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적 인재, 노자적 인재
공자와 노자는 모두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간 철학자입니다. 나이는 20살 정도 노자가 많았다고 하니, 거의 동시대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네요. 기록에 보면 두 사람이 만난 적은 있었던 것 같으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반대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사상적 라이벌이었던 것이죠.
중국사에 미친 영향을 보면 한나라 이후 공자가 노자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시진핑이 자신의 독재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역대 중국의 왕들이 그랬듯이 공자 사상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공자아카데미’를 전 세계 대학에 세우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노자는 몇몇 중국 왕조에서 통치사상으로 내세웠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가 도교를 국시로 삼기는 했었지만, 그 세력은 왕권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유교에 상대가 안되었습니다. 기업경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병철 회장을 비롯한 많은 CEO들이 ‘논어’를 경영철학으로 삼았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 소프트 CEO는 공자의 강의를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덕경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다는 기업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공자의 압승입니다.
중국의 양대 사상을 이루는 공자와 노자의 철학이 2,500 년이 지난 지금 현대 경영과 샐러리맨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공자의 배움과 노자의 통찰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간 공자에게 철학자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천명을 극복하고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道)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자는 그것을 사람의 본성, 즉 인(仁)에서 찾았고, 인(仁)을 키우는 방법으로 배움(學)을 강조했습니다. 논어에 학이(學而) 편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이끌어온 슬로건이었고,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데 공헌한 가장 중요한 텍스트였습니다. 한국의 기업들은 학(學)과 함께 孝(효)라는 가치관으로 무장된 인재들을 고용하여 높은 생산성과 단결된 조직의 혜택을 누렸습니다. 이병철을 비롯한 수많은 경영자가 논어를 경영철학으로 삼고, 시진핑이 공자를 부활시킨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노자 역시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道)을 제시해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자와 달리 노자는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자연’에서 찾았습니다. 따라서 공자의 배움(學)에 대한 관점을 노자는 비판합니다. 노자에게 배움(學)이란 무엇을 혹은 누구를 모방하는 것이고, 세상과 사물을 구분 짓고 개념화하는 것입니다. 구분 짓고 개념화하는 것은 그것을 다른 것과 차별하는 것이고, 차별은 결국 폭력을 낳는다는 주장입니다. 자연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서는 배움을 멈추어야 한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심지어 책을 ‘옛 성현들의 찌꺼기’라고 했습니다.
노자의 이러한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유무상생(有無相生)입니다. 세상은 대립적인 것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노자에게 있음(有)과 없음(無)는 존재론적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있음(有)과 없음(無)은 각자가 존재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즉 있음(有)이 있기에 없음(無)이 있고 없음(無)이 있기에 있음(有)이 있습니다. 서로 구분 짓고 개념화하고 대립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자는 세상 모든 일을 구분 짓고 개념화해서 그 뜻을 명료하게 하는 것보다 그 경계에 서서 주변의 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적인 관점으로 사물을 봄으로써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라고 이야기합니다. 노자에게 통찰력이란 해(日)와 달(月)을 따로 보지 않고 함께 봄으로서 밝아지는 것(明)을 말합니다.
샐러리맨들이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와서 처음 하는 것도 배우는 일입니다. 회사 일은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것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제 아무리 좋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신입 사원이라도 일단 배워야 합니다. 재무, 마케팅, 영업, 법무, 구매 등 자신이 속하는 부서에 해당하는 전문지식을 열심히 배우고 익힙니다. 전문지식을 익히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 권장할 일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쌓은 전문지식으로 자신 부서의 일과 타 부서의 일을 개념화하고, 구분하고,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고질적인 부서 이기주의는 어느 회사나 갖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애플이 아이튠즈를 통해 음악사업에 진출했을 때, 소니는 누구보다 더 아이튠즈 같은 플랫폼을 만들기에 유리한 조건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드웨어도 있었고, 소프트웨어도 있었고, 음반사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각 사업부문이 싸우느라 플랫폼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실패하고 말았고 그 기회를 스티브 잡스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샐러리맨에게 자기만의 전문성을 갖기를 강요합니다. 자기만의 전문 분야가 없는 샐러리맨은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공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말했습니다. 군자는 그릇처럼 모양에 따라서 기능이 정해지고 그 기능만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현실의 샐러리맨은 각자의 업무에 맞는 그릇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듭니다. 특히 20대나 30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열심히 배워서 그릇이 됩니다. 대부분의 배움의 형태는 모방입니다. 선배들이 했던 방식을 모방하고 전임자가 했던 보고서를 인용하고 경쟁사가 했던 사업 아이템을 모방합니다. 물론 모방도 어느 정도까지는 훌륭한 배움의 방법입니다. 배움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인재가 모여 있는 회사가 사용하는 경영전략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전략이 벤치마킹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열심히 모방하고 공부해서 자신의 일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칭찬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과장, 차장, 부장이 되고 심지어 임원이 되어서도 배우고 모방하는 사람이 있다면 회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실리콘밸리의 많은 혁신가들이 대학 중퇴자라는 것이 우연일까요? 그들은 배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의 사다리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우리에게 주어지는 임무는 더 많고 더 좋은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결정의 무게는 커집니다. 모든 의사결정을 모방하고 공부해서 내려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할까요? 세상 일과 마찬가지로 회사일도 모든 일을 공부를 통해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그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임원들에게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통찰력이란 딱 보면 아는 것입니다. 그러한 통찰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통해서 길러지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일을 구분 짓지 않고 개념화하지 않으면 경계에서 서서 해와 달을 따로따로 보는 것이 아니고 같이 봄으로써 밝아지는 것(明), 이것이 통찰입니다.
사람들은 경계에 서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회사라는 조직의 특성상 임원들은 명쾌하게 의사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직원을 사랑합니다. 노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통찰력의 부재를 경계합니다. 형편없어 보이는 사업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업과 차별을 두지 말고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전에 보이지 않던 큰 그림에서 사업기회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회사생활에서 우리가 실천해 볼 수 있는 노자의 가르침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융합적 관점이라고 해도 좋고, T자형 인간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고전은 시대에 따라서 끊임없이 재해석됩니다. 주희는 논어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가 ‘극기복례(克己復禮)’이고 도덕경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가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서구에도 영향을 주어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사람을 대하는 중요한 태도로 인용됩니다.
제 생각에 현대를 살아가는 샐러리맨에게 가장 중요한 논어의 텍스트는 ‘군자불기(君子不器)’이고, 도덕경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유무상생(有無相生)’입니다. 우리는 그릇처럼 살아가면 안 되고, 상대방을 아우르는 공감 능력을 키워야 하고, 융합적 사고를 해야 합니다. 유가의 가르침이 우리들의 회사생활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가르침이 많이 있지만 갈수록 창의력이 요구되는 사업환경을 고려하면 회사에게 필요한 인재는 유가적 인재보다 도가적 인재 일지 모르겠습니다.
획일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겠지만 공자적 인재는 형식을 중요시하고 관계중심적이고 근면 성실한 인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도가적인 인재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띄었지만 주체성이 강한 인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즘 젊은 인재들은 후자일 것입니다. 이런 인재를 육성하고 수용하기 위한 회사의 조직은 작아야 합니다.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小國寡民)입니다. 아마존은 한 팀의 팀원을 8명 이하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파이를 2조각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 피자 2판을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조직이라야 한다는 것이죠. ‘아메바 경영’을 주장하는 ‘이나모리 가즈오’도 아메바 조직을 7-8명으로 조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한 사람이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최대 150명이라는 '던바의 법칙'은 현대 조직론이 노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한국 기업의 조직은 아직도 도가적이라기보다는 유가적입니다. 사회초년생에 요구되는 자질도 공자의 호학(好學)이지 노자의 명(明))이 아닙니다. 사람의 특성상 배움(學)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 갑자기 명(明)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쉽지 않다. 배움(學)을 통해서 자신의 지식과 업무 경험을 쌓아가되 항상 명(明)의 관점으로 본인이 한 일을 재평가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샐러리맨은 ‘공자적 인간’에서 ‘노자적 인간’으로 발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