니까요.
인간의 언어로 흘러가는 물의 모양을 설명하는 꼴이랄까요. 특정 지점을 콕 집어 말하는 순간에도 주변의 것들이 변하면서 말하는 바가 거짓이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셈이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 선생의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죠.
이 노래에서 화자가 말하는 언어의 한계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한다는 의미의 말들을 다 뒤적거려 봐도 지금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마음의 크기를 담지 못하고 느끼는 것이죠. 특정 단어가 어떤 장소, 어떤 목적, 어떤 사람 등에 쓰이느냐에 따라 언어의 의미와 깊이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중 어느 것도 딱 들어맞는 것이 없는 난처한 상황이죠.
그래서 화자는 입술과 눈빛 등 바디 랭귀지를 꺼내 듭니다. 언어가 있기 전 인류는 아마도 그런 방법을 먼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원초적인 것이 더 강력하고 직접적일 수 있죠.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낫다는 개념으로도 이해가 되네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언어와 단어 등은 늘 탐구 대상입니다. 가급적 적합한 단어와 짧은 표현을 쓰는 게 좋죠. 그럼에도 인간인 이상 복잡다단한 감정을 이성의 영역에 해당하는 언어로 다 표현하는 것은 늘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최재천 박사의 말처럼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다는 말로 오늘의 브런치를 마치겠습니다.
PS. 장마가 오는 듯 마는 듯하다가 찾아온 무더위입니다. 오늘도 살벌하겠죠? 모두들 물 많이 드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