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내 어깨에 한참 동안 얼굴을 기대고 쌔근쌔근 숨을 쉬던 싸가지는 안색이 창백했지만 시나브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날부터였어요.”
“......”
“인애가 죽던 날.”
싸가지는 나와 인애가 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박찬혁이 들려준 인애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는 싸가지의 여동생. 알아야 할 것 같지만 알고 싶지 않은 여자.
“그날부터 전화를 했는데 안 받거나, 톡을 보냈는데 읽음 표시가 뜨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애의 죽음 소식을 듣던 날, 남자의 몸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머리는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은 공포였다. 남자는 처음 느껴보는 증상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죽을 것 같은 공포는 인애의 죽음과 연결되면서 그 공포감을 배가시켰다. 인애의 손에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다는 119 대원의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인애가 계속 전화하고 자신은 전화를 받지 못하는 장면이 남자의 머릿속에 몇 번이고 재생되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폐소 공포증으로 이어져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에 있는 것을 두려워했고 지하철이나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갇혀 있는 동안에 발작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그의 두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의 공포와 결부되어 연결에 대한 그의 집착은 갈수록 심해졌다. 잠시라도 연락이 안 되면 몇십 번의 전화와 톡을 하기가 일수였고, 다른 사람의 전화와 톡과 포스팅에 바로 답변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커져 갔다. 3년 전, 통신사 전화국 화재로 며칠 동안 인터넷과 통신이 단절되었을 때 그는 길거리에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한동안 잠잠했던 그의 공황은 어제 IDC 폭파 뉴스를 보고 재발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또 죽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아무런 근거 없는 공포가 그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다.
하루 종일 불안에 시달리며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일찌감치 사무실을 나왔다. 좁은 공간이 싫어 남자는 하염없이 걷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도 30분 이상 가야 하는 거리를 남자는 걸었다. 집까지 반 정도 왔을까? 남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두려움에 약국에 들러 신경안정제를 구입했다.
“젊은 양반이 스트레스가 많은가 보우.”
나이가 지긋한 세월의 훈장 같은 하연 머리를 한 약사가 걱정되는 듯이 약을 건네며 말했다. 남자는 애써 태연한 척 친절한 약사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냈다. 신경안정제를 음료수 마시듯 벌컥벌컥 들여 마신 남자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각자 갈 길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여기서 쓰러져도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남자를 더욱 공포스럽게 한 일은 집까지 한 10분 정도를 남겨놓은 길에서 일어났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던 남자는 갑자기 뒤통수에서 발끝까지 ‘찡!’하고 내려가는 전기를 느꼈다. 남자는 순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영화 속의 정지화면처럼 순간 몸도 마음도 정지하였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간신히 집에 도착해서 잠을 청하던 남자는 다시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집 앞에 있는 한국병원 응급실 앞을 서성거렸다. 병원 앞에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기서는 쓰러져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일 것이다. 남자는 병원에 쪼그려 앉아서 이 불안감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불안감이 조금 가라앉자 남자는 나에게 전화했다. 그의 주소록에 있는 수백 명의 사람 중에 왜 나에게 전화했는지 남자도 알 수 없었다.
“좀 와줄래요?”