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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

작사/작곡 윤상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황치훈'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FZ-ZUxpPjdk? si=rFHG4 ELWM67 BNk4 W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에

홀로 돌이켜 본 추억은

다만 아름답던 사랑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에

홀로 돌이켜본 추억은

다만 아름답던 기억뿐


-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 가사 중 -




황치훈은 1988년 데뷔했습니다. 배우이자 가수였습니다. 아역 배우로 먼저 활동을 시작합니다. 만3세부터라네요. 허걱. 1976년 KBS사극 <황희정승>에서 황희의 아들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만화영 주제가를 여러 번 불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기타도 배웠다고 하네요. 오늘 소개해 드린 곡은 그의 데뷔곡입니다. 이 노래로 그는 KBS 올해의 가수 신인상을 차지했죠. 1992년과 1998년 2,3집을 내놓았지만 반응이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1999년 김범수의 1집 수록곡 '너의 시작으로'라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네요.

애석하게도 그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가수 활동 중단 후 다양한 사업과 일로 그 간극을 매우려고 시도하다가 자동차 회사 세일즈맨이 되었는데요. 결혼을 하고 갑작스럽게 뇌출혈이 와서 10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46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아역 데뷔 이후 200여 편의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한 하이틴 스타였는데요.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이 멈춘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노래도 그를 기억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름은 아니어도 명곡 하나를 남기고 사라진 그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추억 속의 그대'입니다. 추억 운운하는 것을 보니 사랑하는 사람은 진즉에 떠났고 지금은 그 사람을 기억을 통해 곱씹고 있는 듯한 느낌이네요. 여러분들의 추억 속에 그대는 누구인가요?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는지 궁금하네요. 하하하.

'희미해지는 지난 추억 속의 그 길을/ 이젠 다시 걸어볼 수 없다 하여도/ 이 내 가슴에 지워버릴 수 없는/ 그때 그 모든 기억들' 부분입니다. 시간의 속성상 뒤로는 갈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진짜 흐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요. 하지만 우리에게 기억 장치라는 것을 통해 과거를 현재로 불러올 수가 있죠. 화자 역시 기억 장치를 통해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그대의 사랑이 지나가는 자리엔/ 홀로 된 나의 슬픈 고독뿐/ 그대가 다시 올 순 없어도/ 지나간 추억만은 영원히' 부분입니다.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는 말처럼 떠난 사람의 자리는 잘 보이는 법이죠. 고독에 휩싸인 화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상대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간직하려 합니다. 흑흑흑.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에/ 홀로 돌이켜 본 추억은 다만 아름답던 사랑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에/ 홀로 돌이켜본 추억은 다만 아름답던 기억뿐' 부분입니다. 화자의 추억 속에 그대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어서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음. 오늘은 '추억'과 '기억'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 한 번 다룬 기억이 있는데 그동안 제 글빨이 얼마나 늘었는지도 테스트해 볼 겸이요. 하하하.

챗GPT에게 두 단어의 차이를 물었더니 기억은 뇌 속에 저장된 것으로 객관적, 추억은 그 사실을 떠올리며 감정이 섞인 해석으로 주관적, 감성적이라고 말해 주네요. 기억은 데이터이고 추억은 그 데이터에 마음이 더해진 이야기라고도 소개합니다. 똑똑한 놈 같으니라고. 하하하.

그래서 기억은 좋은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모두를 포함하지만 추억은 보통 긍정적인 것에 방점을 찍는다고 하는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왜 이 노래의 제목이 '기억 속의 그대'가 아니라 '추억 속의 그대'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추억과 기억 헷갈리지 맙시다.

그런데 말이죠. 기억이라는 것이 과연 객관적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같은 상황을 겪고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바가 다르잖아요. 또 어떤 경우는 살면서 기억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 가지고 니가 맞네 네가 맞네 하는 논쟁을 한 두 번쯤 해 보셨겠죠.

저는 이 기억을 기반으로 감정이 섞이면서 추억이 만들어지는 원리라면 사람의 기억이 다르게 입력되는 것이니까 추억도 다르게 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다만 기억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전환되면서 긍정의 옷을 입는 것은 매한가지지만요.

그래서 추억의 긍정력에 대해 주목하게 됩니다. 과거에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시간이 지나면 우린 그걸 꽤나 좋은 경험을 했다고 여기죠. 당시는 아파 죽을 것 같았지만 시간 함수가 더해지면서 대부분은 좋은 해석의 결말로 놓아집니다.

일명 트라우마라는 것은 그렇게 되지 못한 것들의 조합이 아닐까 합니다. 과거 겪었던 나쁜 일이 현재까지도 긍정의 옷을 입지 못하고 더 덧나게 당사자의 행동이나 감정 반경을 좁히게 되니까요. 살면서 가급적 트라우마 같은 것은 안 만드는 것이 상책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쯧쯧.

주변에 보면 일기를 쓰신다고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기억의 왜곡을 막는 아주 좋은 방법이죠. 학교 다닐 때 의무처럼 쓰던 일기는 기억을 위주로 다루었는데, 자발적으로 쓰는 일기는 추억을 주로 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내가 느낀 감상에 더 많은 내용을 할애하게 되니까요. 그러고 보면 일기장이 아니라 추억장이라고 불러야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기억은 이처럼 객관적 사실이 중심이라 나름 보관하고 저장하는 방법이 있지만 추억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감정의 기억은 우리 몸 안에 아로새겨지죠. 그래서일까요? 그냥 기억처럼 구겨 넣으면 너무도 힘들 것 같아 긍정의 옷이라도 입혀서 기억의 저편에 숨겨 놓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기억도 더듬지만 추억도 더듬습니다. 기억은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서 그럴 거고요. 추억은 그 시절에 대한 아련함 혹은 그리움 때문일 겁니다. 예전에 저는 과거 이야기 하는 것을 꽤나 싫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 살 날도 많은데 뒤를 돌아본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죠.

그런 연유로 과거의 노래를 찾아 듣고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당대의 음악 위주로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랬던 제가 요즘은 <가사실종사건> 브런치 덕분에 그때 그 시절 노래를 꽤나 많이 듣고 있죠. 가사를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게 되는 것은 기억의 힘이고 이 노래가 히트를 칠 때 나는 뭘 했고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가끔 떨어 올려 보면서 추억 놀이를 일삼고 있죠. 네. 저도 이제 나이가 꽤 먹은 거 같습니다. 하하하.

과거에 대한 기억과 기록은 컴퓨터의 힘을 빌리 그만이라 크게 걱정이 된 진 않습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알아서 불러가서 저장해 놓으니 그 사진들만 봐도 그때 내가 뭐를 했구나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죠. '바다 갔던 사진만 보여줘'하면 언제 언제 갔는지 단박에 다 알게 됩니다.

그런데 추억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객관적 사실은 기억을 못 할 뿐 없어지진 않는데 추억은 물거품 같은 속성이 있어서 시간이 한참 지나면 찾을 수가 없는 기현상이 발생하죠. 학창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떨리던 마음을 추억으로 간직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하면 거의 못 들 겁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여행을 가면 기념품을 꼭 하나씩 비싸지 않은 것으로 사다 놓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걸 살 때 제가 간직해야 할 추억을 기념을 보며 아로새겨 넣죠. 그렇게라도 하지만 그 시절 그 추억이 남아 있지 않고 어디론가 휘발될 것 같았거든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추억을 잘 간직하고 간수하고 있나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사는 것만큼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간직하며 살아봐야겠습니다. 감정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도 많이 찾아야 할 것 같고요. 여러분들은 어떤 노하우로 추억을 품으시나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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