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의 <가는 세월>

작사/작곡 김광정

by GAVAYA

안녕하세요?

<가사실종사건> 오늘의 주인공은 '서유석'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CngzjB9 D3x8? si=s_vJ00 C2 zYbSGWBL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 서유석의 <가는 세월> 가사 중 -




서유석은 1968년 데뷔했습니다.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포크팝 가수로 시작합니다. 1세대 포크송 가수로 불립니다. 1960년대 말 김민기, 양희은 등과 함께 명동의 음악 공동체인 '청개구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한국 포크 음악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음반을 많이 냈습니다. 16장이나 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77년 발표되었습니다. 이 노래와 <홀로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그의 대표곡이죠. 특유의 목소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DJ로 오래 활동했습니다. 34년간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대단하죠. 1977년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TBS 교통방송에서 진행자를 오래 해서 2000년 교통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가수로서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요.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마한 이력도 있습니다.

어린이 자전거 학교를 운영하고 독도사랑회 활동 등 사회 공헌에 앞장섰습니다. 지금은 제8대 마포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지역 문화 예술 발전과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고 하네요. 학창 시절 핸드볼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고 유신 정권 시절에는 다수의 곡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시련도 겪었습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가는 세월'입니다. 제목만 봐도 감이 딱 오시죠.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집니다. 가는 세월은 어느 누구도 못 막으니까요.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부분입니다.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농담으로 세월을 정면으로 맞았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하하하. 시간과 유사한 것으로 여기서는 흘러가는 시냇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만 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죠. 거꾸로는 갈 수 없습니다. 시간 속에서 우린 생로병사를 겪게 되죠.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 이 내 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부분입니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하는 세상인지라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들에 자연스럽게 눈이 갑니다. 하지만 찾기 쉽지 않죠. 변화는 우주의 운행 원리이니까요. 오로지 인간만이 변화를 거부하려 몸부림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으로 '내 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읽어야 타당하지 않을까 싶네요.


음. 오늘은 제목 '가는 세월'에 대해 썰을 좀 풀어 보겠습니다. 세월 참 빠르죠? 올해가 벌써 3월입니다. 전 언젠가부터 세월 세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하하하. 무언가가 너무도 기다려질 때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언제 오나 하며 눈을 못 떼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가 보다 합니다.

하루하루는 너무도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데 뒤돌아 보면 꽤나 먼 길을 왔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 순간에는 하나하나를 또렷이 기억하지만 시간에는 장사 없듯이 중요 사건 정도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래서일까요? 기록을 하지 않으면 그저 가물가물해질 따름입니다.

'왕년에'라는 표현이 있죠. 이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은 가는 세월을 거스르고 싶은 욕구가 발동한 까닭입니다. 좋았던 시절은 이미 가고 없는데 그 시절을 추억으로 꺼내는 것이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잘 나갔던 사람이 왜 지금은'이라는 반응을 보이기 딱 좋습니다.

인간만이 가는 세월을 역행합니다. 추억하고 기억하고 그러죠. 동물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어떤 것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정도라면 사람은 세월을 거스르려 적극적으로 노력까지 합니다. 세월도 이길 수 있다 말하면서 말이죠. 하하하.

우주의 모든 것들은 시간 함수의 지배 하에 있습니다. 한 번 흘러간 세월은 다시 잡을 수가 없죠. 가는 세월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살다 보면 너무 지루하고 무료한 세월도 있고 각종 이벤트가 만발하며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는 세월도 있습니다. 뭐가 좋다고 해야 할까요?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제1순위의 자산입니다. 세월은 사고팔 수도 없고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세월값이 생깁니다. 그것 역시 자신에게만 국한하죠. 돈을 천만금 쌓아놓고 내일 죽는 인생보다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의 20대가 값진 것이죠. 하지만 20대가 아무리 애늙이가 되어도 중년의 경험값을 넘어서긴 어렵습니다. 세월은 체력과 시간이라는 엇갈린 곡선을 그리니까요.

같은 나이에 같은 세월을 보낸 사람들을 보면 그냥 반갑습니다. 세월 속에 쌓은 공통의 정서가 있어서입니다. 노래도 그중 하나죠. 그 시절 그 노래를 같이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세월 어디선가 같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죠. 세월이 꽤 흐르면 5살 정도는 맞먹습니다. 하하하.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죠.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산 자가 있으면 죽은 자가 있죠. 인간에서 세월은 삶에서 죽음으로 향합니다. 세월은 유한하기에 순간순간이 그만큼 소중해집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 모든 것은 변한다'입니다. 변하는 것, 유동하는 것을 잡으려고 해도 잡지 못한다는 말이죠. 나이가 드는 것, 세월이 흐르는 것이 탐탁하지 않은 사람, 그걸 붙잡으려 하는 사람은 '자연의 섭리'를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니체의 '영원 회귀'에는 '만약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해도 '예스'라고 외칠 수 있는 지를 묻습니다. 예스라고 못 외친 자는 현재를 잘못 살고 있는 사람으로 그 삶이 죽은 후에도 반복된다고 겁을 주죠. 무한 지옥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좀 무섭죠?

저는 세월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뭐가 없어지고 뭐가 생기는 지를 관찰하게 됩니다. 당연히 생명력은 고갈되고 세상을 보는 눈은 이전보다 넓어지죠. 세월이 스치고 간 자리에는 양도 있고 음도 있는 법입니다. 어느 한쪽만 보는 것이 세월을 거스르고자 하는 집착을 끌어오죠.

누군가는 세월을 물 흐르듯 빠르다 혹은 쏜 화살과 같다 말합니다. 고통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세월이 약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죠. 사람의 얼굴에 파인 주름이나 손 떼 등에는 그동안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경험, 고생, 연륜 같은 것이죠. 강태공은 고기가 아니라 세월을 낚으며 살죠.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에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세월을 낭비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세월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그 세월을 잡으려 타자를 열심히 친다 한들 세월의 뒤꽁무니도 밟지 못할 겁니다. 세월이 가는 것은 야속합니다. 잃는 것들이 더 크게 보이기 마련이죠. 여러분들은 세월이라는 친구와 잘 지내고 계신가요? 그 친구보다도 더 빨리도 더 늦게도 가지 마시고 어깨를 나란히 맞춰서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다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합니다. 이번 고지는 900입니다. 하하하. 니체의 말처럼 다음 생이 다시 반복된다고 해도 저는 <가사실종사건> 1000을 완성하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쏟은 시간은 값집니다. 하하하. 세월은 무심히 흘러가는데 비해 인간의 마음은 무심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세월을 밀고 당겨 보려 하죠. 해도 소용없습니다. 가는 세월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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