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한경예 작곡 Rolf Loeland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동규'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91 aSM-cflYs? si=hulKXaWbsqCKLBVg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사 중 -
김동규는 1991년 데뷔했습니다. 베르디 성악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죠.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에서 많은 공연을 했고요. 오페라에서 주역을 많이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3장의 음반도 제작했습니다. 주로 외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잠시 국내에 들르는 모습이었죠.
국내에는 1996년 첫 음반을 발매하게 되고요. 오늘 소개할 노래는 2001년 발표된 곡입니다. 원래도 인지도가 있었지만 이 곡으로 그는 대중과 훨씬 친숙해지게 됩니다. 이 곡은 노르웨이 그룹 시크릿 가든의 연주곡 'Serenade to Spring'이 원곡입니다. 작사가 한경혜가 가사를 붙여서 한국어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처음 불러서 발표를 했고 이후 트로트 노래처럼 주인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무대에서 자주 불리고 있습니다.
풍성한 코수염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소프라노 어머니와 작곡가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서인지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가졌던 그였죠. 100억대 사기를 당했다는 기사도 보이고요. 30세에 결혼했다가 7년 만에 헤어졌고요. 아이도 어릴 때 보고 보지 못했다고 인터뷰에 나와 있네요. 말년이 뒤숭숭하네요. 이론.
그렇습니다. 인간은 모든 분야에서 잘할 수 없죠. 그가 지닌 음악적 재능만으로도 다른 것들이 좀 부족해도 상쇄가 될 정도니까요. 본인은 가혹하다 할 수 있지만요.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업적 중 하나는 바리톤이라는 음역대의 대중화가 아닐까 싶네요. 소프라노와 테너에게만 집중된 고객의 눈을 묵직한 바리톤으로 향하게 한 그의 음악적 치열함과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입니다. 딱 요즘이죠. 노래의 배경이 가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처음에는 특별한 제목이 정해지지 않았다가 가을에 어울리는 곡이라는 평가가 많아지면서 이런 제목이 붙었다고 하는 썰이 있는데요. 믿거나 말거나.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부분입니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하늘이 푸르고 높습니다. 시야도 탁 트여서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이고요. 누구라도 그런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런데 거기다 휴일이라니. 부족한 게 없는 하루인데, 마지막 화룡점정이 더해지죠. 사랑하는 사람이 전화로 나를 깨우고 만나자고 한 겁니다. 뭘 하며 즐겁게 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부분입니다. 너무 행복하면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의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행복감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 행복이 떠나지 말라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볼을 꼬집어 보는 것처럼 상대의 손을 잡고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해 봅니다.
'창 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부분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사랑을 발견하죠.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충분한 상황. 더 이상의 바람은 죄라고 말하고 있죠.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 나의 존재 이유와 지향점이 명확하죠.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 그 자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날씨까지 뽀송뽀송,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니 더할 나위가 없겠죠?
음. 오늘은 가사 중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디언들에게는 특별한 성인식이 있다고 하는데요. 옥수수 밭을 지나면서 가장 큰 옥수수를 따오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 번옥수수를 따면 끝, 혹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 규칙이라고 하네요.
처음에 만난 탐스러운 옥수수를 보며 우리 모두는 생각할 겁니다. 지금 여기서 이걸 따버리면 다음엔 기회가 없을 거야. 그러니 망설여집니다. 혹여라도 이것보다 더 큰 옥수수가 안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들겠죠. 단 한 번의 기회. 그걸 언제 쓸 것인가 하는 것. 혹은 자신이 딴 옥수수라는 선택에 나머지 길에는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어른이 되는 관문에서 필요한 덕목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죠.
너튜브에 돌아다니는 영상 중에 '왜 남자는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가?'라는 제목을 만났는데요. 답변이 획기적이었습니다.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대체로 나이가 어리면 만족 수준이 낮아서 그렇다네요. 별 것도 아닌 것에 웃어주고 별 것도 아닌 선물 따위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에 끌린다나 뭐라나.
이에 반해 조금 나이가 있는 여성 분들은 그만큼 시간의 경험치가 쌓여서 쉽게 감동하지 못하고 그다지 재미없는 이야기에 억지웃음을 보여주는 일도 탐탁해하지 않아서 남자들로부터 관심을 이끌어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00%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틀린 이야기도 아는 듯한데요. 하하하.
제가 이 두 가지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요. 우리의 만족 수준에 관해 언급해 보려고 해서입니다. 눈이 높다는 말 말이죠. 눈이 높으면 좀처럼 만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건에 조건이 붙어서 합격선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서죠. 여러분들은 적정한 눈높이를 가지고 계시나요?
특히 이성을 볼 때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질 때는 눈높이가 한껏 높아져서 고르기 바쁘죠. 하지만 그 많던 이성들이 주변에서 하나씩 사라지고 나면 그제야 현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뒤늦게 바뀐 현실에 맞는 눈높이를 장착해 본들 떠난 이성들이 다시 돌아올 일은 없죠.
첫 만남에서, 혹은 연애할 때 모습은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100으로 놓는다면 분명 그 이상일 겁니다. 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도 평소라면 그냥 지나치던 사람도 연애를 할 때는 그 쓰레기를 줍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펼쳐지죠.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요. 그러니 그 모습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아닐 겁니다.
가끔씩 만나는 연애로 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도 꽤나 위험한 일이죠. 결혼이 그래서 연애와는 다른 거 일 테고요. 많이 본다고 봤는데도 연애할 때와 결혼할 때 보는 상대의 모습은 차원이 다르죠. 일부러 그러는 사람도 있고 그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인데 상대가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만족 수준이 다른 것은 알겠는데, 자신의 만족 수준이 합당하지를 물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자기 객관화와도 일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때 이성에 휩싸여 있는 시기가 있다고 해서 그게 본인의 절댓값이라고 믿는 오류를 범해서는 곤란하니까요.
또 하나. '이만하면 됐다'라는 마인드가 탑재된 자족 모드가 자기 안에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도 관찰해야 합니다.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완벽을 기한다던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을 굳이 오늘 다 하려고 한다든지 뭐 이런 식이죠. 이런 분들 만나면 자족 버튼이라도 있어서 그거 누르면 바로 뒤돌아서 집에 가게 하는 솔루션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곧잘 하게 됩니다.
자족은 단순히 욕심을 버리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상황이나 입장, 처지 등을 헤아리고 딱 부족한 그만큼만 채워지면 거기서 멈출 줄 아는 지혜죠. 이 노래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화자라고 돈도 많이 갖고 싶고 좋은 집이나 차도 사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요? 하지만 그는 딱 거기서 멈췄습니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라는 가사를 내뱉으면서 말이죠.
아시다시피 우리 인생에 100% 만족이란 있을 수 없죠. 그렇다면 만족의 수준을 더 낮추는 연습이 필요할 텐데요. 오히려 만족의 수준을 더더 높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생기면 다른 것을 원하는 식이죠. 그래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말하지요.
조그만 것에도 감사하고 감동할 수 있는 삶.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것의 현실판이죠. 만족도가 높으면 행복감도 동시에 올라갑니다. 만족을 못하는 현실의 문제도 있겠지만 만족 수준이 너무 높은 것도 문제입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인디어 이야기에서 옥수수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게 되니까요. 거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딴 옥수수에 만족하고 그것에 맞춰 삶을 시작하는 것이죠. 더 큰 옥수수를 못 딴 것에 대한 후회나 불만족은 그 밭에서 가장 큰 옥수수를 딴, 몇 명 아니 아무도 없을 수도 있죠. 거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자족, 스스로 만족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인생을 풍요롭게 살면서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하는 과제가 아닐까 싶네요. 여러분들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시나요? 너무 기준을 높게 잡아서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있진 않나요? 브런치만 1000만 정도 조회수가 나오면 여자 친구 정도는 없어도 괜찮으실까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