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연말 회계 결산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형그룹과 유비쿼터스 모두의 입장에서 이번 재무결산은 매우 중요하다. 2년 전에 체결된 주주간 계약서에 따라 이번 달까지 재무실적을 기준으로 대형그룹의 전환사채(CB)와 전환상환우선주(RCPS)가 보통주로 전환되는 비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형그룹이 몇 퍼센트의 유비쿼터스의 지분을 가져갈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코털도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몇 달 전부터 나에게 재무전망 작업을 지시했다. 인형 눈알 붙이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엑셀을 뚫어다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광고 영업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고 유비쿼터스의 재무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어 왔다. 이제 3개월이 지나면 대형그룹이 전환사채와 전환상환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 대형그룹의 지분율은 올라가겠지만 가치가 없는 회사의 지분율이 높아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임상혁은 코털과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우리 둘은 임상혁의 사무실에 있는 회의용 의자에 앉았다.
“올해 우리 회사 재무실적이면 대형그룹이 몇 퍼센트 지분을 차치할 것으로 예상하시나요?”
초초한 표정의 상혁이 재무이사인 코털에게 질문했다.
“약 45%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대형그룹이 투자할 당시 목표 지분율은 20%였다. 하지만 유비쿼터스의 재무실적 악화로 2배 이상의 지분율을 차지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다행히 대형그룹이 과반수 지분은 갖지 못할 것 같군요. 스타벤처캐피털과 모네타는 보통주로 전환하지 않을 테니 경영권은 확보할 수 있겠네요.”
벤처캐피털은 회사의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전환상환우선주(RCPS)로 투자를 한다. 국내 투자 회사인 스타벤처캐피털과 실리콘밸리 투자자인 모네타 모두 전환상환우선주(RCPS)로 투자를 했고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전환상환우선주로 보유하고 있었다. 벤처캐피털이 보통주로 전환하는 일은 거의 없고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할 때 보통주로 전환해서 시장에서 내다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임상혁은 자신의 경영권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럴 것 같습니다. 대형그룹과 이야기해보진 않았지만, 대형그룹이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하면 보통주로 전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코털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주주사에서 파견한 재무이사지만 임상혁은 코털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마침내 대형그룹이 전환사채(CB)와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 대형그룹은 코털의 예상과 다르게 공문을 통해 그들의 투자 전액을 보통주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해왔다. 나는 당황했지만 주주총회 특별결의는 물론 보통결의에 필요한 지분에도 모자라기 때문에 법적으로 대형그룹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았다.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본사의 처사에 코털은 분개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참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첫 공문을 보낸 후 며칠 뒤, 대형그룹은 또다시 공문을 보내왔다. 나는 급하게 이 사실을 코털에게 알렸다.
“실장님, 본사에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습니다.”
“뭐라고? 사전에 말도 없이? 잠깐만 본사에 전화 좀 하고 올게.”
코털은 급하게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대형그룹에서 계속 코털을 주요 의사결정에서 제외하고 있다. 투자사로 파견한 재무이사를 무시하고 이런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라는 사실이 코털과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대형그룹이 스타벤처캐피털과 모네타의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모두 산 것 같아! 모두 보통주로 전환하면 대형그룹의 지분율은 67퍼센트야!”
잠시 후 사무실로 돌아온 코털이 말했다. 67퍼센트라면 주주총회의 모든 안건을 의결할 수 있는 지분율이다.
“주주총회 소집 안건은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의 전원 교체래.”
“네?”
나는 놀라서 코털을 쳐다보았다.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사의 전원 교체……’
코털은 이 사실을 임상혁에게 알렸고 그는 공황 발작을 일으키며 사무실 바닥에 쓰러졌다. 피를 흘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는 내가 꿈속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파란색 케이스에 씌워진 그의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소식을 듣고 상혁의 사무실로 달려온 박찬영은 쓰러진 임상혁을 보고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상혁아, 괜찮아? 병원에 갈까? 죽으면 안 돼!”
찬영의 말은 두서가 없었지만 평소의 어눌한 말투는 사라졌고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명징했다. 임상혁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정신과 처방약을 먹고 억지로 심호흡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박찬영은 눈물을 흘리면서 임상혁을 껴안았다. 약 때문인지 겨우 정신을 차린 임상혁도 박찬영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물이 찬영의 셔츠에 묻어났다.
“우리 이렇게 끝나는 거야? 유비쿼터스는 내 전부인데...... 내가 세운 회산데...... 내가 회사고...... 회사가 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