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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환의 <그냥 걸었어>

작사/작곡 김준기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임종환'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uWZMJs-MngI? si=ArXxcpsQLGnTfGK1

정말이야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냐

미안해 너의 집 앞이야


난 너를 사랑해 우우

나 그냥 갈까 워 우워


-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 가사 중 -




임종환은 1991년 데뷔했습니다. 1집 <난 널 믿어>라는 곡을 선보였지만 그냥 묻혔습니다. 그리고 절차탁마. 5년 후인 1994년 2집을 선보이는데요. 이게 그의 가수 인생에 대학을 터트려주죠. 오늘 소개할 곡이 바로 2집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노래 중간에 나오는 추임새의 여자 목소리는 대학교 후배였던 그의 아내였다고 합니다. 처음에 동료 가수와 성우 등이 녹음했는데, 어색해서 후배에게 부탁해 다시 녹음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네요.

그가 2집을 발매했던 1994년은 레게 음악이 돌풍을 일으킬 때입니다. 김건모의 <핑계>,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등 히트곡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레게 음악의 선도한 가수 중 한 명임에 틀림없습니다.

1995년 3집과 1996년 4집 역시 레게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이지 소리소문 없이 묻혔죠. 1990년대 말 갑자기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서 한인 라이오 방송국을 운영합니다. 2008년 귀국하여 트로트 앨범을 내며 복귀하는데. 하지만 건강에 이상이 생겨 투병을 하다가 2010년 향년 4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그냥 걸었어'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떨 때 그냥 걸으시나요? 화자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냥 걸었던 걸까요? 사연이 있어 보이죠? 참고는 (괄호)는 여자 파트의 내레이션입니다.

(여보세요)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해서/ 오랜만에 비 속을 걸으니/ 옛 생각도 나네' 부분입니다. 화자는 비 속을 걸으며 옛 생각에 젖어 있습니다. 비를 보니 걷고 싶어 졌고 걷다 보니 옛 생각이 난 것이죠. 전화를 걸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설정인데 X가 유력하죠.

'울적해 노래도 불렀어/ 저절로 눈물이 흐르네/ 너도 내 모습을 보았다면/ 바보라고 했을 거야'(전화 왜 했어) 부분입니다. 마음이 울적해서 이를 달래려고 노래도 흥얼거려 봅니다. 그러나 마음이 북받쳐 눈물이 흐릅니다. 이 모습을 사랑했던 상대가 봤다면 바보라고 말했을 거라 생각하죠. 감정이 격해질 때쯤 전화기에게 왜 전화했냐는 육성이 들려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 '정말이야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냐/(거기 어디야) 미안해 너의 집 앞이야/ 난 너를 사랑해 우 우/(다리 아프겠다 비 많이 맞았어 옷 다 젖지 / 비 많이 맞았지 한참 걸었겠다 어떡해) 나 그냥 갈까 워 워(잠깐만 기다려 나 나갈게)' 부분입니다.

화자는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그녀의 집 앞까지 와 버리죠. 무의식이 그리 한 것이겠죠. 혼자 사랑했든 같이 사랑을 했던 지금은 이전과는 다른 사이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화자가 비를 맞고 오래 걸은 점을 걱정하는 여자의 태도로 추측건대 둘은 나쁘게 헤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반대 같은 식상한 버전이 생각나는데요. 제삼자의 이유로 이루지지 못한 사랑이 화자를 그냥 걷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흑흑.


음. 오늘은 '걷다'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걷는 거 좋아하세요? 평소에 걷기도 훈련을 해 놓지 않으면 마음만큼 걸어야 할 때 잘 걸어지지 않습니다. 얼마 못 가 앉아서 쉴 곳을 찾곤 하죠. 걷기는 크게 두 좋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뛰기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숨이 조금 가쁠 정도로 하는 것과 말 그대로 느릿느릿 세월아 네월아 하며 선비 걸음을 연상시키는 것이 있죠.

운동 효과는 전자가 뛰어나다가 입을 모읍니다. 그런데 후자도 무시 못하는 것이 산책만 해도 심혈관 건강, 면역력 향상, 정신 건강 개선, 체중 관리 및 대사 활성화, 창의력 및 집중력 향상, 균형 감각과 근육 강화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도 하거든요. 제 개인적으로 마음이 심란할 때 산책이 약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도시숲을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자연과 함께 하면 더더욱 효과가 좋아지더라고요.

산책은 철학자들에게는 필수적인 행위가 아닐까 합니다. 그들은 산책이라고 쓰고 사유라고 읽곤 했죠. 빠른 걸음은 운동에 방점이 찍히지만 느린 걸음, 산책, 소요는 깊은 생각을 도모하는 최적의 조건이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칸트, 니체 등 철학자들이 산책을 좋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갑자기 우리 인류가 언제부터 걸었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봤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류는 360만 년 전부터 직립보행을 했다고 하네요. 이 직립보행이 가능해지면서 이전보다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게 되었고 오랜 여정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노마드족이 가능해진 것이죠.

인간은 태어나면 말하기보다 걷기를 먼저 합니다. 몇 만 번을 서다가 실패한 후 드디어 걷게 되죠. 처음으로 중심을 잡고 걷는 모습은 부모님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이동의 자유로움이라는 주체성을 확보하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말하기를 먼저 하고 걷기를 하는 식으로 순서가 뒤바뀌면 좀 이상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하하.

그렇게 걷기를 시작하고 나서 몇 년만 지나면 걷는 것에 대한 별도의 생각 없이도 잘 걷습니다. 걷는 움직임에 대한 제약이 없어지면 그때부터는 걸으면서 생각을 하게 되죠. 빨리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어야지부터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하는 무거운 질문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걸을 수 있는 우리가 너무도 많이 앉아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어깨가 말리며 거북목 증상을 겪기도 하고요. 아주 짧은 거리도 차를 이용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일상에서 걷기가 멀어지면서 이제 걷기는 결심을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죠.

여러분. 혹시 걷는 데이트 해 보셨나요? 서로 커피숍 같은 곳에서 마주 앉아 대화할 때보다도 대화의 속도가 다소 느려집니다. 그만큼 기다려주고 그만큼 생각하며 말을 할 수가 있죠. 평소에는 찾을 수 없는 대화의 여백이 좋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같이 발을 맞추고 보폭이 같아지면 공감대도 높이질 겁니다.

이 노래에서 화자는 그냥 걸었다고 말합니다. 비가 내려서 걷고 싶어 졌다고 하는데, 비가 은유하는 것이 눈물이라면 슬픈 마음을 달래려고 비 속을 걸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이 비를 맞은 기억일지 혹은 비로도 닦이지 않는 추억일지는 모르겠지만 옛 생각해 흠뻑 젖고 말죠.

이 노래 속의 화자가 걸은 걸음은 산책에 가까울 것 같군요. 무언가를 끊임없이 떠올리며 걷기에 속도가 붙은 걸음은 어울리지 않죠.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집 앞까지 와 버렸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익숙함의 거리를 쫓다 보니 다다른 곳이죠. 발이 한 일이 아니라 마음이 한 일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에는 우산이 없으면 이때다 싶어 비를 흠뻑 맞으며 길을 걸을 때가 있었죠. 지금은 산성비니 감기 걸리느니 이런 우려로 인해 그런 낭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비가 오면 한 손은 우산에 묶이고 물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눈은 땅에 고정되죠. 비가 오면 몸도 마음도 자유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우산을 쓰지 않고 빗 속을 걷는 선택을 한다면 잃어버릴 뻔한 자유를 유지하게 됩니다. 시선은 어디로든 향할 수 있고 팔도 마음껏 휘저을 수 있죠. 심지어 이리저리 물웅덩이를 피해 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우산 없이 그냥 걷는 일은 '자유를 꿈꾸는 사람'만의 특권일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화자가 우산도 없이 빗 속으로 뛰어든 데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걸음에 자유를 부여해 어디로든 갈 수 있기를 희망한 것이죠. 그 어디가 바로 그녀의 마음속이었을 거고요.

매일매일 만보를 걸으면 건강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땐 괜찮은데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실행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도 엉덩이 무겁게 소파에 들이밀지 말고 시간이 되는대로 마을 주변이라도 꼭 걸어 봅시다. 걸으면 복이 온다는 심정으로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걷기 관련된 책을 꼭 읽어본다 하면서도 아직 접하질 못했네요. 오늘 해당 글을 쓰려니 부실한 소재들을 보며 다시 한번 의욕을 다지게 됩니다. 하하하. 걸으려면 신체적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걷다 보면 마음의 중심을 잡아갑니다. 걷기보다 간편하고 좋은 운동이 또 있을까 싶은데요. 그래서인지 제 해외여행의 콘셉트도 언젠가부터 걷기 여행이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숲길을 걷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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