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가 왜 그럴까?

후생가외

by 가우

김대리 이야기


얼마 전의 일이었습니다. 저희 팀의 김대리가 갑자기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유학파이고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 MBA에서 공부할 만큼 열심히 사는 팀원이었기 때문에 저는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어디가 아파요?”

“딱히 아픈 곳은 없는데 체력적으로 힘듭니다.”


솔직히 퇴사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른 계획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알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통상 퇴사를 할 때 회사에 2주 전에 통보를 하는데 남은 휴가를 다 쓰면 앞으로 3-4일 정도 출근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김대리가 담당하던 업무를 인수인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떠나는 마당에 무슨 애사심이 남아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업무를 떠안은 다른 팀원은 죽을 상이 되었습니다.


김대리의 마지막 출근 날. 수석 차장님이 마지막 날이니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팀원 전원이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다른 팀원들도 진짜 퇴사 이유가 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고 기분 좋게 보내주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도 아쉬웠는지 한 팀원이 저녁식사에 술이라도 한잔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김대리는 '몸이 안 좋아서 술을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김대리의 공식적인 퇴사일이었습니다. 퇴사 문서도 전사 인트라넷에 공지될 예정이었습니다. 인사담당자에게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퇴사하기로 한 김대리가 병가를 신청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유급 병가제도가 있는 줄 모르다가 최근에 알게 되어서 신청했다고 말했습니다. 병원에서 발급한 진단서를 끊어왔습니다. 인사팀에서는 인사규정상 심각한 병이 아니어서 팀장 재량으로 병가 유무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병가를 승인하면 새로운 팀원을 뽑을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나는 김대리에게 전화해서 '인사규정에 나와있는 심각한 병이 아닌 만큼 병가를 승인해주기 힘들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김대리가 회사에 찾아왔습니다. 손님 출입증을 목에 건 김대리의 모습이 많이 어색했습니다. 제가 인사규정상 그리고 팀 운영상 병가 승인이 힘들다고 재차 설명하자 김대리는 그제야 그동안 두통을 심하게 앓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동안 그런 말을 하지 않았냐?'라고 묻자 ‘회사 사람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 싫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두 가지가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퇴사와 같이 중요한 결정을 짧은 기간에 통보를 한 점과 병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하다가 아무 설명도 없이 퇴사 하루 전에 갑자기 병가를 신청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였습니다.

결국 김대리는 원래대로 퇴사하기로 했고 그다음 날 회사 인트라넷에 퇴사 문서가 떴습니다.


떠나는 김대리를 보면서 저는 새삼 요즘 젊은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회사 다니는 사람이 그 정도 아픈 것도 못 참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회사를 떠나는 큰 결정을 3-4일 정도 남겨두고 별일 아니라는 듯 통보하는 것도 의외였고, 주위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큰 결정을 쉽게 바꾸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우리 세대였으면 상사와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속에 있던 이야기도 하고 팀에 일도 많은데 갑작스럽게 떠나서 죄송하다고 주위 동료들에게도 양해를 구했을 것입니다.


‘혹시 내가 꼰대질을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팀원들에게 저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반응은 반반이었습니다. 젊을수록 김대리의 입장을 이해하는 쪽이었습니다. 저는 더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꼰대둥절’이었습니다.

‘내가 못된 상사인가?’


진정한 개인주의자들의 출현


저도 스스로 개인주의자임을 자처하지만 김대리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습니다. 김대리를 비롯한 젊은 팀원들의 머리에는 ‘집단을 위해 개인’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은 듯했습니다. 2019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모든 작품이 ‘1인칭 소설’이었다고 합니다. 1인칭은 문학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대세가 되었습니다.

저의 20대도 떠올랐습니다. 저희 세대는 X세대라고 불리었습니다. ‘알 수 없는 세대’라는 뜻이죠. 서태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인터넷 게임을 하고, 인터넷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는 ‘신인류’가 출현했다고 언론에서 떠들었습니다. 우리 세대도 지금의 젊은 세대가 받고 있는 ‘양가적인 시선’을 받았습니다. 우려와 걱정이 되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정보통신으로 무장한 경쟁력 있는 젊은이들이라는 평가였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보기에도 우리는 '개인주의적'이었을 것입니다. 서태지의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PC게임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60년대 생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자 선언』을 하신 문유석 판사는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여건하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요즘의 젊은이들 또한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으로 찾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알쓸신잡』에서 정재승 박사가 ‘마시멜로우 테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마시멜로우를 하나 주면서 지금 먹지 않고 참으면 이따가 두 개를 준다고 아이에게 제안을 하는 실험입니다. 마시멜로우를 바로 먹지 않고 참았다가 두 개를 먹는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참으라고….


그런데 마시멜로우 테스트의 또 다른 해석이 나왔다고 합니다. ‘홀리 팔 메리아’와 ‘리처드 애슬린’의 <합리적 간식 먹기(Reasonable Snacking)>입니다.


첫 번째 마시멜로우를 빨리 먹은 아이들 중 일부는 참을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돌아오면 하나를 더 주겠다’는 연구원의 말을 의심했다. 불안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김대리는 회사를 위해서 마시멜로우를 아껴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공무원을 준비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형이나 언니가 회사에서 개고생하고 쉽게 잘려 나가는 것을 보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회사가 평생 나를 챙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회사에서 대단한 꿈이 있지도 않고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몇 달 전 회사 팀장 교육을 갔는데 인사교육 담당자가 젊은 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서 이 일을 하라.’는 말을 하지 말고 ‘이 일을 하면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설득하라.’고 교육했습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회사를 위해서 헌신할 바보는 없다는 것입니다.


떠나는 중과 홀로 남은 절


회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신세대를 버릴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인재가 없는 회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변하는 세대에 맞게 회사도 변해야 합니다. 어차피 이들은 회사에서 오래 일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의 저자 박정준에 의하면 아마존도 평균 근속연수가 1년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마존은 소위 FAANG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플랫폼 기업 중에서 제일 잘 나가는 기업입니다.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는 인재를 키워 그 회사의 전문성을 키워내는 것이 옛날의 인재양성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인재가 들고나가는 것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여 되도록 많은 인재가 자신의 회사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회사를 키워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재의 스트리밍(Streaming) 시스템이죠. 회사에 얼마나 오랫동안 충성할지가 아니라 기간에 상관없이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물어야 할 것입니다.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은 ‘권력이 이미 기업의 손을 떠나 개인으로 이동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블라인드'에서 직장상사와 회사를 깝니다. '글라스 도어'나 '잡플래닛'에서는 면접자가 회사를 심사하는 현상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회사가 아니어도 선택이 많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연예인이 아니어도 방송을 할 수 있고, 작가가 아니어도 소설을 써서 출판할 수 있고, 호텔업자가 아니어도 숙박업을 할 수 있고, 택시기사가 아니어도 운송업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개인의 시대'입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콘텐츠화하고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 수입이 창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세대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대입니다.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친구들이 회사 입사가 목적이 아니고 자기다움을 지키면서 잘 먹고 잘 살기를 꿈꾼다면 기업들은 어디에서 인재를 찾아야 할까요? 뛰어난 인재는 모두 회사 밖에 있고 회사에 들어오는 인재는 회사를 중간다리로 생각합니다. 회사는 뛰어난 개인주의적 개인에게 회사에서 일해달라고 구걸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개인주의자들이 이끌어 갈 회사


회사는 개인주의자들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저성장 시대의 인재는 개인주의자 들일 수밖에 없고 개인주의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에 의존하는 회사는 갈수록 쇠퇴할 것이고 창의적인 개인을 많이 보유한 회사는 번창할 것입니다. 일반화 하기는 힘들지만 창의적인 사람은 개인주의적입니다. 창의적인 개인주의자가 만들어낸 아이디어를 조직에서 어떻게 잘 발전시키느냐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 미래경영의 핵심 성공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한국의 회사들은 조직문화를 강조하고 조직의 목표에 맞게 개인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그 목표를 향해서 뛰었고 성공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까요? 앞으로는 개인의 미션에 따라서 조직의 미션을 정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유시민은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한국이 빠른 속도로 민주주의를 이루어 내면서 뒤늦게 치러야 하는 대가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젊은 세대와의 갈등 역시 자본주의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조직문화는 이제야 자본주의화되는 '후불제 자본주의'를 겪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회사가 개인주의자를 품기를 바라는 이유 중에 하나는 샐러리맨이 그나마 자기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개인과 회사가 윈윈 하는 게임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진실은 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성공을 거둔 혁신적인 기업일수록 근무환경은 치열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역량을 끌어내기 위해 집단의 폭력을 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됩니다.


90년생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간단', '재미', '정직'이라고 합니다. 포노 사피엔스인 그들이 스낵 문화를 즐기고,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알겠는데 '정직'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저는 의아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정직함이란 성품이 정직하다거나,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 나누지 않고 온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 그들은 이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 당연히 혈연, 지연, 학연은 일종의 적폐다. 90년 대생들에게 이제 정직함과 신뢰는 말로써 약속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명문화되거나 강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신뢰의 시스템화’를 원하는 것이다.
<90년생이 온다>, 임홍택 110P 114 P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소위 386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던 시기에 정부 주도하에 인터넷 인프라가 적극적으로 깔렸고, 386세대들은 인터넷이라는 신천지에서 마음껏 사회에 반항을 했습니다. 기존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인터넷을 통해 해결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좋은 서비스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의 국제적 확장 전략의 희생양이 된 부분도 있고 이명박 정부 시절 IT에 대한 지원 부족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한국의 ‘인터넷 강국’의 지위가 위협받는 것은 젊은 세대들의 반항정신의 부족이라고 저는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반항하고 있었습니다. 블록체인인을 지지함으로써 신뢰의 시스템화를 요구하고 있었고, 부조리한 회사가 만들어내는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그런 회사에 취직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세대가 보기에 소극적인 반항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시대와 처지에 맞는 반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반항에서 천민자본주의가 아니라 품격 있는 자본주의의 희망을 봅니다.


커뮤니케이션과 학습의 시간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협업해야 실행이 가능하고 실행을 해야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FAANG이라고 불리는 글로벌 리더를 포함하여 IT산업에서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이 문제를 극복한 기업들입니다. 문제는 창의적인 개인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약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약한 것은 공감능력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좌뇌와 우뇌가 골고루 발달한 사람은 드물고 그 드문 1%의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전화를 하기가 번거로워서 비대면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될 수 있으면 만나고 그게 안되면 통화하라는 말을 하면 꼰대 소리를 듣게 마련입니다. 눈의 흰자위가 커서 눈으로 대화할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가 커뮤니케이션에 유리했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를 살아남게 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모바일이라는 문명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저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 어떤 이모티콘도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젊은 세대들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보를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학습방식때문인지 실행의 결과물도 빨리 나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입사하자마자 자신의 회사나 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길 원하며, 직접 참여를 통해 주목받기를 갈망합니다.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지의 자각입니다. 정보를 검색한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 때 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뭘 알아야 하는지 모르면 정보를 검색할 수 없습니다. 회사는 그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사람은 무지하게 많습니다. 수많은 정보를 취합하고 선별하여 자기만의 생각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자신의 경쟁력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에는 불가피하게 물리적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학습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시대에 맞는 생존전략이라고 하지만 회사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회사도 그 누구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주지 않으면 개인이 얻어가는 것도 없습니다. 젊은 세대가 중시하는 정직, 신뢰, 솔직함의 가치는 개인이 계약관계를 맺은 회사의 관계에 있어서도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회사를 100% 이용만 하려고 하는 자세는 앞서 말한 가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꼰대’답게 공자님 말씀 하나 하겠습니다.


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후배들이 두렵나니 어떻게 장래의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만 못할 줄로 아는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고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방식대로 우리 세대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낼지 누가 알겠습니까? 일본에서도 사토리 세대라고 불리는 세대가 있었습니다. 일본어로 사토리는 '깨달을 오(悟)'자를 씁니다. 새로운 세대가 현재 세대보다 더 깨달은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건설할 회사를 옆에서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도 아직 깨닫지 못한 세대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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