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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

작사/작곡 김진룡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동환'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uKT8 k4 Fu304? si=vasTkeGY96 O-NPul

어둠이 내려와 거리를 떠돌면


부는 바람에 내 모든 걸 맡길 텐데


한순간 그렇게 쉽사리 살아도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해


-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 가사 중 -




김동환은 1988년 데뷔했습니다. 그는 형이 아버지에게 대학생이 되었다며 선물 받은 LP를 귀동냥으로 많이 들으며 음악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클래식 기타를 배웠고요. 그때부터 노래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고 김현식 씨와 '신촌블루스에서 같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 초 '신중현의 뮤직파워'라는 팀에서 리드보컬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촌뮤직의 사장님이 그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음반을 제안했죠. 하지만 성사는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매니저가 나서서 음반 제작이 이루어졌죠.

오늘 소개할 노래는 처음에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 거절했던 곡이라고 합니다. 그가 일하는 카페에 작곡가가 100일 가까이 찾아와서 곡 제안을 하는 바람에 어렵사리 성사가 되었다고 하네요. 이 노래는 라디오에서 많이 선곡되었고 2003년 드리마 '남자의 향기' OST로 삽입되었습니다.

이 앨범을 포함해서 그는 총 5장의 앨범을 냈지만 그 노래에 버금가는 인기를 거두진 못했습니다. 그의 곡은 대부분 그가 작사, 작곡했습니다. 프로듀싱도 하고요. 2016년에는 싱글을 발표했고요. 가평에 아담한 분위기의 작업실을 마련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단단한 목소리와 독특한 보이스가 매력적인 가수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묻어버린 아픔'입니다. 아픔을 묻을 수 있는 걸까요? 아픔의 속성상 묻는다고 묻어질 리 만무합니다. 묻은 아픔이 아니라 묻어버려 진 아픔이죠. 아마도 세월이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작동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화자의 사연을 쫓아가 보시죠.

'흔한 게 사랑이라지만 나는 그런 사랑 원하지 않아/ 바라만 봐도 괜히 그냥 좋은 그런 사랑이 나는 좋아'가 첫 가사입니다. 화자는 흔하디 흔한 사랑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사랑은 식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네요. 뭘 주고받으며 교환을 하는 세속의 사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아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변한 건 세상이라지만 우리 사랑 이대로 간직하며/ 먼 훗날 함께 마주 앉아 둘이 얘기할 수 있으면 좋아' 부분입니다. 화자처럼 마음만으로 하는 사랑이 언제 적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콧웃음을 칩니다. 사랑만 먹고살 수 있냐며 현실론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하지만 화자는 그런 세상의 변화에 자신의 생각하는 사랑을 맞출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입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두 사람만 같은 뜻을 품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어둠이 내려와 거리를 떠돌면/ 부는 바람에 내 모든 걸 맡길 텐데/ 한순간 그렇게 쉽사리 살아도/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해' 부분입니다. 굉장히 해석이 난해한 부분입니다. 어찌 해석을 해야 할까요? 어둠이 거리에 깔리고 그 거리에 바람이 붑니다. 화자는 그 바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한 번쯤 쉬운 길을 택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생각합니다. 지금이 행복하다 말합니다.

해석이 되시나요? 하하하. 어렵죠?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피아구분이 되지 않는 어두운 밤 자신만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으로 상처받았던 마음을 바람을 핑계로 잠깐 내려놓습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화자는 이런 약간의 비겁함이 지속될 것이 아닌 까닭에 행복하다 말합니다.

제목 '묻어버린 아픔'을 연결시켜 보죠. 아마도 화자는 이별을 했지 않나 싶습니다. 너무도 지고지순한 화자는 변화무쌍한 상대를 떠나보내게 되죠.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하다가 어둠과 바람의 힘을 빌려 슬며시 바닥에 떨굽니다. 마치 그 행동은 이별로 인한 아픔을 어딘가에 묻는 것 같아 보이죠. 상대는 잃었지만 자신의 철학과 자존심을 지켰다는 마음에 행복하다 말하는 게 아닐까요? 너무 나갔나요? 하하하


음. 오늘은 가사 중 '변한 건 세상이라지만'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다 알다시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죠. 다 변하는데 차이가 있다면 속도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생물의 변화는 눈에 잘 띄는 반면 무생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변화가 더뎌서 그냥 그 자체로 머무르고 있는 듯하죠.

자본주의 경제는 변화를 넘어 혁신을 부르짖습니다. 컴퓨터, 휴대폰, 태양광, 전기차, AI 등으로 무지막지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죠.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어야 소비를 촉진하며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우리의 일상의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은 것들이 많죠. AI가 도입되었다고는 하나 AI 근처에도 안 가신 분들도 꽤 됩니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 사용법을 몰라서 당황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AI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가능성이 낮죠.

휴대폰에 수많은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만 그걸 잘 쓰는 사람도 드뭅니다. 전통적인 통화나 문자를 대체하는 카톡 그리고 인터넷 검색, SNS 정도가 보편적이죠. 기술의 변화 속도에 비해 인간의 적응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린 것이 분명합니다.

'문화지체현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기술의 발전을 인간의 문화가 따라가지 못하고 허둥지둥 되는 것이죠. 그래서 기술을 올곧이 사용하지 못해서 각종 부작용이 벌어집니다. 인터넷 댓글 문화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커뮤니케이션 툴은 진보했는데 그걸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기대 이하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화 일색이니 왠지 그 반대 편에 있는 것들에 눈이 갑니다. 느리게 변하는 것 혹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을 갖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죠. 이 노래에서 언급한 사랑이라는 주제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의 개념이 많이 오염되어서 거래적 특성을 띠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깐이나마 변하지 않는 사랑, 영원한 사랑을 꿈꾸니까요.

특히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역동적인 나라로 꼽힙니다. 빨리빨리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죠. 지하철을 타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는 기현상을 연출합니다. 거꾸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중에는 그런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을 만끽하며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한 사례도 있다고 하네요. 하하하.

속도. 인생에서 참 무시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 말하기도 하죠. 너무도 속도에 얽매는 삶을 살다 보면 만신창이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방향만큼 속도도 중요한 듯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늘 끝이 전제되어 있으니까요. 세월아 네월아만 할 순 없는 것이죠.

그래서 혹자는 자신만의 속도를 어필합니다. 사람마다 다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호흡이 가쁘지 않을 정도로 가야 한다고요. 네. 이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속도는 가변적이어야 한다고요. 빠를 때도 있고 느릴 때도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인생이 힘들다고요. 하하하.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빠른 삶을 추구할 수도 있고 느린 삶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계속 한 가지만 하고 살 순 없죠. 컴퓨터가 보편화되어서 타자로 글을 치는 시대지만 일명 베스트셀러 작가들 중 많은 분들은 아직도 원고지에 꾹꾹 눌러쓰고 있기도 합니다.

'변한 건 세상이라지만' 우리가 거기에 늘 보조를 맞춰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 하는 게 자신에게 이롭거나 맞다고 생각하면 그리하는 거고 골백번 죽어도 그리는 못한다 하면 반대편에 서는 것이죠. 살면서 많이는 아니어도 몇 가지는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선택을 지켜나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속도 경쟁에 함몰되면 놓치는 것들이 많죠. 에너지 소비도 엄청납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서 인간의 일을 대신해 주어도 우리의 마음까지 대신해 줄 순 없는 노릇이죠. 기술의 발전이 꼭 우리 삶에 유익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며 살 수밖에요.

남들처럼 변하지 못했다고 너무 섭섭해하진 맙시다. 늘 그래왔듯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 각광을 받는 날들이 살다 보며 꼭 오게 마련이니까요. 그렇다고 변화와 멱살 잡고 싸우진 마시고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요즘 <브런치>를 참 띄엄띄엄 쓰고 있습니다. 늘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으면 가볍게 스킵합니다. 예전에는 죽자 살자 없는 시간이라도 내서 썼었는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아마도 병원 한 번 다녀온 게 약이 되었나 봅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식의 글쓰기에 호의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멀리 가려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변명해 봅니다. 하하하. 주말은 타협하지 않고 꼭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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