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전용록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이지연'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ko3 Xf9 DkId0? si=r3 F5 RXGxLUW8 iMr3
난 몰라 하하
바람아 아아
멈추어다오
바람아
멈추어다오
-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가사 중 -
이지연은 1987년 데뷔했습니다. 1980년대를 수놓은 청춘스타 중 한 명이죠. 본명은 이진영. 고등학교 시절 보컬그룹 '재뉴어리'에서 싱어를 하다가 가수로 되었는데요. 그룹 백두산의 보컬이자 작곡가였던 유현상 씨가 발굴했습니다.
1집 <그 이유가 아픔이었네>가 히트를 했고 후속곡인 <난 사랑을 아직 몰라>라는 댄스곡까지 2 연타를 칩니다. KBS 신인가수상도 수상하죠.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1989년 발매된 2집의 타이틀 곡입니다.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기도 했죠. 그녀의 전성기였습니다. 후속곡은 <슬픈 안녕>이라는 노래였습니다.
1990년 3집을 발매했습니다. <늦지 않아서요>라는 곡이 타이틀곡이었고요. 그러다 불현듯 미국으로 잠적했죠. 그리고 1992년 귀국해서 4집 <삶은 한 번뿐인걸요>를 발매합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이 냉담했죠.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잠적했다가 결혼을 하고 돌아왔다는 이유였죠. 하하하. 그래서 은퇴 선언을 합니다.
현재 그녀는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와 요리에 매진한 후 미국에서 세프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간간히 한국을 찾을 때마다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추고 있죠. 수려한 외모로 한 때 높은 인기를 구하겠던 그녀. 갖은 구설수에 지친 그녀에게 찾아온 사랑. 그리고 미국행으로 가수 활동이 안타깝게 마무리되었지만 그 사이 제2의 직업인 셰프에 눈을 뜨고 지금은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여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바람아 멈추어다오'입니다. 여기서 이 노래에서 바람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이 노래를 소화하는 키인 것 같습니다. 그게 뭐길래 그리도 멈춰달라 애원하는 것인지 함께 알아보시죠.
'해가 뜨면 찾아올까/ 바람 불면 떠날 사람인데/ 행여 한번 돌아보면/ 그대 역시 외면하고 있네/ 바람아 멈추어 다오' 부분입니다. 화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웃으며 맞을 수 없는 것은 금세 떠날 사람이기 때문이죠. 바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떠남을 알리는 신호 같은 것으로 등장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보면 상대는 화자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바람에게 멈추어 달라 말합니다.
'세월 가면 잊힐까/ 그렇지만 다시 생각날 걸/ 붙잡아도 소용없어/ 그대는 왜 멀어져 가나/ 바람아 멈추어다오' 부분입니다. 화자는 시간에 기대됩니다. 실패하죠. 붙잡을수록 더 멀어져 가는 상대입니다. 모두가 바람 때문이죠. 바람은 점점 휘몰아쳐 상대를 화자로부터 더 멀리멀리 데려갑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난 몰라 하하/ 바람아 아아 멈추어다오/ 바람아 멈추어다오' 부분입니다. 화자는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에 낙담하여 그저 그놈의 바람을 멈춰달라고 애원해 봅니다. 그러나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세차게 불어 제치는 듯 보이네요. 이론.
'이젠 모두 지난 일이야/ 그리우면 난 어떡하나/ 부질없는 내 마음에/ 바보같이 눈물만 흐르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부분입니다. 한 차례 광품이 휘몰아치다 잠잠해진 듯합니다. 이제 지난 일로 여기며 마음을 다잡아 보려 하죠. 하지만 화자는 끝내 상대를 잊지 못할 것은 두려운 마음에 눈물을 흘립니다. 잠잠했던 바람은 잠시 얌전하게 있는 것일 뿐 언제라도 화자마저 날려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상황이죠.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람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하하하.
음. 오늘은 가사 중 '이젠 모두 지난 일이야'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에서 악재를 맞았을 때 그를 위로하는 한 마디입니다. 지난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죠. 과거에 미련을 두는 것이 가장 쓸데없는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저도 한 때는 그 말의 의미를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생각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각각의 시간대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말이죠.
지금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모여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금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를 담고 있죠. 나를 관통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현재만을 산다는 것이 말처럼 가능한 일인지 되물어 보게 됩니다. 과거의 아프고 슬픈 기억만 따로 떼어내어 어딘가에 버리고 좋고 기쁜 기억만 가져가는 삶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고 묻게 되는 것이죠. 제 생각에 그런 삶은 없습니다. 가능하지도 않고요.
물론 과거의 기억을 우리는 내일 위해 자연스럽게 왜곡해 저장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쁜 기억은 축소시켜 뇌의 어딘가에 꽁꽁 싸매놓아서 잘 노출이 되지 않게 하고 좋은 기억은 가장 잘 보이는 뇌의 어딘가에 위치시켜 놓음으로써 과거의 긍부정 기억이 모두 좋은 이미지로 보이도록 전시하는 힘이죠.
이별을 기준으로 사랑했던 과거는 모두 지난 일에 해당됩니다. 그런데도 우린 이별 후 상당 기간 홍역을 앓습니다. 과거의 일이 과거의 일로 끝났다면 우리가 오랜 기간 아파해야 할 하등에 이유가 없을 겁니다. 과거의 기억을 우리의 미래를 위해 개조하는 시간을 보내고서야 홍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죠.
'이젠 모두 지난 일이야'라는 선언만으로는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지난 일을 지난 일로 바로 보는 힘이 생겨야 온전히 그리 되니까요. 우린 살면서 수도 없이 어떤 것에 관해 선언을 하지만 그 선언으로 인해 인생의 경로가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을 압니다. 선언은 선언일뿐 문제는 실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이 노래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상대를 멀리 떨어뜨리려는 바람을 원망합니다. 그럴수록 바람은 화자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새 차고 격하게 불어내는 것 같습니다. 화자에겐 그 바람이 어디서 온 것인지 언제 다 떠날 것인지조차 가늠할 여유도 없습니다. 그저 이 바람이 부는 것을 그치기를 바랄 뿐이죠.
그래서 화자는 그 바람을 잠재워보기 위해 '이젠 모두 지난 일이야'라는 문구를 꺼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한 때 사랑했고 지금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정리될 리 없습니다. 머리로는 잊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하죠.
화자의 마음은 바람 앞에 서 있는 등불, 풍전등화를 연상시킵니다. 꺼지지 않은 등불은 바람이 불면 더 격하게 춤을 추죠.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바람이 요동치며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되살릴 것만 같습니다. 그냥 자연스레 촛농이 다 탈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이네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처럼 그 불이 정말 소진되는 것을 확인하기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누군가는 인생이 고행이라고 말합니다. 잘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그 자리에서 다시 그 탑을 쌓아 올려야 하는 게 인생이라 말하죠. 그러니 살아가는 동안 우린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언젠가 쓸어질 탑이라서 무언가를 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건 죽음을 의미하니까요.
느리던 빠르던 탄탄히 쌓던 허름하게 쌓건 오늘의 우리는 자신만의 인생 탑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바람의 출연은 우리를 기겁하게 하죠. 태풍이 우리가 사는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집어삼키듯 우리 인생에서 나타난 바람은 우리가 쌓은 탑도 우리의 마음도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황폐화시킵니다.
이 노래의 화자는 사랑이라는 탑 앞에서 그 바람이 몹시도 원망스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이제 모두 지난 일이야'라는 주문까지 걸어 그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염원해 보는 것이겠죠. 하지만 자연보다 위대한 인간이 없듯이 그 바람을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우리 인간이란 탑이 망가진 자리에서 포기하지 않고 그 땅을 딛고 다시 일어나 탑을 재건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지가 탑재된 것이 유일한 무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 과정이 고되고 힘들 때 우린 이 말에 위로를 받습니다. '이젠 모두 지난 일이야'라고요. 탑이 무너지고 아직 다시 세워지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실낱같은 희망으로 지난 일을 지난 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의지를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탑을 쌓는 실천으로 이어진다면 그 말은 단순한 선언이 아닌 자기 자신의 새로 태어남을 뜻하는 것일 될 겁니다. 그럴 땐 우리는 과거가 현재를 구하고 현재가 미래를 구하는 현장의 주인공으로 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겠죠.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연휴 잘 보내시고 계신가요? 오늘은 글이 기존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연휴 사이 비스므레한 책들을 몇 개 봤더니 글도 그걸 따라가는 듯요. 하하하. 바람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것일 수도 있는데, 어찌 보면 우리들에게 늘 요란하게 움직이는 마음이 바람인 것 같기도 합니다. 진정 멈춰야 하는 바람은 우리의 마음의 바람이겠죠.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