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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의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작사/작곡 심수봉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방미'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0 RemBhV_xrQ? si=eAl851 IKRcQK5 m7 F

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


나 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 방미의 <올 가을엔 사랑을 할 거야> 가사 중 -




방미는 1978년 데뷔했습니다. 가수가 아닌 코미디언으로 서죠. MBC 코미디언 공채 2기입니다. 코미디언 활동을 하면서 낸 곡이 히트를 친 후 가수로 변신한 케이스입니다. 아주 드물죠. 처음엔 가수협회에서 차별도 받고 그랬다고 하네요.

1980년 <날 보러 와요>를 히트시키며 가수로 전향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1983년 발표한 그녀의 6집 앨범에 실린 타이틀 곡입니다. 그녀는 2002년까지 무려 16집을 냈습니다. 80년대가 그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죠. 1984년 동경음악제 은상, 1985년 KBS 방송가요대상 여자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이 노래 작사 작곡자가 가수 심수봉인데요. 그녀의 3집에 실린 <순자의 가을> 혹은 <사랑의 가울>이 이 노래의 원곡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그녀는 군사정권 이슈로 이 앨범으로 활동을 하지 못하죠. 그 덕에 방미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심의 문제로 곡명을 바꿔야 했죠.

그녀는 1990년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재력가가 되었다고 하네요. 잘한 선택이겠죠? 하하하. 개인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이었을지 모르나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과 동료 가수들은 많은 아쉬움을 내비쳤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아까웠으니까요. 최근에는 너튜브에서 인기 크리에이터로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요. 파이팅~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입니다. 언제 사랑을 할 거야라고 못 박는 것을 봐서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춥고 살벌한 겨울을 앞둔 겨울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꼭 찾아보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듯합니다.

'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나 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부분입니다. 화자는 이유 불문하고 따지지 말고 올 가을엔 사랑을 반드시 해 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혼자 걷는 길이 너무 쓸쓸해서입니다. 이론. 가을을 제대로 타는 분인 것 같죠?

'창 밖엔 눈물짓는/ 나를 닮은 단풍잎 하나/ 아~/ 가을은 소리 없이 본 체 만 체/ 흘러만 가는데' 부분입니다. 제 떨어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나무에 매달려 아슬아슬 단풍잎에 자신을 의인화시켜 봅니다. 그만큼 신세가 처량한 듯요. 가을이라는 계절마저 화자를 등진 채 흘러가며 외로움을 가중시키죠.

2절을 보시죠. '울지 말아요 오늘 밤 만은 울지 말아요/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그대가 없이 가는 길은 쓸쓸해/ 너무 쓸쓸해' 부분입니다. 네. 화자는 만났던 사람이 있었군요. 그 길을 지금은 홀로 걷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눈물이 터지면 감정은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흘릴 것을 알기에 오늘 밤만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는 것 같습니다.

'달빛은 화사하게/ 겨울 가로등 불빛을 받아/ 아~/ 오늘도 소리 없이 비춰만 주는데/ 변함없이' 부분입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 가사입니다. 그 사이 계절도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었습니다. 올 가을엔 사랑을 못한 상황이죠. 그런 화자의 마음과는 반대로 세상은 너무 고요하기만 합니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시간은 째깍째깍 가고 있죠. 그래서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 아~/ 그래도 다시 언젠가는 사랑을 할 거야/ 사랑할 거야' 부분입니다. 올 가을엔 떠난 사람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할 거라고 기껏 다짐을 했건만 실패로 끝나며, '언젠가는' 사랑을 할 거라고 말을 바꿨네요. 이론.


음. 오늘은 '쓸쓸함'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외로움과 동의어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습니다. 언어에 유독 민감한 저에게는 말이죠.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외롭다는 '홀로 있어서 마음에 빈 느낌이 있고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다'입니다. 쓸쓸하다는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함께 없어서 마음에 빈 느낌이 있다는 뜻입니다. 차이를 발견하셨나요?

둘 다 마음이 허한 상태는 동일한데, 외롭다는 혼자 있는 상태인 '외'에 초점이 맞춰져서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따라오는데 반해 쓸쓸하다는 누구와 같이 있더라도 심심하거나 적적한 상태를 가리키죠. 결국 이 노래에서 화자가 외롭다가 아닌 쓸쓸하다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다시 돌아와서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주길 기대하기보다는 둘이 걷던 길을 혼자 걸으니 마음이 적적해지는 것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사랑을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봐선 쓸쓸했던 마음이 외로움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론.

참고로 이 두 표현과 비슷한 고독은 완전히 다른 의미죠. 앞의 두 단어가 타율에 의해 이루어진 감정이라면 고독은 자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 가사를 음미해 보면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부분이 나오죠. 여기에도 쓸쓸함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쓸쓸함이라는 단어를 곱씹다 보니 무언가의 상실에서 벌어진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단서는 그 상실의 대상이나 사람이 다시 돌아오길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존재가 같은 생활 반경 안에 있다가 없어졌을 때 느끼는 감정이죠.

예를 들어 독자인 자녀가 해외 유학을 갔다가 군대를 가서 두 부부만 남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쓸쓸함이라고 표현하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쓸쓸한 감정이 든다고 해외 유학 간 자녀를 다시 불러들이거나 군대 간 아들을 바로 제대시켜 집에 데려올 순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상황인 것이죠.

이런 경우 우리는 의례 대안이라는 것을 찾게 됩니다. 집에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운다든가 혹은 안 하던 외부활동을 시작하는 것이죠. 상실의 자리를 만들어버린 그 존재와 그 시간의 대용을 찾는 행위가 아닐까 싶은데요. 잘 대체가 되면 다행이고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그 쓸쓸함이 밀려 오겠죠.

그런데 이 노래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과거 사랑했던 사람은 떠나게 내버려 두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시키려는 욕구가 발동하고 있죠. 뭐가 급했는지 올 가을이라고 시간까지 정해두었습니다. 그만큼 가을이 전하는 이별의 상흔이 아팠을 수도 있고 시린 겨울이 몸소리치도록 싫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외로움은 앞으로 만날 새로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감정인 반면 쓸쓸함은 바로 과거 사랑했던 사람을 향한 감정인 것으로 보입니다. 사랑했지만 이별할 수밖에 없었고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이 바로 쓸쓸함의 정체가 아닐까 싶네요. 제가 너무 깊이 파고드나요? 하하하.

어감상 외롭다는 표현보다는 쓸쓸하다는 표현이 좀 성숙한 표현인 듯 보이는데요. 가을 낙엽처럼 죽어가는 것들을 보면서 인생무상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되고, 자연의 섭리 앞에 한없이 약한 주체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외로움이 아니라 쓸쓸함을 떠올리곤 하니까요.

쓸쓸함에는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같은 정서가 묻어 있기도 하고요. 우리 삶의 의미 같은 것들에 대한 사유나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는 듯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을 때 느끼는 감정 쓸쓸함. 요즘 너튜브에 보면 나이 들수록 주변 사람 다 필요 없다. 혼자 있는 힘을 길러라. 뭐 이런 내용의 영상이 많이 돌아다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똑똑한 사람일수록 주변에 친구가 적어진다는 내용도 있더라고요.

이 말에 눈이 가서 한참을 생각하다 보니 지능이 올라갈수록 정신적 친구,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더라고요. 똑똑한 사람일수록 쓸쓸함을 벗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이 쓸쓸한 감정을 느끼시는지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길었던 연휴가 끝나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많이들 힘드셨죠? 저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만 월요병에 연휴병에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렸네요. 하하하. 사실 이 글도 어제저녁에 오늘을 예상하고 먼저 써놓은 글이랍니다. 이제 이 정도 짬은 되는 거죠. 브런치에서 글을 올리고 하트가 적었을 때 느끼는 감정도 쓸쓸함이라고 봐야겠죠. 내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독자들이라면서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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