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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결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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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우 Jul 23. 2022

[소설] 연결 14

전조

유비쿼터스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 임원 회의가 열린다. 싸가지, 박찬영 이사 그리고 코털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이 회사의 현안에서 논의하는 자리다. 공식적으로 임원들만 모이는 자리지만, 나는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록을 작성하고 회의가 끝나면 임원들에게 배포한다. 스파이의 특권이라고 트집 잡는 직원들이 입방아를 찧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있으니 이런 특권이라도 누려야 하지 않을까?

영업총괄 이사 최기성이 무거운 표정으로 노트북 엑셀에 떠있는 숫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의 노트북에는 이번 달 광고 영업실적에 관련된 숫자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지난 회의에서 광고 영업 부진에 대해서 싸가지로부터 질책을 받은 그였다. 대형그룹과 손을 잡은 후 유비쿼터스는 자금 숨통이 트였다. 늘어나는 트래픽을 해결할 수 있는 장비를 구입했고 새로 론칭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충분한 마케팅을 집행했다. 부자 부모로부터 넘치는 영양을 공급받은 10대의 몸처럼 유비쿼터스는 갈수록 튼튼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돈을 벌 차례였다. 지금의 회원 수와 트래픽이면 서서히 광고주가 몰려올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그런데 좀처럼 광고 매출이 올라오지 않자 임원들이 최기성 이사를 계속 채근했던 것이다. 안마 기능까지 갖춘 고급 가죽 의자가 가시 방석이 된 지 오래다. 이번 주 회의에서도 어김없이 광고영업 실적이 이슈가 되었다.

“지난주에 광고 대행사를 돌아다니면서 광고영업 현황을 체크했습니다.”

유비쿼터스는 내부에 광고영업 인력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광고 대행사를 통해서 광고주를 확보한다. 광고 대행사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면 광고 매출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대형그룹의 자회사이자 광고 대행사인 대형기획이었습니다. 유비쿼터 트랙픽이 많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광고주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져서 조금  기다렸다가 광고영업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광고판에서만 20년 넘게 잔뼈가 굵은 최기성 이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온라인 매체가 많아지면서 광고주들의 요구사항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유비쿼터스가 아예 광고 시도를 못할 정도로 트래픽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열등한 트래픽으로 광고 매출을 내는 업체들이 많으니까요.”

비록 대형그룹의 식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대기업 계열의 광고 대행사인 대형기획의 조건이 까다로운가 해서 다른 광고대행사를 접촉해보았지만 모두 마찬가지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임원회의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졌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광고 바닥에 있는 후배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정기성 이사로 향했다. 정기성 이사는 주위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대형그룹에서 광고 대행사를 돌아다니면서 유비쿼터스의 광고를 받지 말라고 했답니다. 유비쿼터스의 광고를 받으면 대형그룹의 광고는 앞으로 받지 못할 거라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싸가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좀처럼 소리 지르는 일이 없는 싸가지를 향해 놀란 눈들이 향했다.

“영업 부진의 핑계를 그런 식으로 만드는 겁니까?”

“대표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20년 넘게 그런 식으로 일했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을 겁니다. 다만, 업계에 떠도는 소문일 뿐인데 성급하게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정기성 이사는 억울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싸가지에게 대들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영업 실적에 압박을 느낀 정 이사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어떤 회사가 투자를 해놓고 영업을 방해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정 이사가 거짓말을 하면서 자기변명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모두 알고 있었다. 석연치 않은 분위기 속에 회의실을 나오는 모든 사람의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자리로 돌아온 코털의 얼굴도 밝지 않았다.

'코털은 뭔가 알고 있을까?’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나에게 공유하려고 노력하는 코털이었지만 이번 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긴 나도 코털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와 코털이 유비쿼터스에 올 일도 없었겠지. 나는 뭔가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어쩌면 ‘그 일’보다 크고 은밀한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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